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배경론] 권근의 상대별곡과 조선 초 신흥사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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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권근의 <상대별곡>과 조선 초 신흥사대부
Ⅰ. 들어가며
『악장가사』에 전하는 이 노래는 언제 지어졌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노래의 내용과 작자인 권근의 이력을 볼 때, 조선이 건국된 뒤부터 그의 졸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작자가 1399년 대사헌을 맡았으므로, 그 뒤의 어느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霜臺란 사헌부의 별칭이다. 이 작품은 상대의 위치와 상대 소속 관원들의 활동을 그려, 조선조 지배층인 작자 자신을 포함한 사대부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헌부는 정치에 관해 논평하고 모든 관리의 비행을 조사하여 그 책임을 규탄하며 풍기와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이 있나 없나를 살펴 그것을 풀어주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었다. 곧 새 왕조의 기강을 바로잡는 기관으로써 여기에 소속되었던 관원들은 그 어느 부서의 관원들보다 긍지와 위세가 대단하였다. 그러므로 권근은 <상대별곡>에서 이러한 상대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새 국가의 문물제도의 훌륭함과 정연함을 칭송함으로써 창업의 위대함을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Ⅱ. 기존의 연구
이 작품은 대개 경기체가 작품 가운데 하나로 다수 언급되기는 하였으나 이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는 별로 진전되어 있지 않다. 金思燁이 비록 李朝時代의 歌謠硏究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 권근의 作이 아닌 변계량의 작품이라 추정하긴 했으나 김사엽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변계량의 작으로 보았다. 첫째, 변계량의 作인 <화산별곡>의 初聯 首句와 이 <상대별곡>의 그것이 대단히 비슷하다는 점과, 둘째, 세종 조에 변계량이 많은 樂詞를 지었는데 태종대에는 作詞하였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통상적으로 권근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제작 년대와 관련하여서는 권근이 政堂文學兼大司憲에 제수된 定宗원년(1399)이므로, 그 후 그의 卒年인 1409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이상의 작가와 작품의 제작 년대에 대한 내용은 李明九의 『高麗歌謠의 硏究』(新雅社, 1973)을 참고. 한편, 최용수는 權近, <霜臺別曲>에 대하여(『한국시가연구』, 1997, pp402-403)에서 작품의 제작연대를 1400년 3-7월 사이의 일로 보고있다.
한편, 개별 작품론의 시도는 최용수가 처음 시도하였는데, 그는 <상대별곡>의 제작 연대를 고증하고, 형태적 특질을 살피고 난 뒤 그 문학사적인 의의를 살펴보고 있다. 최용수, 앞의 책.
이처럼 <상대별곡>은 개별 작품론이 거의 없고 대개는 경기체가를 다루는 연구에 단편적으로 언급되었을 뿐이다. 곧 조선초기 경기체가의 작자층과 관련하여 신흥사대부층이 조선의 건국을 정당화하고 왕의 정통성과 절대적 명분을 밝히기 위해 경기체가를 지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상대별곡>이 다루어진 것이다.
Ⅲ. <상대별곡>의 내용
이 작품은 전체 다섯 장 중 앞의 네 장은 정격의 경기체가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은 전혀 다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 같은 형식적 특징은 경기체가의 변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제5장의 형태적 특징에 대해 이명구는 고조되는 흥에 따라 영탄조로 읊게 된 것이라 보았고(『高麗歌謠의 硏究』, 新雅詞, 1980, p.74), 성호주는 경기체가의 연장체로 散曲의 重頭와 대비된다고 하였으며(『景幾體歌의 形成 硏究』, 제일문화사, 1988, pp.85-86), 조규익은 각 장들이 병렬적이므로 마지막 장은 주제를 부각시킨 장으로 보았다(『高麗俗樂歌詞景幾體歌鮮初樂章』, 한샘, 1995, p.68). 그리고 최용수는 앞 장들의 사실을 요약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강조한 부분으로써 이러한 형태적 파격은 이후 <불우헌곡>과 <화전별곡>에서 답습되고, 다른 갈래의 악장인 <용비어천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이에 작품의 원문과 해석을 실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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