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일본종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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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엄격하지 않은 종교관
일본인들의 종교관은 뚜렷하지 않다. 즉 엄격하게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대부분이 불교와 신도를 공유한다. 이것은 우리의 종교관으로 바라볼 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신도들이 서로 자신의 종교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짓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는 우리와는 분명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좋게 말하면 포용력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조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스님의 신분에 대해서 살펴보더라고 일본의 종교관이 전혀 엄격하지 않고, 형식적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잇다. 스님 신분은 세습제이다. 아들이 대를 잇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만 봐도 이상한 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님에게 아들이 있다니.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스님들은 불교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평상복을 입으며 머리를 깎지 않는 스님들도 있기 때문데 겉모습만 보고 스님인가를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스님이 먹을 수 있는 음식에도 제한이 없다. 고기, 술, 담배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부인과 자식도 있는 것이다. 스님이 되기 위해 일정기간의 수행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절 자체가 장례식이나 선조 공앙을 해주는 하나의 사업기관으로 변한 지금, 스님 자신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속세를 떠나 수행을 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운 스님도 있을 수 있을까.

2. 포괄적인 종교관 형성의 역사적 배경
이렇게 전세계에 유례없는 포용적인 종교관은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일까. 그것은 저항없이 구미근대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했던 나라의 민족성과 관련된다. 일본의 토착종교인 신도에는 경전이 없다. 매우 소박한 자연발생적 종교이다. 신주가 무엇인가를 읽기는 하지만, 그것은 경구에 따라 좋다고 생각하는 문구를 적어놓은 것으로 특정 경전에서 발췌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신도에는 계율도 없다.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할지언정 그 나쁜 짓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밝힐 수 없다. 신도의 800만 신의 개념은 번개와 태풍 등 자연현상, 산, 폭포, 바위 등의 자연물인데, 거기에 선조 숭배 사상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종교의 원시형태하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전이나 계율도 없는 원시형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결국 신도에는 절대적 가치관이 없다. 그로 인해 다른 가치관과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일본에서도 종교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얼마 안 가서 정교하고 엄격한 종교가 들어온 것이다. 불교가 긴메이 천황 시대(539-571)에 처음 들어왔다. 이 때 긴메이 천황은 백제로부터 전해 받은 불상을 소가노 이나메에게 주어 모시도록 했다. 일본의 신도가 명확한 규칙, 원칙, 계율 등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교를 관대하게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나서 귀화인의 증가와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불교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히 불교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동반했기 때문에 그 보급이 빨라졌다. 의료약학, 건축수리, 농경, 금속주조 등의 기술이 불교와 함께 들어왔다. 이러한 것은 일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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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
    (2006.09.29 09: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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