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착한 사람들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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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복수는 착한 사람들의 것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다보면, 한 가지 공통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복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가 착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자신은 착한 사람임을 밝히고 있고, 그 뒤 류의 착함을 나타내는 몇 몇 장면을 통하여 류가 정말로 착한 사람이구나라는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착한 류가 후에 자신의 장기와 돈을 가져간 장기밀매가족들에게 복수를 한다.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복수의 화신인 동진도 역시 착한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동진이 착한 사람이라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딸을 잃은 동진이 경찰에게 진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으며, 납치범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은 자신이 딸이 살아서 돌아올 것을 믿었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착한 인물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착한 동진 역시 후에 자신의 딸을 죽인 류에게 복수를 한다.
이런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보이는 특성은 다음 작품인 <올드보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흔히 이 영화를 대수가 자신을 15년 동안이나 감금한 우진에 대한 복수극으로 보지만, 조금 더 깊이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에서 복수를 하는 사람은 대수가 아닌 우진이다. 영화는 대수가 우진을 찾아 나섬으로써 복수를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대수가 우진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우진이 왜 대수에게 그런 잔혹한 일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점점 증폭시키면서 후에 진실을 알아가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복수를 하는 우진도 과연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대수를 15년이나 가두고서 만두만 줄기차게 먹였을 뿐 아니라, 그를 아내를 살해한 살인범으로 만든 그에게 어디를 봐도 착한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류나 동진은 자신에게 해를 가한 사람을 살인함으로써 복수를 하였는데, 그들을 우리는 나쁜 사람이라고 과연 보는가하는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래가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봤을 때 우진을 다시 볼 필요성이 있다. 우진의 복수가 대수가 저지른 실수에 비해서 그 책임을 묻는 정도가 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류가 자신의 누이의 죽음을 장기밀매업자들의 탓으로 돌려 죽인 것이나, 동진이 자기 딸의 죽음을 류의 탓만으로 돌리는 복수는 과연 그 정도에 맞는 복수인가하는 문제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두 남자의 복수가 심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악인이 아니라면, <올드보이>의 우진 또한 섣불리 악인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일 것이다. 사실상 영화에서 보이는 우진의 모습은 대수에게 복수를 할 때에 한 짓을 빼고는 우진이 악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우진이 박철웅(감금업체대표)의 손을 자른 것을 가지고 그가 악인이라는 이유를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그것은 우진과 박철웅 사이의 거래였고, 그러한 행동이 대수에 대한 복수의 준비라고 생각했을 때 위의 논리대로 라면 결코 그가 나쁜 인물이라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물론 그가 선한 인물, 착한 사람이라는 근거도 사실상 영화 내에서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선과 악을 단순히 양분해보면, 그는 악보다는 선 쪽에 더 가깝지 않겠는가. 다소 억지스러운 이분법이기는 하지만 우선은 이렇게 정하기로 하겠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는 스스로가 자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죄를 지어 속죄를 받으려 하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죄인이다. 그녀는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백선생에 대한 복수를 준비를 하지만, 스스로 백선생을 죽이지는 못한다. 영화에서는 결국 절대악으로 나타나고 있는 백선생의 마지막 처리를 백선생에게 죽은 아이들의 가족들이 하게된다. 왜 금자는 스스로 백선생을 죽이지 못했을까?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우선은 금자가 자기 스스로 말한 것처럼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라고 정의하기로 하겠다. 그러면 백선생에게 해를 입은 아이의 가족들은 과연 착한 인물인가? 영화에서는 그들이 착한지 그렇지 못한지를 말해주고 있지 않다. 허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악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앞의 억지 논리를 적용하면 그들도 곧 착한 사람인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을 다시 정리해보면,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내에서 복수란 결국은 착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악인들은 결코 복수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복수의 근원이 죄의식에서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면 어떻게 될까? 결국 악인들은 죄의식을 가질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과연 그러할까?
우선 <복수는 나의 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영화에서는 나쁜 사람, 악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인물은 장기매매업자들 밖에 없는듯하다. 물론 이들도 그들 스스로에 대한 가족애나 동료애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이 영화에 나오는 악인이다. 영화에서는 그들이 죄의식을 가지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그들 악행을 즐기는 듯 보여준다. 죄의식은 그들과 거리가 먼 것이다.
