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정리-현대문학기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9.08.15 / 2019.12.24
- 13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5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 목차
-
1. 민중계몽운동
2. 일제의 식민지배에 부합하는 친일적 계몽운동
1. 부조리 문학의 개념
2. 운율의 구성 요소
3. 운율의 갈래
희곡의 3요소
문체의 종류
농민문학 [農民文學]
- 본문내용
-
1. 민중계몽운동
동아일보사는 1931∼1934년까지 4회에 걸쳐 전국적인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다. 제3회까지 이 운동은 '브나로드(v narod)'라고 불렸으나 제4회부터는 계몽운동으로 바뀌었다. 본래 브나로드는 '민중 속으로'라는 뜻의 러시아말로 러시아 말기에 지식인들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면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구호이다. 이 구호를 앞세우고 1874년에 수많은 러시아 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계몽운동을 벌였는데, 그뒤부터 이 말이 계몽운동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국내의 계몽운동은 1920년대 초 서울의 학생과 문화단체, 도쿄[東京]의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1926년 천도교 조선농민사에서 펼친 귀농운동(歸農運動)과 1930년대 수원고등농림학교 한국학생들의 문맹퇴치운동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농촌계몽운동과 함께 한글보급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1928년 동아일보사가 창간 8주년 행사의 하나로 문맹퇴치운동을 펼치려다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좌절되었고 이듬해에는 조선일보사가 귀향남녀학생문자보급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동아일보사가 전개한 브나로드운동은 고등보통학교 4, 5학년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생계몽대와 전문학교 이상의 학생으로 조직된 학생강연대, 학생기자대를 주축으로 하여 행해졌다. 이들은 야학을 열고 음악과 연극, 위생생활을 가르치면서 계몽운동과 문화운동을 병행해나갔다. 이들과는 별도로 1931년에 새로 조직된 조선어학회의 후원으로 전국 주요도시에서 조선어강습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러한 민중계몽운동은 언론계와 문화단체, 청년학생들이 힘을 모아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고 독립의 기초를 다지기 위하여 전개하였던 거국적인 민족자강운동으로 평가된다.
2. 일제의 식민지배에 부합하는 친일적 계몽운동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가 1931 - 1934까지 4회에 걸쳐 실시한 민중계몽운동입니다.
이 무렵을 전후해서 일본은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었는데 그것은 일본의 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근대화를 이루었으나 반대급부로 일본 농민의 사기와 농업생산성은 극도로 떨어졌고 1차대전 중에는 식량을 요구하는 일본인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당황한 일본정부는 부족한 식량을 우리나라에서 징발해갔고 그 결과 일본으로 실어간 쌀이 1920년의 175만 섬에서 1928년에는 740만5천 섬으로 무려 4.2배나 증가합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는 식량이 모자라 하루 죽 한 끼도 먹기가 어려워졌고 이 땅에 건너 온 일본인들이 식량 뿐 아니라 토지를 수탈하여 농민은 빈사상태였습니다.
곳곳에서 농민의 저항이 일어났고 일제 경찰에 검거된 농민만 2만 명이 넘자 총독부는 농민에 대한 회유정책으로 '농촌진흥운동'을 벌입니다. 즉 조선 농민의 절대빈곤은 일본의 수탈 때문이 아니라 조선 농민이 무식하고 게으르기 때문이라며 생활개량을 통해서만 그것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일제에 협력적인 지식인들을 이 운동에 투입합니다.
여기에 호응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참여한 것이 조선일보의 귀향학생 문자보급운동과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입니다.
브나로드 운동이란 원래 러시아의 차르 체제 말기에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취지로 러시아 지식인들에 의해 제창된 구호로 그 뜻은 "민중 속으로"입니다. 그것을 동아일보가 차용한 것이죠.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의 핵심은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면 잘 살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조선민중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식민지 지배체제 때문이 아니라 농민의 무지와, 이를 계몽·각성시킬 책임이 있는 지식인의 이기심, 나태함에 있으며 그러므로 학생 등 지식인(주로 친일적)이 농촌으로 들어가서 계몽해야 하고 농민은 그 계몽에 잘 따르라는 것이 브나로드 운동입니다.
따라서 농촌으로 들어간 지식인은 일본의 식민정책에 충실한 활동을 했습니다. 즉 조선 농민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불성실한 생활을 해왔는가를 강조하고, 일본을 본따서 근면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농민에게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안겨주고 일본에 대한 선망의 마음을 심어주어 식민수탈지배에 대한 저항을 억눌렀습니다.
물론 거기 참여한 학생 등 지식인이 그대로만 한 것은 아니고 민족의식을 깨우치는데에 상당한 기여를 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지식인·학생 중 의식있는 일부에 그칩니다.
**브나로드 운동 관련 작품
이광수의 〈흙〉, 이기영의 〈고향〉, 한설야의 〈과도기〉, 조명희의 〈낙동강〉 등이 브나로드운동, 즉 귀향 또는 귀농을 사건전개의 중요한 계기로 보고 있습니다.
