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대부들의 역사적 기상이 드러난 향락적 노래 「한림별곡」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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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흥사대부들의 역사적 기상이 드러난 향락적 노래
「한림별곡」에 관한 고찰
1. 작품
한림별곡(翰林別曲)
한림제유(翰林諸儒)
元淳文(원슌문) 仁老詩(인노시) 公老四六(공노사륙)
李正言(니졍언) 陳翰林(딘한림) 雙韻走筆(솽운주필)
沖基對策(튱긔대책) 光鈞經義(광균경의) 良鏡詩賦(량경시부)
위 試場(시댱)ㅅ 景(경) 긔 엇더니잇고
琴學士(금학사)의 玉筍門生(옥슌문) 琴學士(금학사)의 玉筍門生(옥슌문)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
唐漢書(당한셔) 莊老子(장로자) 韓柳文集(한류문집)
李杜集(니두집) 蘭臺集(난대집) 白樂天集(백락텬집)
毛詩尙書(모시샹셔) 周易春秋(쥬역츈츄) 周戴禮記(주대례긔)
위 註(주)조쳐 내 외 景(경) 긔 엇더니잇고
太平廣記(대평광긔) 四百餘卷(사백여권) 太平廣記(대평광긔) 四百餘卷(사백여권)
위 歷覽(력남)ㅅ 景(경) 긔 엇더니잇고
眞卿書(진경셔) 飛白書(비백서) 行書草書(행서초서)
篆書(뎐류셔) 書(과두셔) 虞書南書(우셔남셔)
羊鬚筆() 鼠鬚筆() 빗기드러
양슈필 셔슈필
위 딕논 景 긔 엇더니잇고
吳生劉生(오생유생) 兩先生(양선생)의 吳生劉生(오생유생) 兩先生(양선생)의
위 走筆(주필)ㅅ 景 긔 엇더니잇고
黃金酒(황금쥬) 柏子酒(백자쥬) 松酒醴酒(숑쥬례쥬)
竹葉酒(듁엽쥬) 梨花酒(리화쥬) 五加皮酒(오류피쥬)
鸚鵡盞(앵무잔) 琥珀盃(호박배)예 득브어
위 勸上(권상)ㅅ 景 긔 엇더니잇고
劉伶陶潛(류령도잠) 兩仙翁(량션옹)의 劉伶陶潛(류령도잠) 兩仙翁(량션옹)의
위 醉(취)혼ㅅ 景 긔 엇더니잇고
紅牧丹(홍모단) 白牧丹(백모단) 丁紅牧丹(뎡홍모단)
紅芍藥(홍작약) 白芍藥(백작약) 丁紅芍藥(뎡홍작약)
御柳玉梅(어류옥매) 黃紫薔薇(황자쟝미) 芷芝冬柏(지지동백)
위 間發(간발)ㅅ 景 긔 엇더니잇고
合竹桃花(합듁도화) 고온 두분 合竹桃花(합듁도화) 고온 두분
위 相映(샹영)ㅅ 景 긔 엇더니잇고
阿陽琴(아양금) 文卓笛(문탁덕) 宗武中琴(종무듕금)
帶御香(대어향) 玉肌香(옥긔향) 雙伽倻(솽개야)ㅅ고
金善琵琶(금션비파) 宗智稽琴(종지해금) 薛原杖鼓(셜원장고)
위 過夜(과야)ㅅ 景 긔 엇더니잇고
一枝紅(일지홍)의 빗근 笛吹(뎍취) 一枝紅(일지홍)의 빗근 笛吹(뎍취)
위 듣고아 드러지라
蓬萊山(봉래산) 方丈山(방댱산) 瀛洲三山(영쥬삼산)
此三山(차삼산) 紅縷閣(홍류각) 仙子仙子(쟉약션자)
綠髮額子(록발액자) 錦繡帳裏(금슈댱리) 珠簾半捲(쥬렴반권)
위 登望五湖(등망오호)ㅅ 景 긔 엇더니잇고
綠楊綠竹(록양록듁) 栽亭畔(재정반)애 綠楊綠竹(록양록듁) 栽亭畔(재정반)애
위 黃(전황앵) 반갑두셰라
唐唐唐(당당당) 唐楸子(당추자) 조협남긔
紅(홍)실로 紅(홍)글위 요이다
혀고시라 밀오시라 鄭少年(뎡쇼년)하
위 내가논 갈셰라
削玉纖纖(샥옥셤셤) 雙手(솽슈)ㅅ 길헤 削玉纖纖(샥옥셤셤) 雙手(솽슈)ㅅ 길헤
위 携手同遊(휴슈동유)ㅅ 景 긔 엇더니잇고
2. 작품연구
1) 창작시기 및 창작배경
「한림별곡」의 창작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23대 고종 초기, 고종 7년에서 17년 사이, 고종 말기,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사이 등으로 주장하여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고종 초기 창작을 주장한 이로는 장덕순, 김동욱, 지준모, 조동일, 박노준, 김정주 등이다. 장덕순은 이규보가 정언 벼슬에 있던 시대의 작품이라 하여 고종 2, 3년경으로 보았고, 김동욱은 최충헌의 집 백정통관에서 추천희연이 있었던 고종 3년 5월에 창작되었다고 했으며, 조동일, 박노준, 김정주는 김동욱의 견해를 받아들여 고종 3년 또는 고종 3년 5월로 보았다. 한편 지준모는 이보다 앞당겨 고종 원년(1214) 5월 4일 단오 전야에 신급제자들이 은문에게 곡사하는 연회자리에서 가사를 함께 지어 불렀다고 했다.
고종 7년에서 17년 사이 창작을 주장한 이로는 이명구, 신동일, 김선기, 송재주, 여운필 등이다. 이 주장은 금의가 치사하여 졸할 때까지의 사이에 있었던 문생연회에 근거한 것이다. 이명구, 김선기, 송재주는 금의가 치사하여 졸할 때까지 인생을 즐기던 문생연회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신동일은 문생이 부른 노래라는 것과 가장 뜻깊은 자리가 퇴치연이기에 고종 7년 정월 금의의 퇴사연 자리에서 불려진 것으로 가정했고, 여운필은 고종 14년 정월 금의의 좌주문생연에서 불려졌다고 하여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고종 말기를 창작연대로 보는 이는 전규태, 김창규이다. 전규태는 고종 30년(1243)에서 늦어도 고종 46년(1259) 사이라고 하였고, 김창규는 최씨무신정권의 고종 말기 전후쯤이라 하였다.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사이 창작을 주장하는 이로는 성호주, 성호경이다. 성호주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고종대에 되었다는 것을 수긍이 가지 않는다고 하고서는 13, 4세기 교체기에 원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오르고 사관도 했던 신흥사대부들이 산곡을 변용하여 고안해 낸 새로운 시가양식일 것이라 하였다. 한편 성호경은 고종대 또는 그 이후 고려시대 문헌에는 「한림별곡」에 대한 논급이 전무하고, 해금이 고려에 들어오게 된 것이 13세기 후반인 점, 몽고인들의 동성애 성습속이 고려 사회에 영향을 끼친 때가 13세기 후반인 점, 오생유생이 오동과 유도권에 비의한다면 14세기 중엽이래 말엽사이일 수 있다는 점, 원의 산곡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들어 「한림별곡」이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동안에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장덕순, 『국문학통론』, 신구문화사, 1960. pp. 121~123.
김동욱, 『국문학사』, 일신사, 1965. p. 58.
지준모, 「한림별곡추의」, 『석하권영철박사화갑기념국문학연구논총』, 효성여대출판부, 1988. p.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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