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조선시대의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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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무녀 금지와 무세(巫稅)
ⅱ) 무녀의 역할
ⅲ) 무녀의 신분과 가족생활
ⅳ) 무녀와 굿

Ⅲ. 결론

본문내용
조선시대 생활상에 있어 주된 관심사는 여성들의 삶이었다. 그 여성들 중에서도 다수의 평민 여성들의 아니라 그들에게 조차 천시 받았을 것 같은 여성들의 삶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런 여성 중에서 무녀는 흥미로운 존재라 여겨졌기에, 본 발표문에서는 그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날은 무녀라는 말보다는 무당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무당의 사전 상 정의는 ‘귀신을 섬기면서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여자’라고 한다. 무당이란 말을 남무(男巫)나 여무(女巫) 둘 다 지칭하는 말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무당의 여무(女巫)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왔으며, 남자 무당은 무당이라 칭하지 않고 주로 ‘격’ 이익(李瀷 1681~1763),『성호사설([星湖僿說)』 제7권 인사문(人事門) 무(巫)
이나 ‘박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제2권 고율시(古律時) 노무편(老巫篇) 병서(幷序)
등으로 불리었다.
무녀와 무당은 같은 의미이기는 하나 무당조차도 ‘무당’이란 말은 낮춰 부르는듯하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당이란 말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낮춰 부르던 말이 아닌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근대화가 되는 과정 중에 무당을 구시대의 한낱 미신으로 여겨 사회에서 없어져야만 하는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숫자는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다.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이들의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조선시대 때의 무녀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론에서는 조선시대 때 금지에도 불구하고 무녀가 있어야만 했던 이유와 무녀의 신분과 가족, 생활모습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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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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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영외 역(譯), 「청구야담」,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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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이트
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com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
민족문화추진회 http://www.minchu.or.kr
KoreaA2Z http://www.koreaa2z.com/
네이버 http://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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