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일제의 식민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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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序論
일제의 식민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
우리 역사학에 있어서 忠君愛國主義(충군애국주의)를 극복하고 民族主權主義(민족주권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근대 민족주의 노선을 명백하게 하는 한편, 그 연구와 서술 방법에서도 실증주의 비판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역사적 사실을 인과관계 위에서 동적으로 이해 분석 종합하는 방법론이 일반화된 것은 식민지시기에 들어와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제 식민지시기의 우리 역사학은 그 연구 및 서술 방법에 있어서 근대사학적 방법을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植民史觀의 침략주의론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反植民史學論을 확립시켰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식민지 시기 우리 역사학의 발달 과정을 정리하면, 첫째 愛國啓蒙運動期(애국계몽운동기)에 태동한 근대사학을 계승하여 사대주의적 역사관, 忠君愛國主義的 역사관을 극복하는 한편 식민사학론이 만들어 놓은 이른바 日鮮同祖論(일선동조론)이나 滿鮮史觀(만선사관) 및 古代社會에서의 朝鮮半島 植民地論(조선반도 식민지론) 등에 대항하는 史論을 적극적으로 세워 나간 ‘民族主義史學‘, 둘째 식민사학이 강조한 ‘한반도 역사의 停滯後進性論(정체후진성론)’을 극복하고 민족사의 세계사적 발전론을 제시한 ‘社會經濟史學’, 셋째 식민지 시기의 말기에 식민 지배의 종언과 민족사의 새로운 전개를 전망하면서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의 발전적 상승적 합치를 기도하면서 태동된 史論이라 생각되는 ‘新民族主義史學’ 등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민족주의 역사학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었으며, 대표적인 역사가와 그들의 역사관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民族主義 歷史學의 의의를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Ⅱ. 本論
1. 植民史學論
(1) 日鮮同祖論
日鮮同祖論이란 한국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선과 일본은 같은 민족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도쿄제국대학 교수들에 의해 저술되고 이후 日本史 교육의 중요한 저본이 된 <국사안(國史眼)>(1901)에서 고대의 한일관계가 동조론의 입장에서 서술됨으로써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선 강점 직후에 일본역사지리학회 기관지인 <역사지리>는 당시 일본의 역사학자 대부분을 동원해 임시 증간호로서 ‘조선호’를 발간했는데, 그들이 쓴 글은 모두 일본의 조선 ‘합방’을 동조론을 근거로 예찬했다. 그 집필자의 하나인 기다 사다기치(喜田貞吉)는, 그의 저서 <한국의 병합과 역사>를 통해 ‘日韓同種’을 주장하고, 太古 時代에는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으며 일본은 부강한 本家, 한국은 빈약한 分家이므로 일본의 한국 ‘병합’은 분가의 본가로의 복귀이며 두 나라의 관계가 太古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 했다. 이는 ‘조선은 이제 일본에 대해 외국 외민족은 될 수 없으므로 일본에 흡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으로 일제가 조선의 식민지 침탈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든 식민사론의 근거가 된 이론이다.
(2) 滿鮮史觀
만선사관이란 한반도 지역과 한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만주 지역과 한반도 지역을 합쳐서 하나의 역사 단위 문화 단위로 인정하는 것으로, 한반도 지역에 형성된 권력은 대체로 만주 지방에서 정치적으로 실패한 세력, 패주한 세력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민족의 민족적 자존심을 짓밟음과 동시에 滿洲史를 中國史에서 분리시켜 중국이 만주에 대하여 영토상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역사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만선사관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 이바나(稻葉岩吉)는 한국사의 독자성 자주성을 부인하고 민족 영토 경제의 세 방면에서 보아 한국의 태곳적부터 대륙 특히 만주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가졌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큰 역사적 사건은 모두가 대륙 정국의 반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滿鮮史는 그 체계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사 연구의 방법론에서 보더라도 한국인의 자주적 활동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3) 古代社會에서의 ‘朝鮮半島植民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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