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치우천황 재탄생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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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치우천황 재탄생 신화 ”
이번 에세이 레포트는 하루 이틀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때 이른 걱정 아래, 수업시간까지 늦으면서 레포트를 찾아놓고는 근 보름간을 떠들어 보지 못해왔다. 어렵다, 어렵다 생각하다보니 감히 꺼내서 시도해 볼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제출기한이 다가와서 더 이상 미룰 수 없기에 레포트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나?’하는 의구심이 생겨서 불안하지만 이제 피할 수 없는 일... 소신 것 해보는 수밖에~^^;
내가 이번 에세이에서 선택한 작품은 「동명왕편」이다. 나는 이규보의 역사관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는 논문을 찾기 위해 논문을 검색하던 중 다행이 “동명왕편에 나타난 이규보의 역사의식” 이라는 내가 찾는 것과 딱 맞는 제목의 논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논문을 읽어보니 내용은 나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나는 이규보가 주몽신화를 성(聖)이며 신(神)이라고 했던 부분에서 이규보도 우리의 역사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기에 분명히 그 관심사에 내가 들은바 있는 고조선 전의 국가인 배달국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이규보가 상상속의 국가와 같은 배달국에 대해 주몽신화와 같은 정의를 내려놓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논문에서는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지은 의도를 무인들의 집권이후 이전의 문신 귀족들이 추구했던 신라계승의 역사인식을 대신하여 무인들의 체질에 부합되는 굳건한 기상의 고구려 영웅담을 다루었다는 점과 주몽신화를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의 시조의 이야기가 중국의 것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서 우리의 역사를 자주적인 입장에서 새로이 인식하려는 노력으로 보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내가 찾던 논문의 내용과는 달랐지만, 그 안에서 나는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이규보의 편찬의도로 나의 역사의식이 담긴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이게 교수님의 과제의도와 상통되는 것인지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레포트를 쓰고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헷갈리지만 나의 글을, 나는 ‘현재에도 만들어 질 수 있는 신화’로 하기로 정했다. 우선 나의 신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의 신화의 주된 소재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 첫째는 ‘치우천황’으로 치우천황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붉은악마의 마크와 택견복 뒤의 치우천황 마크일 것이다. 무시무시하고 무서운 이미지의 그가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작년에 수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우리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내 추측이지만 내가 치우천황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느낌이, 아마 이규보가 귀환(鬼幻)스럽다고 여기던 동명왕 설화를 구삼국사의 동명왕본기를 본 뒤 신과 성으로 믿었을 때의 느낌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껍질을 깬 기분이랄까? 내 사고의 틀을 깨면서 아주 조금의 변화지만 더 나의 삶의 공간이 넓어진 듯한 느낌.... 이 느낌이라면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지은 것이 이해가 간다. 나도 단숨에 어떤 것을 지어서 여러 사람에게 내가 느낀 것을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다시 치우천황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국사책에 우리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는가?’ 아마 국사책에 나왔으니 그러려니 하고 그저 외웠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이게 우리나라 암기식 교육의 문제점인가보다.^^; 그저 배달을 잘하나? 하고 농담식으로 웃고 넘겼을 뿐 배달민족이니까 배달민족이라고 하지 이유가 필요하나? 수없이 들은 말인데 하고 당연시했다. 그러나 작년에 단군조선 전에 배달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조는 단군이 아닌 그전의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치우천황은 이 배달국의 14대 천황인 치우천황(자오지천황이라고도 함)이다. 73전 73승 전승 무패의 기록을 남겨 동양제패의 군신으로 오랫동안 추앙받고있는 전쟁의 신이다. 이런 치우천황의 치적을 살펴보면, 벽토지(闢土地), 흥산(興産), 작병(作兵) 및 연병(鍊兵), 그리고 뛰어난 숭생중물 (崇生 衆物)의 치세이념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벽토지란 산과 계곡을 뚫어 길을 냈음을 말한다. 교통 의 발달을 꾀한 것이다. 흥산이란 산업을 진흥시켰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기>의 일부 내용처럼 노산 등지의 광물을 뽑아 제련사업을 일으켰던 것이다. 특히나 이때 치우천황은 구야(九冶)라고 하는 일종의 기술부대를 운용하였다고 한다. 제련산업 일으키고 기술부대 운용도 또한 작병이란 각종 병장기를 만들었음을 말하는 것이요, 연병이란 강력 한 군대를 길렀음을 뜻한다. 그리고 숭생중물이란 치우천황의 치도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이다. 이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온갖 물상의 존귀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황은 그야말로 문무겸전의 이념으로 지금도 힘써야할 교통 산업 등을 그때부터 힘써서 겨레의 앞날을 열고자 땀흘렸던 것이다. 