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모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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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백남준 아트센터는 2006년 타계한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기도한 故백남준 선생의 예술작품을 전시함으로써 하나의 질문에 대해 그것을 뒤집어 새로운 질문으로 변형시킬 때 무한한 변형과 순환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어 어떤 답에 대해서도 항구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실험적인 자유 공간이 되고자 건립된 미술관이라고 한다.
미술관의 모습도 상당히 독특한데, 이 건축설계는 2003년 430여명이 참여한 국제 공모전에서 유니온 오브 인터네셔널 아티스트(UIA)의 추천을 받았고 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젊은 독일 건축가인 크리스텐 쉐멜Kirsten Schemel)과 독일 베를린(Berlin) KSMS 쉐멜 스탄코빅 건축사무소의 마리나 스탄코빅(Marina Stankovic)과 공동으로 디자인 하였다고한다. 건물 외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는데 어느 면은 불투명하지만 내부가 보이는 투과성이 있는 유리이지만 다른 어떤 면은 거울처럼 내부가 보이지 않고 빛을 반사한다. 또한 곡선과 직선이 조화를 이루며, 건물 밖의 휘어진 담장과 같이 곡선을 그리며 협곡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상깊었다.
백남준은 1932년 일본 지배 하의 한국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한국 전쟁 직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근교에 위치한 가마쿠라에 있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동경대 인문학부에 입학하였다. 어린 시절 일본 선불교의 본산이기도 한 불교 성지 가마쿠라에서 몇 년간 살았던 경험은 이후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의 이력에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다. 대학에서 미학을 선택한 그는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배웠고 쉔베르크의 음악에 대해 졸업 논문을 썼다. 1958년 독일에서 존 케이지와의 우연한 만남은 선불교, 신음악에 대한 관심을 전위 미술로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3년 엥겔스의 고향으로 알려진 독일 북부 도시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잘라진 소머리와 함께 미술의 역사상 처음으로 조작된 텔레비전 13대를 사용하였다. 동경으로 돌아온 백남준은 일본의 엔지니어 슈야 아베의 도움을 통해 TV 모니터를 조각이나 회화의 조형 수단이 아니라 그 내부의 구조적 원리를 이용하여 주사선을 변형 시키는 작업을 발전시킨다.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자리잡은 백남준의 예술은 세계 예술계에 즐거운 혼돈을 불어넣은 실험이었고, 다다이즘 : 1920년대에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전위적인 미술가와 작가들이 본능이나 자발성, 불합리성을 강조하면서 기존 체계와 관습적인 예술에 반발한 문화 운동.
다다이즘 이후의 새로운 변화를 담아낸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1950년대 말 스톡하우젠, 보이스 등과 만나 독일에서 펼쳐진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피아노를 부수고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등 충격적이었다. 기존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저항과 공격을 담은 퍼포먼스들은 곧이어 같은 생각을 지닌 조지 마치우나스 등과 같은 플럭서스 맴버들과의 공연으로 이어진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한 백남준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을 통해 유럽에서 실현하지 못했던 퍼포먼스들을 실현시켜 나간다. 백남준은 미국사회가 성에 대한 금기가 있음을 간파하고 샬롯 무어만과 <오페라 섹스트로닉> 공연에서 음란죄로 체포되면서 문화 테러리스트로 악명을 떨친다. 샬롯 무어만을 위해 음악, 미디어, 신체가 결합된 , 등의 오브제를 제작하였으며 비디오 아트는 음악적 시각화라는 발상에서 나온 백남준의 독보적인 예술 장르였고, 미디어와 예술의 본격 만남이었다.
여기서 샬롯 무어만과의 공연이 미술관 내부에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을 통해 소개 되고 있었는데, 현대에 와서야 우리나라도 섹스에 대한 퇴폐적이고 억압되어 있었던 왜곡된 시선들이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자유국가의 상징인 미국에서 조차 금기시 되어있던 성에 도전을 그 때 당시에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지금 시대에 비추어 보아도 상당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소재임에 틀림없다. 내용인즉슨, 샬롯 무어만이 여러 겹의 팬티를 입고 그 팬티를 한 겹씩 벗어서 관중들의 주머니에 넣거나 입에 물리는 등의 퍼포먼스를 비롯한 생리혈로 물들인 국가의 상징인 국기들의 진열 등이다.
