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인론] 시인 임화의 인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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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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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임화 연보
2.임화 작품의 흐름
3.임화는 트렌드세터
4.임화의 죽음
5.그리고…임화의 비밀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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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 연보
1908년 10월 13일 출생. 본명은 임인식.
1921년 보성고보 입학. 이강국, 이상, 이헌구 등과 선후배 사이.
1926년 12월 카프 가입.
1929년 <혼가>촬영. <우리 오빠의 화로>, <네 거리의 순이> 등으로 카프계 단편서사시 최고 시인으로 부상. 박영희 노선 지지. 이귀례와 동거
1931년 딸 혜란 출생. 카프 제1차 검거 사건으로 3개월 간 옥살이.
1934년 카프 전주 사건으로 카프 맹원 대부분이 검거되었으나 임화는 결핵으로 졸도, 투옥을 면함.
1935년 지하련과 재혼. <다시 네거리에서>를 발표. 평론 <조선신문학사론 서설> 발표.
1942년 3월 경 조선군사령부 보도부에서 제작한 영화 <너와 나>의 대본을 직접 교정. 일제가 조선 청년들을 강제 징집 출동시키기 위해 만든 선전영화여서 후일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됨.
1945년 조선문학건설본부 서기장이 됨. <9월 12일> 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서울에 와서 <너 어느 곳에 있느냐> 집필. 후에 숙청의 도화선이 됨.
1953년 북한 정권 전복 음모와 간첩 행위 등의 혐의로 기소당함. 심문 과정에서 안경을 깨어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 총살형에 처해짐.
임화 작품의 흐름
임화의 친일 의혹
1934년 6월 소위 신건설사 사건으로 카프 맹원에 대한 일제의 검속 당시,
연행 중에 실신하여 구속을 피하는 통에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으며,
이듬해에 카프 해산계를 제출하는 과정에서도 모호한 행동을 취하였다
1939년 3월 이광수, 박영희, 김동환, 최재서, 이태준 등과 함께 황군작가위문단의 9인 실행위원으로 선발되었고, 10월 30일 창립한 친일문학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942년 3월 일제의 조선군사령부에서 제작한 징병 찬양 영화 <너와 나>의
대본을 직접 교정하고, 1943년 4월 창립된 조선문인보국회의 평론부 위원으로 등재된 사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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