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의 언어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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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학의 ‘언어적 전환’
목 차
Ⅰ. 서론
Ⅱ. 역사적 사실과 ‘언어적 전환’
Ⅲ. 담론
Ⅳ. 헤이든 화이트 (Hayden White)
Ⅴ. ‘언어적 전환’이 이룩한 역사학의 성과
Ⅵ. 결론
Ⅰ. 서론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점차 많은 수의 역사가들이 역사는 과학보다는 문학과 더욱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이러한 생각은 근대 역사학이 의거했던 전제들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역사의 대상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 연구에서 객관성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점차로 공감대를 얻었다. 이에 따라 역사가는 항상 그가 사고하고 있는 세계 안에 감금되어 있는 포로이고, 그의 사고와 인식은 그가 작동시키는 언어의 범주들에 의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이해되었다. 따라서 언어는 그 자체가 실재를 형성하는 것이지 실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의 역사학은 역사는 어디까지나 이야기체로 쓰여 져야 한다는 고전적인 역사 서술의 전제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이야기체 역사가 가진 문제는 헤이든 화이트 및 최근의 몇몇 역사이론가들이 강조하듯이, 역사 서술은 경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나 사건에서 출발하더라도, 그것들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구성되자면 필연적으로 상상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즉 모든 역사적 담론에 허구적 요소들이 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Ⅱ. 역사적 사실과 ‘언어적 전환’
1894년 전라도 지방에서 동학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은 이 시대의 한국사를 다룬 거의 모든 역사책이 기술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역사적 사실인가? 그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가의 해석이고, 그 해석의 내용은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로 나타난다. 동학난, 동학운동, 동학혁명, 그리고 갑오농민전댕 등, 그 사건의 이름은 하나가 아닌 여럿이다. 그런데 1894년의 사건을 ‘난’ ‘운동’ ‘혁명’ 혹은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각각의 이름은 서로 모순적인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학의 중요 문제는 1894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역사책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이냐 하는 점이다. 여기서 이름은 1894년의 사실을 역사로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역사서술의 목적 그 자체가 된다. 역사가는 새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사건에 관한 새로운 역사를 쓴다. 1894년의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에 관한 역사서술만이 존재한다. 과거의 그 사건은 없고 그에 대한 역사적 이름만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1894년의 그 사건을 어떤 한 이름으로 부를 때, 그는 과거의 그 일을 단순히 지칭하기보다는 특정한 의미를 가진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이미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에서 이름이 역사서술의 중심문제로 부각하는 계기는 ‘언어적 전환’을 통해서이다. ‘언어적 전환’이 대두하기 이전의 역사이론들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의 연구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되거나 혹은 역사가가 해석을 통해 확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사실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던 반면에, 후자의 입장은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그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구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두 입장 모두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 해석의 문제이다. 그래서 ‘언어적 전환’을 주장하는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 자체를 언어적 구성물로 환원 본래의 상태로 다시 돌아감, 또는 그렇게 되게 함, 근본적인 것으로 바꾸거나 그런 일.
시키지는 않았다. 즉, 역사적 사실을 과거 사실의 현재적 재현으로 파악은 했지만 그것을 허구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는 그에 대한 우리의 표상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언제나 그 실재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과거의 실재가 우리의 인식에 이르는 과정이 언제나 언어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그것이 재현 자체가 언어를 통해서 실현된다면, 역사의 ‘언어적 전환’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언어적 전환’이 역사학에 기여한 가장 큰 공적은, 역사란 하나의 담론적 질서로 성립한다는 것을 역사가들에게 주지시킨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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