다음으로 <올드보이>를 살펴보면, 앞에서 복수하는 사람, 즉 착한 사람이 우진이라면 반대로 나쁜 사람, 악인은 대수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는 악당으로 나오는 감금업체대표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에서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외하도록 한다. 영화의 시작은 대수의 경찰서 난투극이라는 다소 어수선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정말 온갖 추태란 추태는 다 부린다. 이 장면은 대수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시작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대표에 의해서 조용히 15년간 지낼 조용한 방으로 인도된다. 그 곳에서 안쓰럽기까지 안타까운 생활을 겪지만, 영화 어디에서도 대수가 착한 사람이라는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 곳에서 자신을 가둔 것이 과연 누구인가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쓰는 자서전, 자신의 악행 자서전을 두어권 쓰면서 그는 무난하다고 생각했었던 삶에서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나쁜 짓을 한 인간이라고 보여준다. 15년 후 대수는 세상에 나온다. 그가 나온 곳은 어떤 건물의 옥상이었는데, 그 곳에서 자살을 하려던 한 남자를 만난다. 짐승만은 못해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니냐는 그 남자의 물음에 아무 대꾸도 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고 대수는 길을 나선다. 그 남자는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정말 인정도 없는 대수이다.
대수는 후에 자신이 그렇게 찾던 우진을 만난다. 하지만 우진을 죽이지는 못한다. 영화에서는 그 이유를 자신을 가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의 두 남자였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의 복수를 했을 것이다. 류나 동진은 자신이 복수를 하는 사람이 왜 그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이것이 류나 동진과 대수의 차이인 것이다. 대수가 복수를 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그가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수가 죄의식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죄의식을 가진 착한 사람이었다면, 대수는 스스럼없이 복수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수가 변한다. 결말 부분 우진의 펜트하우스에서 대수가 미도와 자신과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고, 통화를 하는 대수의 모습은 바로 딸을 걱정하는 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그도 이제 죄의식이란 것을 알았다. 그는 우진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가하면 우진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결국 자신의 혀를 절단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우진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결국 대수를 죽이지 않는다. 그런 우진에게 대수는 복수의 스위치를 망설임없이 누르지만, 작동되지 않는다. 우진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누이를 잡지 못한 자신에게 총을 쏜다. 여기에서 하나 살펴볼 것이 있다. 왜 우진은 대수에게 총을 쏘지 못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가 살아있음으로 인해서 더 많은 고통을 받고 그것이 더 잔혹한 복수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해 볼수도 있겠으나, 다르게 생각하면 대수가 죄의식을 가진 착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이 어찌 다른 착한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착한 사람은 그럴 수 없다. 그럼 <복수는 나의 것>의 착한 류를 착한 동진이 어떻게 죽일 수 있었는가를 문제시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 근본이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의 경우 동진은 그 복수의 대상인 류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죄의식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류를 죽이기는 하지만, 죽이기 전에 류에게 자신이 어쩔 수 없음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진의 복수 대상은 대수긴 대수지만, 말 많은 대수, 즉 악의 대수가 그 복수대상이었다. 그런 우진의 복수 대상이 사라졌다. 대수는 이미 죄의식을 가진 착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진은 결코 그에게 총을 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진의 갈 곳 없는 죄의식은 결국 자살이라는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
한편 대수는 자신에게 생겨난 죄의식이 복수할 대상을 잃었다. 최면술사를 통해 봉인해 보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나타난 대수의 미소로는 그 성공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비밀을 모르는 오대수가 남았는지, 비밀을 아는 몬스터가 남았는지 말이다. 여하튼 대수의 죄의식은 갈 곳을 잃었다. 이 같은 대수의 모습을 보면 그가 처음 악인 오대수 였을 때에는 그에게서 죄의식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으나, 후에 착한 사람이 된 이후에는 그에게서 죄의식이 생겨났음을 볼 수 있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악인은 누구나가 말하듯 백한상, 백선생이다. 백선생은 복수 3부작의 어떤 인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악, 그 자체인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그가 왜 범행을 했는지, 어떠한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고 단지 요트를 사기 위해서라는 짧은 변명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야말로 극악무도 그 자체의 인물이다. 영화 어디에서도 그런 그의 죄의식에 관한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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