또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는 유명한 일화로써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그 사진과 영상에서 기괴함과 동시에 어떠한 저항심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백남준은 영상 이미지의 독특한 사용에서 테크놀로지와 인간 정신의 새로운 충돌을 보여줬다. 즉 의 禪, <참여 TV> 의 놀이 정신, 그리고 <스키타이왕 단군>의 샤머니즘 등등. 이는 기계 문명의 미래를 탐문하는 백남준의 문명사적 시각을 보여주는 예이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후 매 2년마다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 등 위성 TV작업을 통해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과 대중문화 아티스트들이 한데 어울리는 지구촌 규모의 축제의 장을 펼친다. 이는 백남준이 ‘세계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보여주며 알란 카프로의 말처럼 ‘백남준은 우리들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아티스트였다.
2.행사 주제 및 전시물
트릭스터 : ‘트릭을 구사하는자’로 신화와 민담과 소설에 나오는 아주 오래된 장난꾼.
트릭스터가 세상을 만든다. 이것이 지금 시기의 백남준 아트센터의 슬로건이다. 백남준은 초기부터 음악과 미술과 테크놀로지를 넘나들었으며, 플럭서스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그의 비디오와 조각에는 선문답과도 같은 트릭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의 옷차림, 말과 글 그리고 작품 전반에는 번득이는 지혜와 인류에 대한 애정 그리고 천진난만한 유머가 넘친다. 백남준의 트릭스터적 퍼포먼스는 1998년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소개받을 당시 ‘사고’로 바지가 내려가는 사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사고는 전 세계에 보도되었으며, 백남준의 친구들은 전 세계에서 백남준의 마지막 퍼포먼스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이런 익살스럽지만 그 속에서 지혜를 간직한 재치를 미술관 곳곳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한 백남준의 트릭스터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 백남준의 ‘촛불’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빈 TV모습 안에 촛불을 둔 작품이다. 이러한 단순한 시도를 통해 그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또, 백남준의 ‘물고기를 위한 해방 소나타’라는 작품에선 그의 재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편지를 자세히 읽어보면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권유가 쓰여있고, 우리내들의 간단한 주전부리인 마른 멸치가 함께 동봉되어 있다. 이상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멸치에 고추장을 발랐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상당히 이 전시 슬로건과 부합되는 위트있는 작품들이 있어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에 연결된 TV를 바라보는 불상, 그리고 불상의 시각에선 보이지 않는 측면의 카메라, 그리고 TV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돌로 만든 불상의 딱딱한 성질, 그리고 불상의 온화한 미소로 대표되는 신성함 같은 속성을 초월한 그저 현대인의 돌과 같은 굳어진 성질, 온화하기만 한 미소에서는 알 수 없는 위선이 느껴졌다. 허나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에 연결된 TV를 통해 반성코자 하는 인간들의 희망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그 옆에서 자기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전능한 위치에서의 누군가(그것이 자연이던 신적인 존재이건 간에)의 시선으로써 측면의 카메라와 TV로 인식했다. 내가 확대해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작가조차 전혀 의도치 않은 것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나는 무언가를 성취한 느낌이 들었고 그러한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감사하다.
3.미술관 운영 및 앞으로의 발전성
백남준 아트센터는 故백남준 작가의 작품들과 그의 작품세계를 나타내는 슬로건을 바꿔가며 그에 상응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미디어아트 전문기관으로써 충분한 희소성을 가지고 있으며, 관람객도 전국 미술관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유치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 바로 옆에 경기도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연계적으로 관광을 하기에 용이하다. 주말에는 주차장은 만차인 날이 많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편리하고, 입장료는 무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를 연구하는 기관의 역할도 하고 있는 기관이며, 여러 프로젝트, 아트 스토어에서 파는 기념품 수익 등으로 재정관리는 충분히 되는 것 같다. 미술관 상속자 ‘겐 백 하쿠다‘는 앞으로 미술관이 백남준을 기리는 미술관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백남준의 예술혼과 정신을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살아 숨 쉬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다음번 주제가 무엇일지, 그에 상응하는 작품들은 어떤 것이 전시될 지 무척 궁금하다.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 아니 전세계의 관람객들이 이 미술관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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