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소논문] 허균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 -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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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허균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
-허균의 「전」문학을 중심으로-
Ⅰ. 서론
허균은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저자로 우리 고전문학, 특히 소설문학사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이다. 허균은 철저하게 신분에 의해 삶이 결정되었던 시대에 문장가로 널리 이름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살아갔으면서도, 보장되어 있던 안정된 삶을 스스로 거부하였다. 그는 당대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신분제도에 대해 당대의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하였으며 그의 논설 「호민론」과 「유재론」을 통해 그러한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그의 작품 「홍길동전」이 그의 어떠한 문집에도 실리지 않았으나 저자를 허균이라 추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본인의 삶만큼이나 개성 있고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 「홍길동전」을 비롯하여 그의 「전」문학작품 전반을 간략하게 돌아보고 감상하며, 그의 순탄하지 않았던 생애 역시 함께 돌아보고자 하였다.
Ⅱ. 본론
1. 작가의 생애
허균(許筠, 1569~1618)의 자는 단보이며 호는 교산·학산·성소·성수·성옹·백월거사이고 본관은 양천이다. 아버지인 초당 허엽은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허균은 그의 후처인 김광철의 딸 강릉 김씨 부인에게서 태어난 양천 허씨 문중의 막내아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강릉을 그의 출생지로 추측하기도 하나 당시 허엽이 서울에서 내직으로 벼슬살이를 했던 점으로 보아 서울의 마른내(건천동)를 그의 출생지로 보고 있다. 마른내(건천동)는 현재의 오장동 부근이다. 또한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를 보면 허균이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이 장소에 대해 이순신, 원균, 유성룡, 김종서 등의 명인들이 태어난 곳이라고 적고 있다.
허균은 5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9세에는 시를 지을 정도로 대문장가의 자제다운 면모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무렵에 누이 허난설헌이 김성립에게 출가하였다. 11세에는 아버지가 경상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아버지를 따라 잠시 상주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이듬해인 12세에 아버지 허엽이 세상을 떠난다. 이는 허균에게 처음 겪는 상실감이었을 것이며 이 이후에도 가정에 불행한 일이 계속된다. 14세 무렵부터는 형 허봉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애 유성룡에게도 글을 배웠다. 또한 삼당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손곡 이달도 그의 스승이었다. 그는 허균의 인생관과 문학관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로, 서자출신이었다. 허균이 서류천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손곡이달의 영향 중 하나였을 것이다.
17세 무렵 그는 한성부에서 치른 과거시험 초시에 급제하였다. 5월에는 김대섭의 딸과 혼인하였다. 18세에는 처남 김확과 함께 백운산으로 가 친 형 허봉에게 고문과 한유, 소동파의 시를 배웠다. 20세가 되던 해에 그 누구보다 믿고 따르던 형 허봉을 잃었다. 정신적 방황이 심했기 때문인지 아내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기방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22세에는 누이 허난설헌을 잃었다. 또 24세가 되던 해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부인 김씨와 첫 아들을 잃어야 했다. 이렇게 연달아 계속된 가족사적 불행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슬픔을 딛고 일어나 26세가 되던 해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 사관으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29세가 되던 해에는, 김효원의 딸을 재취로 맞이했고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를 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관직생활도 그리 순탄하지는 못하였다.
병조좌랑으로 있던 이듬해에는 황해도도서로 부임하면서 한양의 기생들을 그곳까지 데려와 즐기고 직무를 등한시하여 여섯 달 만에 파직 당한다. 이로부터 2년이 지난 뒤에 맏형 허성의 도움으로 관직에 복귀할 수 있었고 33세에는 형조정랑을 지냈다. 이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기생 매창을 만나기도 했다. 34세에는 사예, 사복시정을 역임했으며 원접사 이정구의 종사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종사관을 역임했음은 그의 글재주가 얼마만큼이나 뛰어났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36세에는 불교에 심취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다시 파직 당하였다. 37세에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는 종사관이 되었는데 그 공로로 이듬해에 삼척부사로 복직 되었다가 또 다시 불교에 심취했다는 이유로 3개월 만에 파직되었다.
40세에 공주목사로 다시 부임하게 되면서부터는 서류들과 어울렸으며, 그들을 돕던 일로 광해군이 보낸 암행어사의 감사에 걸려 또 다시 파직되었다. 이듬해인 41세에 다시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를 역임하였다. 42세에는 명나라 성절사로 가라는 명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하였다가 면직되었고, 그 해에 궁중에서 치르는 과거시험의 시관이 되었는데 ‘자서제질사돈방’사건에 연루되어 물의를 일으켰다. 함께 연루된 이는 많이 있었으나 뒷배가 없던 허균만이 이로 인해 42일 동안의 옥고를 겪고 전라도 함산으로 유배를 갔다. 함산에서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를 정리,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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