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사] 역사편찬의 변화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4.07.30 / 2019.12.24
  • 5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1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1.들어가며
2.조선사편찬위원회
3. 조선사편수회
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5. 나오며
본문내용
1.들어가며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가 일반적으로 경제수탈과 군사기지의 확보를 위하여 식민지를 경영하였던 것과는 달리 일제는 이에 더하여 미족말살까지 획책하였다. 한국민족말살책(韓國民族抹殺策)은 식민통치의 전기간을 통하여 계속 되었으며 한국사의 왜곡과 식민사학의 부식도 이러한 식민통치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따라서 식민사학에 관한 연구도 그 왜곡된 역사상을 비판하여 바로잡는 일과 함께 그것이 식민총치상에 기여한 측면을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1960년대초 이후 본격화된 식민사학의 비판은 이후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주로 역사왜곡의 시정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는 식민사학의 극복이 학계의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지만, 그 결과 식민사학이 형성될 수 있었던 역사적 상황 즉 식민지배상황과의 연관문제는 소홀히 취급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사편수회는 1925년 조선 총독부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여기서 편찬한 <<조선사>>는 종래의 식민사학을 결집한 것이었다. 일제는 <<조선사>>를 통하여 식민사학을 체계화하는 한편 이후의 식민사학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식민사학의 식민통치상의 기능을 밝히는 데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 관한 연구가 요구된다.

2.조선사편찬위원회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설치는 1921년에 이미 제등실총독의 발의로 계획되었다. <<海日申報>>. 1922년 12월 6일
이때 계획된 <<조선사>>는 1921~26년의 3년간에 걸쳐 완성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한국사외에 대한 관습조사도 겸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최초의 계획안은 흑판승이, 내등호차랑등 일본사학자들과의 실무적인 협의과정에서 수정 ․ 변경되었다. 즉 사업년한을 10년으로 늘리고 부위원장제를 폐지하였으며 <<조선사>>도 사회조사의 성격을 축소하여 전문사서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1922년 12월 4일 <조선사편찬위원회규정>이 확정 발포되었으며 <<조선사>>의 편찬은 총독부의 산하기관인 조선사편찬위원회에서 관장하게 되었다.
편찬위원회는 총독부의 훈령에 따라 설치된 사서편찬을 전담하는 특별기구이었으나 중추원 내에 설치됨으로써 사서편찬에 관한 업무가 제도적으로 중추원과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선임된 직원들도 중추원 촉탁의 자격으로 편찬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편찬위원회가 중추원 내에 설치된 것은 중추원이 구한국 때의 전직관리들로 구성되어 있어 한국사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한국인을 이용
참고문헌
1. 김성민,「朝鮮史編修會의 組織과 運用」, 국민대 대학원, 1993
2. 국사편찬위원회 , http://kuksa,nhcc.go.kr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고려시대의 역사의식과 역사서술
  • 역사학에서는 그 동안 소홀히 취급하였던 단군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북방계열의 역사를 중시하게 되었다. 박인호, 『한국사학사대요』, 이회, 1996, 38쪽고려를 건국하면서 사관을 설치하고 역대의 실록을 편찬하면서 역사 편찬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북진정책과 관련하여 이시기에 쓰인 것이 『(구)삼국사』이다. 작자와 편찬연대가 분명하지 않고 현존하지고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김부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이규보

  • [한국 사적해제]동사강목에 대한 서평
  • . 이러한 고려 말 정치사건에 대한 기술은 조선 초기 관찬사서에 대한 반발이었고, 이는 16세기. 17세기 이래 발전해 온 사림의 역사의식을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발전은 역사에서 기록을 그래도 신빙하지 않고 의심하여 역사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는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다.참고문헌-한국근세사학사 정구복 지음. 경인문화사.안정복의 역사의식과 동사강목의 의의. 논문-동사강목의 의의-동사강목서술을 통해 본 사학사상

  • 삼국사기 레포트
  • 역사사건을 해석하여 왕조교체의 다위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김부식의 역사인식이나 삼국사기의 성격은 물론, 그의 사학사적 위치도 그러한 입장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도한 그를 한국고대사의 큰 줄기를 전해준 역사보존자로서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는 정부주도하의 관찬이라는 전통 역사편찬의 모델을 정착시켜 선초의 고려사 등 역사편찬에 기틀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땅의 전통사학에 초석을 놓는 역할을 하였으

  • [삼국사기]삼국사기 편찬과 역사적 평가
  • 역사적 이해를 가지려는 목적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말미에 〈참고(參考)〉란 이름 아래 편찬 보조원들의 이름이 있으니 이 〈참고〉들이 그러한 수집을 담당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은 김부식은 『삼국사기』의 사론류(史論類)나 썼을뿐이고 직접 편찬은 그 『참고』들이 하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 참고들은 일일이 김부식의 지휘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한걸음 나아가서 그 〈참고〉들의 선정을 김부식

  • [사학사]조선전기의 역사인식과 동국통감
  • 역사의식을 조정하면서 하나의 역사체계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15세기를 대표하는 사서가 되었고, 태조 때부터 진통을 겪어온 관찬사서 편찬사업이 대미를 장식하게 된 것이었다.『東國通鑑』을 마지막으로 하여 조선초기의 관찬사서 시대는 막을 내리고 16세기 이후로는 사림학자들에 의한 사찬사서 시대가 열렸다. 시대의 과제가 달라지고 역사의식의 변화가 온 것이다.15세기에는 고려말기의 거듭된 국난과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야 하는 과제를 안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