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박물관역사] 제4장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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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탈리아》
최근에 와서 르네상스 시대의 개념이 대단히 위축되어 이제는 그 개념이 15세기와 16세기를 포함하지 않게 되었다. 이 용어의 범위를 이 말을 발명한 세대에 국한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대의 사상을 제자리로 복귀시키는 것에 위해서 발생된 계몽주의에 대한신념에 의해서 격려를 받은 1430년대의 사람은 중세의 어두운 그림자 뒤에 진짜로 “부활”하는 경험을 한 것처럼 생각했다. 1530년대의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중세가 벌써 시간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야만주의 시대에 의식적으로 반대할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 안에 갇혀 살던 15세기의 사람은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또 그의 사상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1492년에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했고, 미지의 세계로부터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라가 생겨나고 또 인간의 영역이 갑자기 넓어졌다. 그 후, 40년 뒤에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그의 지동설을 발표했다. 인간은 이제 우주의 중심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도 우주의 축이라고 믿었던 세계 자체도 태양에 의해서 그의 우위를 박탈당했다.
인간은 그의 사상 속에 무한을 포용하려는 시도에 의해서만 그의 주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 뒤로부터 인본주의자는 진짜 “보편구제론자”가 되어 그의 지성을 통해서 세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만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지식에 대한 잡식성의 식욕이 지구와 하늘에 관한 모든 종류의 문제로 확산되어 갔으나 걸음마 단계에 있던 과학은 그의 열렬한 욕구에 대해서 거의 해답을 제공해 줄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불가사의한 것 앞에서 고통을 경험했고 또 그에게는 세상이 하나의 신비한 것으로 보여서 이러한 상황이 마술과 마법의 부활과 연금사와 점성가들의 갑작스러운 번창을 설명해준다. 비합리주의가 기울리아노 다 상갈로의 교회와 같이 순수한 15세기 사상의 아름답고 합리적인 건물에 맹렬한 공격을 시작해서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반 르네상스”라고 성격지우는 사람들도 있다.
건축에서도 이러한 기괴한 취향의 흔적을 갖게 되었다. 자신들이 살던 궁전으로부터 나온 16세기의 인간은 인본주의 시대에 환상으로 가득찬 저택과 정원을 만들어 그 하나하나를 세상의 상징물로 만들려고 했다. 훌륭한 예가 오늘날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티볼리에 있는 빌라 데스테 이 빌라는 부온탈레티가 메디치가의 프란체스코 1세, 즉 에투리아의 대공을 위해서 프라톨리노에 지은 빌라와는 같지 않았다. 이 빌라에서는 돌과 나무와 바위 투성이인 땅이 매너리즘 시대의 피렌체 사람들이 만들 수 있었던 모든 지적인 미묘함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다. 18세기에 로레인 왕조에 의해서 영국 정원으로 설계된 죠반니 다 볼로냐의 “아펜니노”는 사냥감 동물의 유일한 표본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이것보다 더 괄목할 만한 예는 피렌체에 있는 베키오 궁전에 있는 프란체스코 1세의 캐비네트이다. 이것은 거의 동굴과 같이 어두침침한 방으로 연금술과 점성술에 매혹된 대공이 자연의 4대 요소 자연의 4대 요소는 흙, 공기, 물, 불을 말한다.
에 봉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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