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의 원인에 대하여 십자군 전쟁의 원인 중세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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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의 원인에 대하여...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1095년 11월 프랑스 중부의 클레르몽에서 제창된 이 한마디는 중세의 모든 유럽인들을 ‘성도 탈환’이라는 신성한 대의에 주목하게 만드는 동시에 당시 영토분쟁에 정신이 없던 봉건 영주들을 ‘신의 휴전’ 상태로 만든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의 신인 예수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은 장소이다. 따라서 분명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있어서 지구상 가장 중요한 성지이며 그러한 성지가 이교도인 무슬림들의 통치하에 있다는 사실은 크리스트교가 절대적인 종교였던 유럽인들에게 군사적 행동을 통해서라도 성지를 ‘해방’시키겠다는 대의명분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중세시대 사람들이 가지는 모든 생각과 사상의 바탕이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찌 보면 십자군 전쟁이 발생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아하게 느껴져야 할 부분은 바로 “왜 하필 지금?”일 것이다. 사실 예루살렘은 이때까지 약 450여년 동안 무슬림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예루살렘에도 수많은 그리스도교도들이 살고 있었다. 다만 지즈야라 불리던 일종의 인두세를 내야 한다는 것과 ‘무기를 소지하거나 말을 타는 것을 금한다’ 등등의 몇 가지의 차별조항이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무슬림교 세력의 적대적 행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08년에는 이집트의 칼리프 알 하킴이 성묘교회를 파괴하였으며 유독 호전적인 신흥 무슬림 세력인 투르크족은 종종 성지 순례자들을 공격하여 약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묘교회 파괴사건은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기 무려 90년 전의 일이고 투르크족의 순례자 약탈도 인명을 위협하는 행위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에야 ‘성도해방’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십자군을 조직한 것일까? 거기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는 최초에 십자군을 제창한 인물 즉 159대 교황 우르바누스2세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 보았다. 그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랭스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여느 귀족가문의 차남 이하 자식들과 같이 성직의 길에 들어섰으며 (중세에는 장자에게만 유산이 상속되었기 때문에 차남 이후로는 성직의 길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클뤼니 수도원에 입문한다. 이후 수도원장과 동행하여 로마에 머물던 중 당시 교황인 그레고리오7세의 눈에 띄어 중용되었으며 젊은 나이에 주교의 자리에 올라 교황의 대리인으로서 활약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두 사람은 모두 ‘급진적 개혁’ 이라는 목표를 가슴에 새기게 되는데 여기서 이 ‘개혁’이라는 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개혁은 당시의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여 청렴하고 성스러운 교회로 만들고자 하는 뜻이 아니라 교회가 세속적인 부분까지 관여를 해야 한다는 뜻의 개혁이다. 즉 현실 세계의 지도자인 왕이나 황제에서부터 농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종교적 지도자인 교황이 관장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개혁파’라고 명명한 것이다. 사실 크리스트교 교리에서 교황은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신의 대리인이자 천국문의 열쇠를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세속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처구니가 없는 위의 주장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나도 당연한 섭리가 되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간과했던 것은 적어도 죽어서 천국문을 두드릴 때까지는 자신들이 속한 ‘지상’의 역학관계가 본인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그레고리오7세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혈기왕성한 젊은 황제 하인리히 4세와 정면 충돌하게 되고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 발생한다. 간략하게 서술하자면 황제가 결정한 인사문제에 그레고리오7세가 반대를 표명했고 ‘급진적 개혁’에 반발심을 품고 있던 하인리히4세는 이를 무시한다. 결국 그레고리오7세는 이 젊은 황제를 파문에 처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인리히4세는 그레고리오7세에게 파문을 거두어 달라는 사죄를 청한다. 여기서 황제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문이 가진 효력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파문은 크리스트교 세계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하며 파문 당한 사람은 죽여도 아무런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파문 당한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함께 식사를 한 사람도 파문에 처한다. 사실 무엇보다도 두려운 부분은 파문의 전염성인데 이러한 효력은 가신들과 영주들이 황제를 떠나게 만들었고 결국 황제도 당장은 자존심을 덮어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레고리오7세는 현세의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당시 중세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지리상으로 교황에게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파문이 거두어진 후 황제는 군사적 압박을 통해 로마에서 그레고리오7세를 쫓아낸다. 그레고리오7세는 로마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살레르노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후 후대 교황인 빅토리오3세가 즉위하지만 역시 별다른 상황의 변화를 만들어내지도 못한 채 2년만에 생을 마감한다. 이 기간 동안 교황은 시칠리아 노르만 왕조의 보호 하에 있었으며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하인리히4세는 대립 교황을 세워 우르바누스2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결국 이 때까지도 로마에 입성하지 못하고 황제의 등살에 시달리던 우르바누스2세에게 비잔틴제국의 사신이 찾아온다. 바로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이 이슬람 세력에 대항할 지원군을 요청한 것이다. 사실 비잔틴제국은 이전에도 수 차례 로마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이슬람세력이 강대해 지면서 원래 제국 경제의 중심지였던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티나와 북아프리카를 순식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의 교황들은 동방 ‘형제’들의 영토 분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비잔틴제국의 사신들은 항상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반면 우르바누스2세는 이 요청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리스도교의 ‘성도’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르바누스2세는 이 성전을 계기로 정통 가톨릭 교황의 권위를 되찾고자 한 것이다. 우르바누스2세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고 1095년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영주들과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으며 이 후 클레르몽에서 동방의 형제들(비잔틴 제국)을 구하고 성도(예루살렘)를 되찾자는 내용의 연설을 한다. 연설문 내용의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역사가들은 당시 성직자들의 연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전반부에서 신도들의 죄악을 꾸짖고 회개를 외치다가 후반부에서 이슬람교도들의 과장된 악행을 설토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성공적인 연설로 봉건 국가들 사이에선 ‘신의휴전’이 체결되었고 자신의 영토가 안전해진 영주들은 십자군 세력에 참여한다. 물론 상기의 원인을 제외하고도 당시의 중세는 여러모로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 될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럽의 토지는 이미 포화상태였고 서로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은 소모적이었으며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영지를 물려받지 못한 귀족들의 불만도 극에 달해있었다. 또한 당시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동방의 화려한 재물에 대한 환상도 십자군 원정의 매력요소 중 하나였는데 실제로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인물들 중 몇몇은 비잔틴제국 황궁의 매력에 빠져 본래 목적인 예루살렘으로는 향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우르바누스2세가 없이도 십자군 전쟁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우르바누스2세는 본인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대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당시 유럽이 가지고 있던 불만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탄더미들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우르바누스2세이며 이것이 내가 십자군 전쟁의 원인으로 이 인물을 지목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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