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리학] 사칠리기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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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서언

당대 배경

논쟁의 쟁점

사단칠정논쟁의 발단

퇴계이황의 사상

기대승의 사상

계와 고봉의 논쟁

기대승의 첫 비판

이황의 변론

기대승의 재비판

이황의 개정과 변론
기대승의 연이은 변론

논변의 마무리

결과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칠리기논쟁으로 본 조선 성리학

서언
조선조의 사칠논쟁(四七論爭)은 주자학의 수용에 있어서 이론적 심화와 발전의 한 징표일 뿐만 아니라, 그 논쟁을 통하여 주자학 내지 송대 성리학이 갖고 있는 특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철학적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배경 시간이 지날수록 비대해지고 능수능란해지는 훈구세력에 대해 왕실 쪽에서는 이들을 견제할 세력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찾은 세력이 바로 향촌 사회에 파묻힌 고려말 절의파 계열 학자들의 맥을 이어온 산림의 유학자들이다. 더욱이 이들은 엄격한 도덕주의로 정신무장을 하고 있어 개혁에 안성맞춤이었고 같은 주자학파의 학자들이므로 훈구대신의 견제에도 적극적이었으며, 15세기 중반 이후로는 이들이 중앙 정계에 직접 참여하여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의향을 분명하게 내비치곤 했으니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었다. 당시 산림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이론 방면에 소극적이고 실천을 중시하는 데 있었다. 이들에게 실천이란 1차적으로 일상생활 중의 도덕적 삶을 의미하고 2차적으로 사회의 경세 방면에서 이상적 정치를 추구하는 지치주의가 된다.
점차 중앙 정계에의 참여를 희구하던 산림 주자학 세력의 의향과 훈구세력에 대한 왕실의 견제 정책이 맞아떨어져 성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산림 도학자들의 중앙 정계 진출이 시도된다. 그러나 훈구세력들이 그냥 놔둘리 없다. 훈구세력들이 이들 신진 사림 세력을 밀쳐내기 위해 공작을 벌여 일어난 사건이 바로 사화이다. 사화란 간단히 말하자면 선비들이 떼죽음을 당한 시국 사건이다.
이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통과의례를 지나 사림세력은 15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결국 중앙 정계를 완전 장악하게 된다. 이때부터 사림파 주자학자들의 유학 사조는 사단칠정 논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성리학 이론에 대한 논의가 대폭 강화되어 본격적인 성리학 시대의 문을 열게 된다.

16세기 초에 해당하는 중종초기에 기묘사림으로 불리는 조광조등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성리학적 이념을 현실사회에 정치적으로 구현하고자 진력하였으나 중종14년(1519년) 기묘사화로 좌절되었다. 중종후기에는 권습, 조식, 서경덕 등이 등장하며, 명종 대에는 이언적, 이황, 기대승등 100여명에 이르는 학자들이 학문 활동을 통하여 연구 업적을 남기고 있다. 이 시기에 『주자대전』이 수입되어 성리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황의 『주자서절요』와 기대승의 『주자문록』은 주자학에 대한 학습이 얼마나 정밀한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황보다 한 세대 후인 선조대에 율곡 이이가 출현한다. 16세기는 이른바 사대사화로 불리는 무오사화(연산군 4년, 1498년), 갑자사화(연산군 10년, 1504년), 기묘사화(중종14년, 1519년), 을사사화(명종 즉위년, 1545년) 가운데 3회의 사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사림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은 이 시기에 사단칠정론으로 대표되는 정밀한 이기심성론이 발달하게 됐다.
논쟁의 쟁점
이 논쟁의 쟁점은 1) 삶의 표준은 현상을 초월해 존재하는가, 내재해 존재하는가 하는 ‘삶의 표준의 지위’에 관한 문제, 그리고 2) 삶의 표준은 우리 삶에 작용을 하는 것인가, 작용을 못하는 것인가 하는 ‘삶의 표준의 작용’에 관한 문제로 압축될 수 있다. 이 쟁점을 두고 이황과 기대승은 상이한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사단칠정논쟁 정이천은 희ㆍ노ㆍ애ㆍ락ㆍ애ㆍ오ㆍ욕의 7정을 인의예지신의 성과 직접 결부시켰다. 훗날 중국에서는 아무도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문제점을 지적해주지 못했다. 한국 성리학의 사단칠정 논변은 바로 이 문제에서 비롯한다.
정이천의 성정론을 이어 완성시킨 주자의 정이론에서는 측은ㆍ수오ㆍ사양ㆍ시비의 4단과 희ㆍ노ㆍ애ㆍ락ㆍ애ㆍ오ㆍ욕의 7정이 모두 정이다. 4단은 당연히 각각 인ㆍ의ㆍ예ㆍ지의 발현이다. 그런데, 정이천의 말대로라면, 7정 역시 인의예지의 발현이다. 그렇다며, 4단의 정과 7정의 정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이 대목이 사단칠정에 관한 모든 문제의 근원처이다.
의 발단
사단 이란 개념은 원래 맹자가 성선설의 근거로 제시한 인간 심리 현상 중의 일부를 말한다. 곧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을 각각 仁, 義, 禮, 智의 단서로 설명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칠정은 인간의 감정을 통칭하여 喜, 怒, 哀, 懼, 愛, 惡, 欲으로 지칭한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주자학 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대체로 中庸에서 언급한 喜, 怒, 愛, 樂의 네 가지 감정을 의미한다.
이런 사단칠정의 문제는 각기 의도하는 바가 다른 이 둘을 어떤 관계로 파악하느냐 에서 시작 된다. 주희는 인간의 심리현상을 性과 情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는 성이 정의 근거가 되고 성이 움직이면 그것이 정으로 바뀐다고 규정하면서 맹자가 말한 사단은 情이고 사덕은 性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희 맹자는 심과 성과 정이 동체의 관계에 있으므로 ‘사단지심’이라는 술어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주자에게는 심ㆍ성ㆍ정이 각각 이체이므로 주자로서는 『맹자』원문의 “측은지심...,수오지심...” 등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으나 자신의 발언을 할 때는 반드시 “측은ㆍ수오ㆍ사양ㆍ시비는 정이다”라고 말하고, 또 이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다.
는 다시 희, 노, 애, 락, 곧 칠정은 정이고,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을 성이라고 했다. 성을 인, 의, 예, 지로 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사단과 칠정이 다 같은 정임에도 동일개념으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즉, 사단은 順善無惡한 것이며, 칠정은 발동하여 中節한 경우는 선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악이므로 有善有惡하다고 본다. 이 경우에는 인간의 선한심리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칠정 중의 악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문제가 된다. 단순하게 보면 칠정은 정이고 정의 근거는 성이므로, 칠정도 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칠정 중의 악도 순선무악한 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참고문헌
퇴계 고봉,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소나무
윤사순, 퇴계철학의 연구 :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3
배종호,한국유학사 :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4
이상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 : 서문당, 1973
안긍섭, 사단칠정설의 바른 해석 - 인간행위의 선악성립의 보편적 기준 ,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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