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코메니우스는 왜 팜페디아를 주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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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교육가인 니콜라스 버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역사에서 코메니우스가 차지하는 자리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리이다. 그는 초등▪중등 교육 분야의 모든 근대 운동을 선도했을 뿐만 아니라 주도한 인물이다.”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Johann Amos Comenius, 1592-1670). 그는 어떠한 일을 했길래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까?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아직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과연 코메니우스는 어떠한 학자이며 그가 주장한 교육이론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I. 코메니우스의 생애
우선 그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그는 1592년 3월 28일, 모라비아(現 체코공화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보헤미아 동포 교단이라는 프로테스탄트계의 신자들이었는데, 이 무렵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긴장은 결국 삼십년 전쟁으로까지 커져 나갔고, 자신의 고향에서는 더 이상 그의 종교를 믿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모라비아에서 탈출하여 폴란드에 있는 동포 교단의 중심지 중 하나인 레슈노로 이주 하였고, 그 곳에 있던 중등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사라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죽을 때까지 유랑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의 사상의 많은 부분은 이러한 상황에서 완성되었다.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
당시 교육은 실로 개탄할 만한 상태에 있었다. 수업에서도 몇 가지 사진을 통해 살펴보았지만 교육에 대한 피교육자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우선 교육받을 수 있는 사람은 남자들이었고, 그마저도 가난하다면 교육받을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교실 수업도 라틴어 문장들을 외우는 식의 주입식 교육이었다. 구체적인 학습목표도, 체계적 수업도 없었으며, 징계는 심하였고, 학습분위기는 살벌했다. 당시의 학교를 묘사하면서 코메니우스는 학교를 “정신의 도살장”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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