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교육학] 음악의 정체성과 음악교육을 통한 삶의 양식과 앎의 질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0.04.09 / 2019.12.24
- 26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2,1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추천 연관자료
- 목차
-
1. 서론
2. 본론
가. 한국 음악의 정체성
1) 소통하는 음악
가) 인간과 신 (산자와 죽은 자의 대화)
나) 인간과 인간 (음악의 공급과 수요)
다) 고독한 인간의 절규
2) 한국문화의 정체성
가) 우리나라 예술 문화의 문제점
나) 한국 음악의 정체성
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나. 음악의 교육적 역사성
1) 한국 음악사의 역사성
가) 전 - 근대
나) 근대(개화기 시대)
다) 탈 - 근대(해방 이후 ~ 현대)
다. 음악교과 교육속의 교육철학
가) 음악의 즐거움
나) 배움, 가르침, 깨우침
다) 음악의 교육 방향
3. 결론
※ 부록
1. 참고자료
- 본문내용
-
지방의 감영, 군영, 수영도 음악의 큰 수요자였다. 이곳에서도 장악원과 오위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자체 공급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 여기에 속한 악사와 기생은 궁중의 행사에 불려가기도 했다. 서울과 지방관아 사이에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지방 관아에 속한 악사는 오위영의 악사가 그랬던 것처럼 민간 음악계와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 이후 장악원과 오위영의 음악처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지방관아의 음악은 대부분 소멸하고 말았다.
세 번째로는 양반층과 중인층의 음악을 들 수 있는데, 다음은 민간에서의, 지배계층인 양반과 중간 지배계층인 중인의 음악 수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이 음악을 필요로 하는 기회는 매우 광범위한데,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삼현육각을 살펴보자. 이는 행차나 행사에서의 음악 수요인데, 이때의 음악은 대개 삼현육각이 담당한다. 양반들끼리 어울려 시회(詩會)를 하거나, 활을 쏘러 가거나, 과거 급제 후 유가(遊街)를 하거나, 놀이를 할 때에 으레 삼현육각을 대동했다. “풍악을 울린다.”는 문구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은 풍류음악이다. 양반과 중인도 직접 음악 행위를 했는데, 여기에 민간 악사도 함께 참여했다. 이 경우 이들 모두가 음악의 담당자인 셈이다. 본래 선비들이 수양의 방편으로 거문고를 연주했는데, 나중에는 중인까지 가세하여 독특한 풍류방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 때 가장 즐겨 연주한 곡이 <영산회상>이었다. <영산회상>을 합주로 연주할 경우 민간의 삼현육각 악사도 여기에 참여하여 거문고 연주를 도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 이후 지배계층의 몰락과 함께 풍류방의 전통도 사그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음악만은‘이왕직 아악부’를 통해 후대로 전해졌다. 지방에서도 이 음악은 근근이 이어졌는데 요즘은 이를‘향제 줄풍류’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양반과 중인이 애호한 또 하나의 갈래는 가곡과 가사다. 대개는 듣기를 즐겼겠지만 중인 출신의 가객(歌客)도 많았다. 박효관 같은 사람은 당대의 유명한 가객으로 활동했다. 이들이 가곡과 가사를 즐길 때에 하부에는 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을 상대하는 기생은 가곡과 가사를 익혀 여창의 영역을 개발하였다. 또 가곡을 창할 때에는 반주가 따르게 되는데, 이 일도 삼현육각 악사의 몫이었다. 삼현육각 악사는 여기에서 얻은 음악을 따로 떼어 자신들의 연주곡목으로 삼기도 했다. 가곡과 가사 역시 일제 강점 이후 급격히 소멸했지만 그 중 한 가닥이 이왕직 아악부를 통해 후대로 전해 졌다.
네 번째로는 일반 서민들의 음악 수요를 살펴볼 수 있다. 서민의 음악 수요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서민이 전적으로 수용자의 입장인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서민 자신이 그 음악을 담당하는 경우이다.
먼저 서민이 수용자인 경우에 어떤 음악이 있었는지는 제공자를 따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때 제공자란 음악을 생계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던 전문예능인들인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나타난다. 현재 전하는 음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판소리 : 소리광대, 산타령 : 사당패 또는 선소리패, 잡가와 창민요 : 도시 소리꾼과 서민 상대 기생, 풍물 : 걸립패와 유랑예능인집단인 남사당과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제공자였다. 이밖에 지금은 그 음악이 전승되지 않지만 풍각쟁이, 솟대쟁이패, 초란이패 등도 있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전하는 문헌이 소략하여 전모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서민 자신이 담당자가 되는 음악은 민요와 풍물이다. 우리 민족처럼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도 없다고 한다. 생활 구석구석에 노래와 풍물이 있었고, 그것은 생활에 지친 서민들을 달래주었다. 음악은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며 양적으로 질적으로 빼어난 음악 유산을 남겼다.
다) 고독한 인간의 절규
- 참고문헌
-
1. 참고자료
최철병,『탈피, 삶의 양식과 앎의 질서 : 배움과 가르침 그리고 깨우침』, 2003.
에머리히 코레트,『인간이란 무엇인가』
William Barrett(오병남 역),『비합리와 비합리적 인간』, 2001.
칙센트미하이,『몰입의 즐거움』, 1997.
철학과 자료실,「칸트」
장사훈 외,『국악개론』, 1975.
송방송,『한국음악통사』, 1984.
이성천 외,『알기쉬운 국악개론』, 1994.
김해숙 외,『한국전통음악개론』, 1995.
송지원,『문헌과해석』통권 17호 ‘유우춘과 해금’ , 2001.
유득공,『영재집』권10「유우춘전」
일리아스 (박미애 역),『모차르트,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1999.
성기련,‘19세기 전통사회의 음악과 오늘날 국악’
<국악개론 및 국악감상> 강의록, 2003.
오용록,‘한국음악의 횡적 개관 : 19세기의 음악사회’ <국악분석> 강의록, 2004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