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적 목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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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적 목표는 무엇일까
이번 시창청음 레포트는 음악에 대해 자유적인 주제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고민을 말해도 괜찮고 음악에 대해서 라면 뭐든 써도 괜찮은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내가 가진 고민을 글로 쓰기 전에 내가 여태까지 음악을 왜 시작하였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정리하고 그 뒤에 연관된 내가 가진 고민을 글로 쓰고 싶단 생각을 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그냥 노래 따라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6살 시절 SES , 핑클을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때는 막연하게 내가 가수가 되어서 TV안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어릴 적 제일 갖고 싶던 장난감은 피아노, 장난감마이크였고 생일이나 어린이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피아노도 커져가고 장난감 마이크도 기능이 추가된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노래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그냥 막연한 동경 이었을까?
그 후 초등학교5학년 때 생일선물로 MP3를 받았고 그 MP3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내게는 가장 값지고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몇 곡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에 내게는 정말 신세계였다. 테이프를 넣을 수 있는 카세트도 있었고, CD플레이어도 있었지만 MP3같은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노래만 콕콕 집어서 넣을 수 있었고 또 매일매일 갖고 다니기 편해서 항상 들으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누가 나에게 ‘넌 장래희망이 뭐니?’ 혹은 새 학기 학교에서 늘 하던 장래희망 적기 칸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변함없이 가수였다. 처음엔 가수가 되고 싶었고 그냥 내 노래를 모두에게 TV를 통해 모두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신났다.
중학교2학년 이 나이에 처음 ‘실용음악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부모님께 보내달라고 하였다. 당연히 반대를 하셨고 공부를 하는 게 맞고 대학을 가서 해도 늦지 않다며 공부나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결국 내 뜻에 따라 주셨고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나이엔 철도 없었고 내 주위에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는 애는 나밖에 없었고 노는 게 더 좋을 나이기에 레슨도 자주자주 빼먹고 항상 놀러 다니고 아프다고 거짓말을 치기에 바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래가 좋아서 무작정 학원을 다닌 건데 발성 , 호흡 같은 머리 아픈 것들을 배운 다는거 자체에도 흥미를 잃었던 부분도 있었던 거 같다. 노래들은 생전 알지도 못하던 영어노래에 박자나 음에 신경을 써야 되고 내가 알던 노래랑은 다른 거였다.
중학교 3학년 결국 음악학원을 관두고 내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곧 고등학교를 올라가야 하는데 무조건 공부를 하고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인문계 가기는 죽어도 싫었다. 뭐든 내 꿈을 찾아서 실업계를 그냥 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다시 실용음악학원을 다니고 싶어 부모님께 말해 봤지만 이미 한번 해봤는데 내가 노력을 안했으니까 안 된다며 화를 내셨다. 결국 나는 옷 만드는 의상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흥미가 없었고 부모님의 권유로 다닌 거라 재미도 못 느껴서 2개월 만에 바로 관두게 되었다. 그 후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미술도 해보았지만 마찬가지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되었다. 그 당시 미술이나 의상학원에 다닐 때 항상 밤에 노래를 들을 때면 다시 노래가 하고 싶고 뭔가 내가 지금 배워야 될 거 같은데 못 배우고 있으니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꾸준히 말을 해봤지만 항상 말싸움으로 번질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고등학교진학을 선택해야 되는 나이가 되었고 엄마는 당연히 인문계를 가라며 실업계는 안 된다고 말씀하셔서 다시 한 번 엄마와 충돌하게 되었다. 그 나이에 정말 많이 엄마랑 싸워서 지금 생각해보면 내 질풍노도의 시기는 그때 였던거 같다. 나는 원래 고등학교를 실용음악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엔 다 실업계였다. 그때 담임선생님께 실업계에서 조금 더 진화한 ‘특성화고등학교’를 설명해 주었고 엄마도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해보더니 맘에 드셨는지 원서를 한번 써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학교엔 내가 원하는 과가 없었다. ‘방송기술과’, ‘산업디자인과’, ‘사진영상과’가 있었는데 그냥 1지망부터3지망까지 다써버렸다. 어느 과를 가던지 별로 상관도 없었다. 그 나이에 단지 인문계라서 가기 싫단 그런 철없는 이유만으로 나는 미디어고등학교 사진영상과에 합격을 하였고, 사진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신기했다. DSLR을 사서 애들과 학교 끝나면 한강이나 여의도를 가서 항상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키웠고, 흑백사진을 인화하며 사진에 흥미를 붙였던 거 같다. 하지만 역시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노래를 들을 때면 ‘내가 지금 왜 여기서 사진을 찍고 있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고 점점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는데 장학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음악학원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엄마도 일단 공부를 잘해야 장학금을 받는 거니까 흔쾌히 허락을 하셨고 나는 장학금을 받았다. 다시 실용음악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선생님도 좋았고 연습도 훨씬 열심히 나갔다. 그때가 고등학교2학년 초였다.