이무영의 〈제1과 제1장〉·〈흙의 노예〉 등에서도 농촌으로 돌아와 농민의 삶을 배우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귀농의 동기와 목적이 다르고 그것이 작품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다르므로 귀농문학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작중인물이 농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목적이 명확하고, 그것이 작품의 중심문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브나로드 관련 진정한 문학작품은〈흙〉과 〈상록수〉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앙띠로망, 실존주의
1. 부조리 문학의 개념
부조리 문학과 앙띠 로망은 흔히 전후문학이라는 상위개념으로 묶여 지기도한다. 부조리의 사상을 중심으로한 실존주의 문학과 아리스토 텔레스적인 전통적 樣式化 방법을 파괴 하거나 부정한 부조리 연극, 그리고 19세기 후반 사실주의를 통해 확립된 전통적인 소설기법을 거부한 앙띠로망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이 안겨준 충격의 산물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중에서 앙띠로망을 제외한 나머지 두 문학 운동 혹은 문예사조의 싹은 이미 2차대전 전부터 보이고 있었다. 실존주위 문학과 부조리 연극은 이런 의미에서 전후의 변칙적인 현상으로서만 이해하는것은 곤란하다. 실재로 불란서 문학사나 사상사를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놓고 보는 것에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있다. 정치적 사회적인 변화를 근원적인 것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은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기간을 한덩어리로 잡고 2차대전 이후 1-20년간을 '전후'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렇듯 상식적이며 일반화 되다 시피한 시대구분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론가 들도 없지않다.가령, H. 스튜어트 휴즈는 <현대 프랑스 지성사>책의 서론에서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기간을 '절망의 시대(years of desperation)'라는 이름으로 묶어 볼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2차대전의 진정한 청산 즉 고전적 전통의 몰락은 20년대말의 경제공황과 파시스트 출현의 분위기 속에서 매듭을 지을수 있었다고 파악 하면서 30년대부터 시작된 知的 審美的 윤리적 측면에서의 혁신의 기운은50년대 후반에 들어 서면서 뚜렷하게 표면화 되었다고 설명한다.
H.스튜어트의 이상과 같은 견해를 응용해 보면 부조리 문학과 앙띠로망 운동을 전후문학으로 묶여지는 끝날수 만은 없는 것임을 짐작케 된다. 그리고 부조리 문학과 앙띠로망은 정치적 사회적 으로는 좌절감에 휩싸이면서 철학적 윤리적 측면에서는 인간스스로를 철저하게 통찰하고 분석하려 했던 이른바 '격랑의 시대'가 낳은 산물임을 알게 된다.
또 부조리 개념을 가장 먼저 言明한 것은 싸르트르의 소설 <구토區吐>에서 잡을수 있다면 부조리 문학은 곧 전후문학 이라는 등식은 고집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왜냐하면 <구토>는 1938년에 발표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을 치루고 난후의 허무감, 좌절감 그리고 인간과 역사에대한 불신 풍조가 부조리문학이 더큰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었던 바탕이 된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부조리不條理the absurd'의 사전적 의미는 '어울리지 않는것',특히 理性이나 양식에 맞지 않는것' 또는 '이성에 정면으로 배치 되는것'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말해 不條理는 불합리 부조화 反理性 비상식 모순 등과 같은 뜻의 낱말이라 할수있다. 이 말은 싸르트르의 <구토La Nausee',1938>와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스의 神話Le Mythe de Sysyphe,1943>, 특히 후자의 책을 통해 하나의 심오한 철학용어로 격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이는 실존주의를 부조리의 철학이라 부르기도 한며 까뮈의 철학 사상을 부조리 철학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부조리란 말은 나중에 가서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부조리란 말의 남용의 원인으로 무었보다 실존주의 철학이 그 어느 철학사조 보다 대중적 이었다는 점을 지적할수 있다. 그럼에도 不條理文學 이란 용어도 아직 낮선 느낌을 주고 있으며 不條理小說 이나 不條理 詩란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不條理演劇(absurd drama)이란 용어는 이제는 하나의 엄연한 전문 용어로 받아 드려질 정도 까지 되었다. 부조리란 말을 연극에 연극에 적응시켜 그 기본적 의미를 처음으로 정리 시키려한 사람은 마티 애스틴(Martin Esslin)이라 한다. 그는 <부조리연극The theater of the Absurd,1961)>이란 저서를 통해 부조리란 말과 부조리극 이란 개념의 영역을 나름대로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부조리극과 전통극의 방법론을 대비하면서 부조리극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조를 지니고 있음과 또 부조리극은 20세기의 인간들의 삶의 특징이기도한 '확신의 결여', '환멸.을 온상으로 한 것이라고 (그 성격을)제시 하였다.
그에 의하면 부조리극은,
1. 말할만한 이야기나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다.
2.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에 신경쓰지 않는다.
3. 시작과 종말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4. 꿈과 악몽의 세계를 자주 보여 준다.
5. 일관성이 없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는 점등을 특질로 한다. 그런데 이와같은 특질들은 Beckett, Adamov,Ionesco,Jenet 등의 작품에서 자주 확인해 볼수있는 것으로 싸르뜨르나 까뮈의 희곡 에서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부조리극은 부조리의 사상을 전통적 수법에 의거하여 한편의 희곡으로 형상화한 싸르뜨르, 까뮈의 계통과 반전통적 이며 실험적 이며 난해한 연극기법을 추구한 베케트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최근 판매 자료
- 일리아스를 통한 호메로스의 시문학적 존재이해와 나르시시즘
- [세계신화의비교이해] 신화 텍스트 속 영웅의 초상의 변천에 대한 분석적 읽기
- [영어과 수업지도안] 초등학교 5학년 - 11. What are you doing
- 로르샤하 해석의 원리 구조 변인의 해석
- 국제장애분류기준(ICIDH)-2에 의한 장애의 개념을 서술하고 ICIDH-1과 비교하여 ICIDH-2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 설명하시오
- [고등학교 1학년 미술] 백남준 학습지도안
- [문학과 여성] 문학속 여성의 욕망
- 기독교 유아교육의 내용과 발달심리학 이론과의 관계
- 한국어실습 4차시 참관일지 (한국어학과), (초급 문법 참관일지)
- 사회복지실천관계의 기본원리(개별화, 의도적감정표현,통제된정서적관여, 비판적태도,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 비밀보장)에 대해 예를 들어 서술하시오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