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박정희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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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박정희를 고른 이유
2. 박정희의 사상
삼. 5.16
4. 경제성장
5. 정치
6. 결론
본문내용
2.박정희의 사상

박정희의 일련의 행보에 대해 평가하려면 그 행동의 동기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동기를 파악하려면 박정희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의 만주군관학교 입학은 많은 사람에게 논란거리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친일파라고 말한다. 박정희가 만주로 간 까닭은 군인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는 어릴 때 나폴레옹 전기를 읽고 크게 군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학창시절에도 체육과 군사 과목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생 조증출씨는 박정희를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검도에는 전교에서 손꼽히는 용자로서 방과 후에는 죽검을 들고 연습을 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4,5학년 여름휴가 때는 대구80연대에 들어가서 군사 훈련을 받았는데 박정희는 교련에 매우 취미를 가진 것으로 기억난다. 시범 때 그가 자주 조교로 뽑혀 나왔다. 특히 총검술은 직업 군인을 능가할 정도로 우수하였다.>
대구사범 졸업 후,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했을 때에도 박정희는 방 안에 나폴레옹 액자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박정희가 친일을 위해 만주로 간 게 아니라 군인이 되기 위해서 갔다는 걸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간 것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독립군 부대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출세하기를 원했다. 그의 집안은 매우 가난했다. 대구사범학교 시절 성적표를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2학년 때 10일, 3학년 때 41일, 4학년 때 48일, 5학년 때 41일을 결석했다. 기숙사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고향에 가서 돈이 마련될 때까지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는 ‘가부시키’라는 풍습이 있었다. 저녁에 공부를 하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한 사람이 10전씩 출자하여 돈을 모은다. 그리고는 한 사람을 뽑아 기숙사 바깥으로 원정을 보내 과자를 사 오게 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기숙사비도 제때에 못 내고 있을 때여서 ‘가부시키’에 낄 수가 없었다. 강응구의 기억에 따르면 박정희는 ‘가부시키’이야기가 나오면 혼자서 슬그머니 나갔다가 일이 끝난 뒤에 들어오곤 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이처럼 가난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출세하고픈 욕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은 그를 독립군보다는 사관학교로 이끌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조선일보사, 1998
진중권,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개마고원, 1998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004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2002
최상천, 알몸 박정희, 사람나라, 2001
이현희, 박정희평전, 효민, 2007
이상우, 박정희 파멸의 정치공작, 동아일보사, 1993
네이버 사전 http://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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