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위대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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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선거 이후 벌써부터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논란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그동안 많은 정세변화로 인해 나라 안팎이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으며 하루가 바뀌기를 무섭게 야당과 언론 등에서는 현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으며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대통령이 교체될 때마다 매번 끊이지 않고 생겨나왔던 것 같다. 왜일까? 아직 우리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부동산 대책과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경제 불황으로 어느 때 보다 다음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우연히 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내보다가 지폐 속에 들어가는 우리 위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율곡 이이, 퇴계 이황, 그리고 지갑 속에 들어가는 가장 큰 액수인 만 원권에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당당히 새겨져 있다. “세종대왕이 누구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유일하게 왕명 뒤에 대왕(大王)이 들어가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위대한 왕 중의 한분이시다. 이번에는 누구에게나 물어본다.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단연 꼽을 것이다. 그렇다. 세종대왕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고,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중 단연코 3위권 밖으로 밀려남이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은 세종대왕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한글을 창제하고, 물시계를 만들고, 각종 법전을 만들어낸 위대한 인물… 초등학생도 이 정도는 대답하리라는 예상을 해본다. 토익 문법은 달달 외고 외국의 유명한 인물들의 업적들은 죄다 기억하는 우리들이 막상 세종대왕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한글창제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땅의 지식인의 하나라는 대학생이라는 신분 하에 이렇게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일반화적인 지식을 열거할 수밖에 없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서점에 가보면 위대한 CEO와 지도자에 관한 책이 너무나 많다. 빌 게이츠, 클링턴, 처칠, 토니 블래어, 칭기스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한 위인들의 일대기가 CEO와 대비하여 글로 담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거에서도 보았듯이 많은 후보들이 외국의 유명한 지도자들을 예를 들며 그들의 정책을 본받아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었다. 하지만 한국의 걸출한 CEO이자 리더였던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항상 지갑 속에는 들고 다니면서 정작 중요한 그의 나라 경영 업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과제를 하면서 그리고 그에 대한 여러 문헌을 읽어보면서 세종대왕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따라가야 할 리더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본 론
■ 변혁의 시도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진정한 리더였고, 탁월한 군주였으며 과학자였으며 수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전공인 광고학적 측면에서 바라보았던 세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홍보론을 도입한 걸출한 홍보기획자였다. 그가 한글을 알리고 유포시킨 데에는 지금의 홍보기획자들을 감탄시킬만한 혁신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 게다가 유독 세종대왕 시대에만 천재적인 과학자, 학자, 음악가, 장군이 많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천재적인 인재를 등용하고 배치하여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힘, 그것이 진정으로 탁월한 리더십이며, 그러한 리더십이 세종대왕을 위대한 군주로서 후세에 기억될 수 있도록 했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은 평생을 오로지 백성의 안위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신하였던 인물이다. 나라 경영의 측면에서 과연 그가 머릿속에 담은 그의 전략은 무엇이며,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당당히 찬란한 새 시대를 열었던 그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시도했던 시대의 변혁을 통해 질문의 답을 찾고자 한다.
우선, 세종의 성장과정을 살펴보겠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 태조와의 대립 끝에 자신의 힘을 위해 조정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친인척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의 칼끝에 죽어나가는 환경 속에서 충녕 즉, 세종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이면과 인간사의 허무를 처절하게 느끼며 자라왔다. 그 허무는 그가 왕에 즉위하기 전인 왕자시절부터 느껴왔던 오랜 것이었으며, 그런 그가 유일하게 깨달은 것은 유한한 인간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다. 이는 인생에 대한 큰 슬픔이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큰 슬픔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이어져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기에 이른다. 세종의 국가경영의 기저에는 바로 이 허무에서 출발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전제된 것이다. 세종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재능이 있는 신하들을 아끼며, 그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줄 수 있었던 그 힘, 세종의 인간경영 원동력은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인본주의에서 출발했음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흔히, 조직의 변혁에는 CEO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적으로 수반되고, 그 의지가 조직의 말단까지 닿았을 때에만 변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세종 역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매사를 추진했다. 스스로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자신의 신하들을 힘이 아닌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세종 스스로가 자신은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임자라는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신뢰는 자기 자신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주변의 인물까지도 결과를 낙관하게끔 한다. 세종은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고, 공부하고, 혁신했으므로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열정을 표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자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표출한다면, 그의 수하들 역시 동화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세종이 막무가내로 자신의 목소리만을 높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세종에게는 자기 신뢰와 자기 개혁 이외의 큰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말하기 전에 듣는 습관이었다. 이 습관은 그의 즉위 내내 독선적인 군주가 되는 것을 경계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신하들이 지나치거나 세종 자신이 중시하는 문제에 대해 거세게 반대할 때는 근엄한 얼굴로 단호한 투지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노함은 피해야 하는 일이다. 신하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은 일개 궁녀의 이야기까지도 들어주어 궁녀로 하여금 진심으로 임금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아마, 세종의 신하들 중 진정한 충신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의무감이 아닌 사랑으로서 그를 섬겼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역대 조선의 왕들 중 중국어를 공부한 왕은 세종은 유일하다고 한다. 역관의 통역을 통해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3자의 귀와 입을 거친 것일 뿐 명확한 의미에서의 나의 의사는 아닌 것이다. 역관을 거쳐 듣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 3자인 역관의 귀와 입을 거치기에 어조와 감정을 직접 느낄 수가 없다. 의사소통에 있어 어조와 감정을 배제해 버린다면 한 사람의 진위를 파악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세종은 이를 간과하지 않고 스스로 중국어를 공부하여 사신들과 직접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세종이 중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훈민정음 창제의 모티브를 얻게 되기도 한다.
■ 인재의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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