하지만 학원에 다시 다닌 지 6개월도 채 안되었을 때 성대 결절이 왔다. 사실 나는 그전까지만 해도 성대 결절이 뭔지 몰랐고, 목에 대한 관리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어느 날부턴가 목이 아프고 갈라지고 고음이 안 되고 저음이 불안해져서 병원을 갔더니 성대 결절이라고 하였다. 안심할 경우에는 잘 쉬고 말 안하면 나을 정도지만 나는 좀 병을 키운 뒤에 가서 6개월 정도 음성치료를 하고 중간쯤에 검사해서 결절이 그대로 있으면 수술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때가 제일 무섭고 힘든 시기 이었다. 뭔가 노래를 하고 싶은데 못한다는 생각이 힘들게 만들었다. 노래를 다시 관뒀을 때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랑 노래는 안 맞는 거라고 그냥 사진하면서 남들처럼 대학가고 취업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나도 그런 생각을 하였다. 항상 하려고 하면 뭔가 꼬이는 기분이 들고 노래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병원 안다녀도 되고 이런 치료 안 받아도 되는데 진짜 이 길은 아닌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래를 듣다보면 신기하게 그런 생각이 정말 다 정리가 된다. 그냥 맘이 편안해 지고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이 갔다.
치료를 다 받고 다시 노래를 배웠을 때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옛날처럼 소리도 함부로 못 내겠고 목이 상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소리를 냈다. 고음도 안 올라가고 어떻게든 목에 무리가 안가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되질 않았다. 이때가 고3초반이었는데 나는 고3때 추억이 하나도 없다. 아침에 학교를 등교해서 학교에서 1교시가 끝나면 나와서 학원을 갔기 때문이다. 2학기 때에는 아예 학교를 다 안 나갔다. 그래도 취업으로 인정을 해줘서 출석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 가장 많은 깨달음과 연습을 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고 웃기도 가장 많이 웃었던 때였다.
19살 때는 정말 방학 때는 아침11시부터 저녁11시까지 학원에서 연습을 했다. 물론 중간에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항상 연습이 우선이었고, 애들이 놀 때 나는 혼자서 연습했을 때도 많았다. 그 당시 배웠던 선생님은 나에게 스타일을 먼저 만들어 주려고 해서 발성은 배우지도 못했었다. 록 종류의 음악이나 보사노바 같은 곡을 많이 레슨 곡으로 내주셨었는데 이 선생님과 있을 때는 한 번도 나쁜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을 정도로 레슨준비도 철저히 해갔고 선생님 제자 중에서는 내가 연습이나 노력하는 것은 제일 1등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정말 바닥이었다. 박치 였고 음도 못 맞추고 아예 듣지를 못했었다. 남들은 노래방 습관이라도 있어서 웬만한 발라드는 그래도 잘하게 들리는데 특히 나에게 발라드는 그냥 동요였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6시간 연습해서 겨우겨우 되는 것들이 내 친구는1시간도 채 안돼서 될 때가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나는 ‘남들이 놀 때 같이 놀면 아무것도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기 때문에 더 노력을 했고 연습을 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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