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학문 실학 의대 학자 성호 이익李瀷1681~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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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실용학문(실학)의 대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1763)
1. 그의 생애
그는 1681년(숙종 7) 신유년 10월 18일 아버지 이하진의 유배지(流配地)인 평안도 운산(雲山)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성호가 두 살 되던 1682년(숙종 8) 임술년 여름, 향년 55세로 귀양이 풀리지도 않은 채 그곳에서 세상을 버렸다. 이처럼 성호의 생애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성호를 키운 것은 편모인 권씨 부인이었지만 그를 학문의 세계로 이끈 것은 둘째 형님 섬계공(剡溪公) 이잠(李潛)이었다. 스물 두 살 터울로 마치 어버이 같고 스승 같던 이 형님마저 성호의 나이 26세 나던 1706년(숙종 32) 진사의 신분으로 서인(西人) 중신(重臣)의 잘못을 임금께 상소했다가 역적으로 몰리어 곤장을 맞고 작고하였다. 연이은 당쟁의 환난(禍難)이었다. 성호는 이보다 일 년 전인 1705년(숙종 31)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답안지[科紙]에 적은 이름[錄名]이 잘못되었다는 빌미로 제2차시험인 회시(會試)에 조차 나가지 못하였다. 이 사건 이후 그는 과거를 아예 작폐한 채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이 같은 일들을 일러 다산 정약용은 “성호선생께서 집안에 화를 당한 뒤로 이름난 학자가 되셨으니, 권세 있는 부호가의 자제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라고 기록했다.
그가 33세 나던 1713년(숙종 39)은 성호의 생애에 있어 대단히 의미 있는 한 해였다. 기다리던 외아들 맹휴가 태어나고 본격적인 저술 활동이 시작된 해였기 때문이다. ‘질서(疾書)’의 시작인 『맹자질서』는 이 해에 완성되었다.
성호의 학문이 알려져 많은 제자들이 안산으로 찾아든 것은 그의 나이 30대 부터였다. 또한 47세 때에는 나라에서 그의 학문과 덕행(德行)을 듣고 몇 차례 벼슬을 내리고자 불렸으나, 한번도 이에 응하지 않고 성포동에서 농사지으며 학문에만 정진하였으니, 그가 주장한 ‘사농합일(士農合一)’ 즉, ‘선비는 농사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철저히 실천한 셈이다. 본래 병약했던 그가 등과 가슴에 악성 종기가 심해지기 시작한 것은 60대 이후였다. 외아들 맹휴도 같은 증세로 39세에 젊음을 버렸으니, 이 병은 성호가의 고질이었던 듯하다. 수많은 친족에 대한 보살핌과 자신의 병을 다스리는 동안, 이미 가산은 탕진되어 나중에는 ‘송곳조차 꽂을 단 한 평의 땅도 없을’ 정도로 경제적 몰락과 모고(困苦)를 겪게 되었으나, 이런 고통 속에서도 83세로 이승을 버리기까지 세상을 위한 실용·실증의 학인 경세치용의 학문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83세 되던 1763년(영조 39), 영조는 고령의 노인을 우대하는 나라법에 따라, 성호에게 정3품 당상 관직인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의 벼슬을 내렸다.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같은 해(1763) 11월, 병상에 들어 12월 섣달 17일, 정침에서 임종했으니 향년이 83세 였다.
2. 시대와 문제의식
이익이 학문 활동을 하던 18세기 조선은 사회 내부의 모순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먼저 양란(兩亂)을 전후한 시대상을 본다면 정치적으로는 당쟁이 격화되면서 지배 계급 내부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났으며, 경제적으로는 황폐된 전제의 재정비, 대동법의 실시, 이앙법과 이모작의 성행, 금속 화폐의 유통과 상업 자본의 발달 등이 이루어졌다.
또한 당쟁이 치열하던 시대를 따져보면 <예송논쟁> 의 시기였다.
* < 예송논쟁 >
남인의 거두인 허목(許穆: 1595~1682)과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宋時烈: 1607~1689)
① 효종의 뜻하지 않은 죽음 → 상복을 입는 기한을 놓고 논쟁
효종이 맏아들이 아니라 소현 세자의 뒤를 이었고 당시의 대비가 생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례 법도를 정하는 데에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서로의 명분을 앞세워 당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고 하는 권력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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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익의 학문관과 사상
  • 성호학파는 경전의 해석방법과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태도에 따라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누기도 하는데, 온건주의를 주장하는 보수파에는 안정복, 황덕길, 허전 등을 들 수 있고 급진적 소장층인 진보파로는 정약용, 권철신, 정약전 등이 꼽힌다. 이익은 평생을 재야에서 한사(閑士)로서 학문에만 매진하였고, 당시의 어려운 현실을 분석하고 그 대안인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을 강력히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익은 고금의 서적을 읽고 생각하여 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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