이처럼 ‘뛰어난 왕! 무패의 전쟁신!’이 바로 치우천황인 것이다. 그럼 우리 민족을 또 왜 동이족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동쪽의 오랑캐라구? 그건 자기보다 잘난 나라꼴을 못 보는 중국 입장의 주장이다. 우리가 이런 중국의 부정적 견해를 그대로 받아써야만 하는 걸까? 동이족이란 말은, 치우천황 등극에 이르러 구야를 만들어 동과 철을 채취하고 철을 단련함으로써 고극, 대궁을 만들고 사냥과 정벌, 전쟁의 무기로 삼았다. 무패의 신 치우가 있으니 여러 족속들은 대궁을 사용하는 우리민족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컸을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저들은 우리 종족을 가리켜 <夷>라고했다. 설문에 따르면, <夷는 큰 것(大으)로부터, 활(弓)로부터 나온 글자로 동쪽에 사는 사람>이라 한다. 그러니까 동이족이라 함은 큰활을 사용하는 무서운 동쪽의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동쪽의 오랑캐라는 말과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그럼 이런 이야기들 무엇에 근거하여 나왔느냐... 이것은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한단고기란 책은 1911년 우리 고서(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 네권을 계연수 선생이 묶은 것이며, <삼성기 상편>은 신라의 안함로, <삼성기 하편>은 원중동, <단군세기>는 고려의 행촌선생 이암 문정공, <북부여기>는 고려말의 학자인 범장, <태백일사>는 중종때의 이맥이 쓰거나 전한 책이다. 이 책은 위에서의 이야기로도 느꼈겠지만 일제시대 식민사관에 입각한 기존의 국사해석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지금은 증거부족, 개인이 편찬한 책, 편찬자들의 업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흔히 정사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완전 해괴하고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처음에 보고 느꼈던 것처럼 귀환(鬼幻)스럽다고 여긴다면 우리민족의 또 다른 이름인 배달민족과 동이족은 어디서 나왔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역사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여겨지던 것이 어떠한 증거물이 나오면 정설로 여겨지고 정설로 굳게 믿어지던 것이 뒤집히기도 한다. 지금도 역사는 뒤집히고 있다. 일본은 자신의 역사를 오래되었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역사적 증거를 위증한 일이 있었다. 우린 위조된 그 증거를 믿지 않았던가?! 또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에 역사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연구하여 포석정을 임금이 노는 곳이 아닌 제사지내는 곳으로 밝힌 일도 있지 않은가? 이것은 엄청난 역사의 뒤집음이다. 포석정이 향락의 장소였을 때에는 나라가 망해감에도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베풀었던 망해도 싼 임금 경애왕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 되면서 꺼져가는 나라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최후의 순간까지 나라를 살려보고자 노력했던 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차이에 역사는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가 큰 호수에 대야의 물만큼이나 될까?’하는 생각과 ‘지금의 역사를 100%믿을 수 있나?’하는 의문이 들면서 한단고기의 내용을 그렇게 무시해 버려도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한단고기의 내용을 믿는다. 아마 이규보가 동명이야기를 믿을 때 이런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새로운 것을 알아서 어떤 일이 블록이 맞듯이 맞아가는 뿌듯함과 다수가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둘째는 2002년에 일어난 것으로 다들 신화라고 한다. 바로 월드컵신화인데 작년 6월에 느낀 그 감동은 신화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신화라고 공공연히 이야기 하는것을 보면 신화라고 이야기해도 될 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규보가 동명왕편서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동명왕의 사적은 변화신이하여 여러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킬 일이 아니요, 실로 창국하신 신의 자취인 것이다. 이러하니, 이 일을 기술하지 않으면 앞으로 후세에 무엇을 볼 수 있으리요.” 동명왕편을 써서 남겨놓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인데, 지금은 기록과학의 발달로 사진 비디오 등으로 기록이 가능하지만 월드컵신화를 나의 기술이 아니면 남들은 알 수 없다는 가정과 이규보와 같은 사명감으로 신화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신화는 보통 오랜 세월을 거슬러 암암리에 믿어지기도 하고 안믿어지기도 하는 이상한 성격을 가지면서 전승되어 온 것이다. 그런 신화를 현대의 우리가 지으면 우습고 이상하게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보는 주몽신화, 혁거세신화, 수로왕신화등도 그 시대에는 아마 우습고 이상한 그냥 사실이 조금 부풀려진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비디오가 없다면 나중에 우리의 사강신화 이야기도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신화를 만들어 보고자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뻥과 그전의 여러 역사적 사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 신화라는 생각아래 치우와 합쳐진 사강신화를 간단히 적어보면,
“치우천황 재탄생 신화”
내가 한단고기를 보고 치우천황이 존재하지 않고 헛된 인물이 아니라 실재로 존재했었고 우리 민족의 승리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사실을 내가 기술치 않으면 후세사람들이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걱정하여 펜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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