[고전문학사] - 매월당 김시습과 그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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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매월당 김시습과 그의 작품세계
※ 서론
매월당 김시습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3살 때부터 외조부로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시를 지을 줄 알았으며 다섯 살 때는 세종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천재였고 신동이었다. 또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키던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으며, 자연과 속세를 넘나드는 평생을 방랑하던 기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생애만큼이나 그 저작들도 다채로워 사상으로는 유교와 불교, 도교를 넘나들고 형식으로는 한시와 논문, 소설에까지 이른다. 본고에서는 그런 그의 생애와 함께 다양했던 작품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 시대적 배경
조선의 창업은 유교, 성리학을 이념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나 초기에서부터 그것이 정치적 이념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고려 말기에 수용된 성리학은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적극 가담했던 정도전(鄭道傳)을 축으로 하는 훈구권신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성 혁명에 반대해 온건 개혁을 주장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의 사림(士林)이었다. 조선 초기 훈구권신들이 추진한 중앙집권적, 관권우위적 정책은 왕조 초기 강력한 중앙집권을 가능하게는 하였지만, 관인의 수탈과 비르 행위는 물론 유향소의 품관들까지도 관권과 결탁하는 현상을 심화시켰다.
이런 중앙집권적 관권우위 정책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골을 더 깊게 하였고, 사림은 이런 기존의 정책을 비판하며 사회의 근본적 안정을 실현하려는 성리학적 사회제도를 시도했다. 각 지방 단위에 자치적 기능은 부여하지만 성리학적 방향으로 유교적 도덕수양을 겸해 비리를 극복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예로 15세기 세종 30년 사창제(社倉制)의 보급을 필두로 향사례(鄕辭禮), 향음주례(鄕飮酒禮) 보급운동, 향약(鄕約)보급운동 등이 있다. 세종조에는 성리학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성리학에 기초한 학문적 성과는 한글창제를 비롯해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성리학적 정치이념을 이상으로 하는 신진사류의 진출도 괄목할 정도였다. 그러나 세조의 폭력적 집권은 세종대의 사대부 정치의 청신성을 일거에 제거하고, 훈구권신들의 시대를 다시 열어놓게 되었다. 집현전이 혁파되고 사창제가 폐지되었으며 불교를 옹호하는 정책이 시행해 세종조 이래 진행되었던 성리학적 정치이념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밀려난 사림이 온전히 중앙진출에 성공하였던 것은 선조(宣祖) 즉위에 이르러서였다.
이렇듯 성리학의 위치가 공고히 되는 데에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시습의 방랑과 기행은 바로 세종조 사대부 정치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꺾인 데 대한 이념적 투쟁이었다.
※ 김시습의 생애
김시습의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 췌세옹(贅世翁)이며, 승려로서 사용한 법호는 설잠(雪岑), 도교가(道敎家)로 쓴 호는 청한자(淸寒子)였다. 1435년 조선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다. 시조가 난 관향은 강릉, 선대는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인 원성왕(元聖王)의 아우 주원(周元)의 후손이고, 비조(飛鳥)는 고려 시중(侍中) 김연(金淵), 김태현(金台鉉)이다. 김시습의 조부는 오위부장(五衛部長)을 지낸 김겸간(金謙侃), 부친인 김일성(金日省)은 무반 출신으로 충순위를 역임했고, 모친은 선사(仙) 장씨(張氏)이다. 말단 무관 출신의 집안이었으므로, 김시습은 당시 명문거족의 문벌과는 거리가 먼 열악한 조건의 신분이었다. 그의 이름인 시습(時習)은 논어 학이편 중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김시습은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생후 8개월에 글 뜻을 알았다 하며, 3세에 말을 하게 되자 외조부에게 시 짓는 법을 배워 스스로 시를 지었고 소학의 의미까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5세 때 이미 중용과 대학에 능통했으며 집현전 학사 최치운이 그의 재주를 보고 경탄하여 시습이라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의 시는 세종에게까지 알려져 ‘후에 나이가 차서 학문이 성취되면 크게 쓸 것이다’며 비단을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사람들의 입에서는 ‘5세 시습’, ‘김5세’ 라는 말이 떠돌아 다녔으며 무량사에 있는 부도에는 아직도 ‘5세김시습지묘’라고 써 있다. 모친이 세상을 뜨기 전 소년기에는 당대 석학으로 인정받던 이계전, 김반, 윤상 등을 찾아가 경전과 사서를 배웠다. 모친과 외숙모가 세상을 뜨자 계모를 얻은 부친마저 병으로 눕게 되어 생활이 극히 궁핍해졌다.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다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한 김시습은 사흘 동안 문을 닫고 대성통곡을 하다가 번민 끝에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을 떠나 은둔하게 되었다. 선비의 절개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던 그에게 불법으로 왕위를 빼앗은 임금은 결코 모실 수 없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당시의 상황을 김시습이 서술한 글이다.
광묘(세조) 초년에 옛 친구와 조정의 세신(世臣)들이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또 이교(불교)가 크게 일어나 사문(유교)이 쇠락하게 되니 마음이 황량하여 드디어 승려들과 산수에 노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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