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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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을 읽고나서
책 첫 번째 부분에서 자이니치와 창가학회는 둘 다 일본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집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 이외에는 연관이 없는 이 두단어를 이어 책의 제목으로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세 번째로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창가학회. 창가학회란 말을 처음 들어 생소하고 낯설었다. 창가학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조사한바 한국SGI 는 일본에서 발생된 창가학회의 한국이름이다. 창가학회는 니치렌이 주창한 불법을 신앙의 근간으로 한 일반신도 중심의 대승불교단체로 일반적으로 정의된다. 창가학회라는 명칭은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영감,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여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길러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창가학회의 실천적 성향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사상을 바탕으로 잘 나타고 있다고는 할 수 있다.
창가학회의 전개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이세키사에서 하계강습회를 갖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여 1937년에는 회원수가 1,000명을 헤아렸으나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일본 군부의 사상통일 정책에 의해 탄압을 받아 많은 간부가 투옥되고,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하고 신도 중심의 사상통일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감옥에서 병사한다. 종전 후 2대 회장 도다 조세이는 명칭을 창가학회로 개칭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다. 3대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가 취임한 뒤 종교정당인 공명당을 만들어 의회에 진출한다.
창가학회와 공명당은 독자적인 정교일체주의에 입각한 종교·정치 활동을 통하여 행동적인 강력한 조직을 발전시켜 일본 최대의 종교단체가 되었고 국제창가학회(SGI)조직은 전 세계 2000만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 무렵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고,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전쟁기간 동안 일본에 강제연행 되었다. 그 결과로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한 당시 약 280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 빨리 귀국하고자 하였으나 조선인의 귀국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강제 연행된 노동자들을 일부 귀환시키고, 일본을 점령했던 연합국 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계획 수송에 착수했다. 그러나 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재산. 수하물에 대한 제한과 남한의 정치적 혼란 때문에 일본에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던 약 60만 명의 조선인은 일본에 남았다.여러사정으로 인해 일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상황은 참담했다. 일본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실업자가 엄청나게 늘어났을 때, 조선인의 경우는 노동력 인구 30만 명 중 20만 명이 실업 중이었다. 그 후 미소냉전이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북에는 김일성장군이 이끈 임시정부가, 남에는 미국의 지원으로 이승만 정권이 탄생했다.
1950년에는 한국전쟁의 발발.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었고 재일동포는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에 남아 있는 재일한국인들은 무차별한 차별을 감당해내야 했고 주류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것을 당연시 여겨야 했을 것이다. 재일한국인은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손을 먼저 잡아준 것은 창가학회였다. 그들을 차별 없이 받아주고 직업도 알선해주며 희망 갖고 살아가게 도와주었다. 아무도 그들을 보살펴 주지 않을 때 믿음을 주고 깨달음을 준 창가학회가 그들을 신도로 만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이니치와 창가학회는 일본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공통점 하나가 잘 맞물려서 그들을 엮어준 것이다. 이로써 둘의 관계가 분명해졌다.어찌보면 이둘은 처음부터 불가분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것처럼.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처지를 받아준 창가학회는 재일한국인에게는 구원자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재일한국인은 왜 꼭 창가학회여야만 했는가? 라는 물음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창가학회는 예로부터 이단취급을 받았었다. 유교, 불교, 기독교처럼 대중화 되지 않아서 일까? 나는 창가학회가 왜 이단취급을 받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로 이단취급은 어느 한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입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에는 이단으로 취급한다. 나는 이러한 태도가 분명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창가학회 또한 유교, 불교, 기독교와 같은 한 종교일 뿐이고 종교를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신념의 문제이다. 믿고 안 믿고는 자신의 몫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특정종교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재일한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창가학회가 이단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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