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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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소설
해방된 조국에 문학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식민지문화의 잔재 청산과 민족문학의 재정립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맞부딪친 것은 이념적인 갈등이었다. 소위 계급문학과 순수문학의 갈등이다. 해방된 조국에서는 문단의 주도권 때문에, 혹은 정치세력과의 동조 내지 결탁 때문에 작품보다는 작품 외적인 곳에서 더 치열하게 접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먼저 이니시어티브(시작)을 취한 쪽은 계급문학 쪽이다. 문학의 질보다는 양을, 문학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의 도구성을 중시한 계급문학은 해방 다음날 ‘조선문학건설부’ 를 세웠던 것이다. 대표적인 문인은 임화, 김남천, 이원조, 이태준이다. 이들의 발빠른 움직임은 아직 확고하게 태도를 굳히지 못한 문인들마저도 가세하는 효과를 얻었으므로 이니시어티브 효과를 제대로 본 셈이었다.
이들과 대립되는 성격을 가진 세력으로는 ‘조선문화협회’ 이다. 이 양대 문단세력의 대변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임화와 김동리를 통하여 양 진영의 논리를 볼 수 있는데 먼저 임화는 「조선민족문학건설의 기본 과제에 관한 일반보고」를 보자.
교재의 실린 글을 보면 일견 민족문학의 건설을 위하여 일제의 잔재를 소탕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이지만 다음 글을 읽어보면 민족문학은 결코 우리 민족 전체가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창출한 문학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즉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의 이념에 기초되어 있지 않으면 근대적 의미의 민족문학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한편 김동리는 「순수문학의 진의-민족문학의 당면과제로서」라는 글에서는 순수문학이 곧 민족문학이 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양자 다 휴머니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념의 갈등은 그대로 작품에 표현되고 있다. 계급주의 문학일 경우 사상적 체계가 분명하지만, 소위 순수문학인 경우는 사상적 체계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문학 바깥에 있는 사상적 체계에 복종하고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휴머니즘을 옹호하는 한 작가의 창조정신에 의거되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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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발표된 소설들을 일별해볼 때 그 예술적 성취에 있어서 해방 이전보다 진전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예상되는 당연한 결과로서, 첫째, 해방 직후의 정치, 사회상이 소설보다 더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는 점, 둘째, 소재에 대하여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 셋째, 수시로 변하는 정치적, 사회적 현실 때문에 가치관을 확립하기가 어려웠던 점, 넷째, 작가 자신이 차분히 앉아 소설적인 형상화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일제의 가혹한 검열을 겪어야 했던 해방 이전보다 분명히 소재의 선택이나 그 처리에 있어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이유는 이상 열거한 이유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겪었던 지난날의 상처가 알게 모르게 그들의 창작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갈을 물고 있지 않으면 모국어를 버리고 일본어로 글을 써야 했던 일, 「조선문인보국회」니 「조선문인협의회」니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일본에 협력해야 했던 일, 더러는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황민화되고 있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일, 어쩌면 일본이 이길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하고 있었던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기의 소설들을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로 해방 전후의 조국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실상을 보여주려는 소설. 둘째로 일제 식민지 체험을 회오하고 속죄하는 관점에서 쓴 소설. 셋째로 해방된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사시적 관점에서 쓴 소설, 넷째로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소설, 다섯째로 계급의식을 고취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동하려는 소설 등이다.
먼저 해방 전후의 조국 현실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김영수의 「혈맥」은 해방 전후 좌우익의 갈등을 부자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 ‘신탁통치 절대반대’ 와 ‘삼상회의 절대지지’ 세력의 충돌 속에서 빚어진 부자간의 갈등이다. 이 소설은 오랫동안 그토록 존중되어 왔던 부자의 윤리가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념 때문에 부자간이 한순간에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 윤리관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시기에 발표되었던 염상섭의 작품들 역시 당시의 시대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의 장기를 발휘하고 있다. 해방이 되면서 소련의 세력을 등에 업고 판을 치고 있는 이북의 현실을 그린 소설로서 독립된 단편임과 동시에 일관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삼팔선」 소설은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나 오히려 불법과 무법이 판을 치고 있으며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사회적 모순과 혼란은 극에 달해 있다. 염상섭은 이러한 해방공간의 시대 상황을 이념에 편향함이 없이 세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그의 소시민적 리얼리즘 문학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일제 식민지 치하의 생활이나 체험을 회오의 심정이나 속죄의 관점에서 쓴 소설들은 자의든 타의든 오욕을 빨리 청산하고 싶은 심정에서 쓴 소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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