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이익 최종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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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간, 성호 이익 (星湖 李瀷)
◇ 서론 ◇
이익, 그는 누구인가?
1. 삶과 죽음
이익은 1681년(숙종 7년) 11월 17일에 평안도 운산군 그의 아버지의 귀양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남인 가계에 속하며 그가 태어날 당시는 남인이 정계에서 제거되어 급속히 몰락하여 가고 있었다. 이른바 경술 대출척(숙종 6년 1680)으로 남인의 영수 허목이 물러나고 성호의 아버지 이하진도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곧 평안도 운산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가 태어난 다음 해에 부친이 별세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그는 편모슬하에서 자라게 되었으며 둘째형인 이잠에게 학문을 배웠다. 26세 때에는 일생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의 학문적 스승이었던 둘째형 이잠이 당시 노론 집권당을 공격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렸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 그것이다. 이 사건이 준 충격은 그에게 일체의 과거공부를 집어치우고 학문에만 전념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그의 일생에 있어서 첫 번째 전환기가 된 셈이다. 35세에는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다. 이때에 노비와 세간 살림 등 일체를 종가에 돌려보내게 되었으며 이후로 그는 생계가 궁핍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에게 있어서 두 번째의 전환기인 셈이었다.
첫 번째의 전환기가 그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생활상의 큰 변화는 그의 학문적 입장이 몰락하는 소토지 농민 일반의 이해를 대변하게 된 근본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그의 생활상의 처지는 실상 몰락하여 가는 농민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가난이 날로 심하여 송곳을 꽂을 땅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성호문집 권 20)고 하는 것은 저 같은 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47세에는 나라에서 관직을 주었으나 사절을 하였고 83세(영조 39년, 1763)에는 노인을 우대하는 벼슬을 주었으나 그해 12월 17일에 별세를 하였다.
2. 이익 실학의 출현 배경
성호 이익이 생존했던 조선후기의 시대적 상황은 매우 좋지 못했다. 벼리를 잡은 자들은 벌열(閥閱)이 되어 삶을 즐기고 권력을 행사하지만,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양반들, 서얼, 무반, 가난한 서민, 천민, 아전 등은 음습하고 비좁은 뒷마당에서 울분을 삭이며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익은 비록 양반 지배계층에 속했지만 권력투쟁에서 서인에게 패하여 권력에서 소외된 남인에 속했다. 스승의 역할을 했던 둘째형 섬계공(剡溪公) 잠(潛)이 역적으로 몰리어 장살을 당한 사건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는 소외계층인 남인에 속했기 때문에 권력에서 소외되어 재야에 묻혀서 한사(閑士)로 학문에 몰두하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익의 집에는 부친이 남겨준 서적이 수천 권이나 소장되어 있었고, 조상의 은덕으로 논밭과 농장 그리고 노비가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농사짓는 생산적 활동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갖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비록 말년에는 생활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졌지만 말이다.
이익은 평생을 재야에서 한사로서 학문에 매진했고, 당시의 현실을 분석하고 그 대안인 경세치용의 실학을 강력히 부르짖었다. 즉, 그의‘경세치용’,‘중농주의’로 대표되는 실학사상은 당대의 소외된 민중을 위한 휴머니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농업을 국가 재정의 원천이고 정치의 근본이라고 판단했고, 나라가 부유해지면 자연히 풍속도 순수해지고 다툼이 없어져 효도와 공경하는 도리가 드러난다고 여겼다. 그는 평소에 늘 검소와 절약을 강조했고 평생의 신조로 삼아 생활했다. 그래서 수공업과 상업은 검소와 절약 정신을 해쳐 사치한 데로 나아간다고 반대했다. 성호 선생은 중농주의로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 삶의 토대를 확립한 후, 제 사회문제를 개혁하여 춥고 그늘진 뒷마당에서 고통 받는 소외 계층을 밝고 따스한 앞마당으로 나올 수 있게 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선생은 고금의 서적을 읽고 생각하여 자득한 백과전서적 지식을 방대한 저서로 표출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평생 지식이 온축된 것이다. 사설은 자잘하고 쓸데없는 글이라는 뜻인데, 그는 겸사로 붙인 책명이다. 그리고 경전을 널리 읽고 깊게 생각하여 자득한 새로운 견해를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 바로 질서(疾書)이다. 질서라는 것은 급히 쓴 부정확한 글이라는 뜻이다. 질서에는 《칠서질서》외 4종이 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는 번잡하고 소비적인 예(禮)에서 벗어나 현실에 알맞은 예식을 강조한 〈성호선생예설유편(星湖先生禮說類編)〉을 저술했고, 경세치용학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곽우록(藿憂錄)》, 만물을 관찰하면서 느낀 생각을 기록한 〈관물편(觀物編)〉을 저술하는 한편, 〈백언해(百諺解)〉와 《이자수어(李子粹語)》를 편집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익은 평생 동안 재야에 묻혀 소외된 삶을 살면서 저술 활동을 했고, 함께 고락을 같이한 소외된 자들의 아픔에 대해 동병상련했고, 그 아픔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자임했다. 곧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강구한 대책이 결국은 경세치용의 사회 개혁사상으로 나타났고, 그 사회개혁사상이 곧 실학이다. 결국 이익의 실학은 생명외경사상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인 것이다.
◇ 첫 번째 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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