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작가 김동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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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생애와 활동
2. 김동리의 삶의 흔적
3. 김동리의 작품연보
Ⅱ. 본론 4. 문학세계
1)화랑의 후예
2)무녀도
3)역마
4)을화
5. 문학사적 의의
Ⅲ. 결론 6. 김동리와 순수문학
7.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 생애와 활동
본명은 시종(始鍾), 이명은 창귀(昌貴), 아명은 창봉(昌鳳)이다. 임수(壬守)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경주제일교회부설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계성중학교에서 2년간 공부했다. 서울로 올라와 경신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낙향하여 박목월 등과 사귀며 동서양의 고전에 심취, 인간과 자연과 신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1933년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김달진ㆍ서정주 등의 <시인부락> 동인들과 사귀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같은 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된 후 「망월 望月」ㆍ「고목」 등을 발표했으나, 곧 시 창작을 중단하고 소설로 전향했다.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면서 이주홍조연현ㆍ최인욱ㆍ홍구범 등과 사귀었다. 이때 받은 상금으로 다솔사ㆍ해인사 등을 전전하며 쓴 소설 「산화(山火)」가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당선되어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그 후 「바위」(신동아, 1936. 5)ㆍ「무녀도」(중앙, 1936. 5)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고, 다솔사로 다시 들어가 광명학원이란 야학을 세우고 농촌계몽운동에 힘썼다. 1940년까지 「황토기」(문장, 1939. 5)ㆍ「찔레꽃」(문장, 1939. 7)ㆍ「동구 앞길」(문장, 1940. 2)ㆍ「다음 항구」(문장, 1940. 9) 등을 계속 발표했으나, 일제의 어용문학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에 가입하는 것을 거절, 광명학원이 강제 폐쇄되어 만주지방을 방랑했다.
1945년 경남 사천에서 8ㆍ15해방을 맞이한 뒤, 곧 서울로 올라와 민족주의 문학진영에 가담했다. 특히 김동석ㆍ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통하여 우익측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로 두드러졌다. 좌우문학진영과의 이론 대립이 치열했던 때에 발표한 평론 〈순수문학의 진의(眞義)〉(서울신문, 1946. 9. 15)ㆍ〈문학과 자유의 옹호〉(백민, 1947. 6)ㆍ〈순수문학과 제3세계관〉(대조, 1947. 8)ㆍ〈민족문학론〉(대조, 1948. 8) 등은 이론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던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논리화ㆍ체계화시킨 글로 평가되었다.
그는 이론투쟁과 아울러 조직력을 중시했다. 박종화ㆍ이하윤ㆍ김진섭 등이 중심으로 있던 중앙문예협회의 불투명한 성격을 거부하고, 서정주ㆍ조연현ㆍ곽종원ㆍ박목월ㆍ조지훈ㆍ박두진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했다. 정부수립 때까지 이 단체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윤회설」(서울신문, 1946. 6. 6~26)ㆍ「혈거부족 穴居部族」(백민, 1947. 3)ㆍ「달」(문화, 1947. 4)ㆍ「역마」(백민, 1948. 1) 등을 발표했다. 1947년 《경향신문》 문화부장, 1948년 《민국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냈고, 오랫동안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위원장,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다. 문예지의 발행에도 힘써 1949년에 창간한 《문예》와 1968년에 창간한 《월간문학》의 주간을 지냈다. 1955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58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67년 3ㆍ1문화상,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0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받았다. 창작집으로 〈무녀도〉(1947)ㆍ〈황토기〉(1949)ㆍ〈귀환장정 歸還壯丁〉(1951)ㆍ〈사반의 십자가〉(1958)ㆍ〈등신불〉(1963) 등과,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ㆍ〈문학개론〉(1952)ㆍ〈문학이란 무엇인가〉(1984) 등을 펴냈다.

2. 김동리의 삶의 흔적
【유년 시절】~ 경주, 죽음과 자연의 세계
김동리는 1913년 음력 11월 24일 경상북도 경주 성건리 186번지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경주라는 공간은 김동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경주는 예부터 우리나라의 유물과 전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자 신라시대 이후로 호국불교로서의 성격을 점차 잃어버려 주술적인 것으로 변모해간 불교의 고장이다. 특히, 성건동은 ‘무당 촌’이라 불릴 정도로 무속적 특성이 강했고,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김동리에게 무속과 전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김동리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여 어머니와 잦은 다툼이 있었고 어머니는 이 때문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확실하게 어머니의 마음을 굳혔던 계기는 막내아들 김동리였다. 동리의 어머니는 동리를 마흔두 살에 낳아 젖이 잘 나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암죽을 끓여 먹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품이 그리웠던 동리는 항상 허기가 져 있다가 아버지가 남겨둔 술 찌꺼기를 두 살 때부터 빨아 굴러 떨어지곤 했는데 동네 아이들이 구경을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술을 먹고 뒹굴 거렸을 그 모습을 떠올리면 귀여움에 웃음이 나오지 만, 그 모습을 본 어머니의 마음은 술과 아이의 아버지가 얼마나 밉고 가슴이 찢어졌을까. 그 때문에 어머니는 유교
참고문헌
Text-김동리, 『한국소설문학대계』, 동아출판사, 1995
김동리, 『꽃과 소녀와 달과』, 제삼기획, 1995
김윤식, 『김동리와 그의 시대』, 민음사,1995
최선희,「김동리 소설의 가족의식」, 한국전통문화연구 Vol.12 No.-, 1997
이동화, 「한국문학의 전통지향적 보수주의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89.
이동길, 「김동리」<을화, 자아중심성을 넘어선 삶의 추구>, 살림,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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