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 8월테제의 정치, 경제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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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8월테제
2. 8월테제의 개략적 내용
3. <8월테제>에 나타난 정치적․경제적 세계관
4.결론
본문내용
3. <8월테제>에 나타난 정치적․경제적 세계관
① 당시 세계를 바로 보는 시각
한국의 해방에 대해서 테제에서는
“그러나 그것은 우리 民族의 主觀的 鬪爭的인 힘에 의해서 보다도 進步的 民主主義國家 蘇․英․美․中 등 聯合國勢力에 의하여 實現된 것이다.”
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규정, 다시 말해서 ‘조선의 해방’이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2차세계대전에서의 연합국의 승리와 일본 패망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가능했다는 평가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서 반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뿐만 아니라, 영․미․중까지를 포함해 모든 연합국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호칭했다는 점이다. 영․미, 특히 중국 장개석정부에 대해서까지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호칭했다는 것은 독일․일본 등의 파쇼국가들과 구별하기 위한 상대적 개념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세계혁명을 추구하는 공산주의자 입장에서는 적합한 표현이라 볼 수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정치용어는 대체로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과도적인 단계의 체제개념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0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조선분국’ 창설회의에서 채택한 정치노선에서는 8․15해방에 대해서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동맹과 자본주의국가 영․미는 전세계 평화와 인류 해방을 위하여 전쟁한 것이다... ... 조선 민족은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은 자체의 힘에 의한 해방이 아니고 외래의 압력에 의한 해방이다. 이것이 조선혁명의 첫째 특수성이다. 또 외래의 힘은 ‘한’ 힘이 아니라 즉 사회주의 국가인 적위군의 힘과 자본주의 국가인 영․미의 힘으로 해방되었다. 이것이 둘째 특수성이다.”
라고 8월태제에서와 같이 조선의 해방을 외적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그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는 달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8월테제에서는 소․영․미․중을 일괄적으로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지칭한 데 반해 위의 예에서는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고, 영․미는 자본주의 국가로 명백히 구분하고 있으며, 그리고 중국은 포함시키지도 않고 소․영․미 등 3개국만 지적하고 있다.
당시 중국이라 함은 장개석의 국민당정부를 의미하며, 2차대전 때 중국이 국공합작으로 대일전쟁을 공동으로 전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택동을 중심으로 한 중국공산당과는 대립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중국을 소․미․영과 동격으로 ‘조선해방의 은인’으로 격상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울의 8월테제와 평양 북조선분국의 정치노선은 같은 공산당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해방’에 대한 성격규명에서 견해를 달리했는데 이것은 그들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8월테제를 작성한 박헌영과 그 주변인물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이론무장에서 소련군이 진주하고 있는 북조선의 공산주의자들보다는 미흡했으며, 따라서 객관세계를 분석함에 있어서도 공산주의적 관점과 시각에서 일탈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② 공산주의 세계관에 의한 2분법적 사고
국제정세의 발전추세에 관해 테제에서는
“그럼에도 不拘하고 國際的 客觀的 情勢는 자못 예측하지 못할 만한 急速한 템포로 머리를 잡아 두르고 眩氣症이 날만한 정도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금일의 特徵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國際파시즘의 全面的 潰滅과 進步的 民主主義와 社會主義 勝利는 世界革命을 더욱 높은 程度로 發展시키고 말았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소비에트聯邦의 國際的 地位와 그 比重을 훨씬 높이고 무거웁게 만드는 同時에 다른 한편으로 國際 帝國主義 體制를 그 土臺와 根底로부터 흔들어 놓아 나머지와 그들 體制도 必然的으로 結局에는 獨逸과 日本帝國主義와 마찬가지의 悲劇的 運命을 면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二次世界大戰이 自己의 쓰라린 經驗에서 全人類에게 내주는 貴重한 敎訓이다. 여기에서 모든 세상 사람들은 單刀直入的으로 문제를 세우고 있다. 즉 資本主義냐? 社會主義냐? 파시즘이냐? 民主主義냐? 다시 말하면 戰後에는 어떠한 사회를 건설하고 사람들은 살아나갈까 하는 問題이다.“
라고 소련의 국제적 지위는 비할 바 없이 향상되고 ‘국제제국주의’는 근원적으로 붕괴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나라의 체제 선택에서 자본주의 아니면 사회주의, 민주주의 아니면 파시즘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우선 우리에게는 進步的 民主主義社會냐? 反動的 民主主義의 國家의 건설이냐?”
라며 양자택일이라는 상황에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정세의 발전추세로 보아 중간체제와 복합체제 및 절충체제 등을 전혀 일관하지 않고 양극적인 체제만은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는 중간, 중립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좌’아니면 ‘우’라는 체제의 양극론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이정)박헌영 전집』, 이정박헌영전집편집위원회 엮음, 역사비평사, 2004
『박헌영과 8월테제』, 김남식, 해방전후사의 인식 2, 한길사, 1985
『박헌영 남로당의 통일전선론』, 김남식, 역사비평, 1988
『해방정객 박헌영과 8월테제』, 박태균, 옵서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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