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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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왕실 및 대한제국 황실 문화유산의 종합적인 조사·연구·수집·보관 및 전시를 통해 왕실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관 정립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립고궁박물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9253, 2014년 5월 12일
박물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상3층, 지하 1층 건물로 상설전시실 10실, 기획전시실2실, 어차전시실 1실로 구성되어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직육면체의 돌에 천체의 형상을 새겨 놓은 것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권근(權近), 유방택(柳方澤) 등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명을 내려 만들도록 한 것이다. ‘하늘의 형상을 십이차(十二次)와 분야(分野)에 따라 그려 놓은 것’이란 뜻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구려의 천문도를 표본으로 삼아 그 오차를 고쳐 완성했는데, 두 부분으로 나누어 내용을 배치하고 있다. 윗부분에는 짧은 설명과 함께 별자리그림이 새겨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천문도의 이름, 작성 배경과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 및 만든 때가 적혀 있다. 별자리그림에는 중심에 북극을 두고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黃道)와 남북극 가운데로 적도(赤道)를 나타냈다. 또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별들이 총망라되어, 황도 부근의 하늘을 12등분한 후 1464개의 별들을 점으로 표시하였다. 이 각석의 뒷면에도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제목의 위치만 상단으로 바뀐 천문도가 거꾸로 새겨져 있다. 이 그림을 통해 해, 달, 5행성 수성, 금성, 토성, 화성, 목성을 뜻한다.
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절기를 구분할 수도 있다. 태조 4년(1395년)에 제작된 이 석각천문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1241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지금은 표면이 심하게 깎여나가서 알아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고구려 천문도의 원형을 짐작케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앙부일구(仰釜日晷)-보물 제845호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년)에 장영실(蔣英實), 이천(李), 김조(金)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모양은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時刻線), 계절선(季節線)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큰 것은 시계의 지름이 35.2cm, 높이가 14cm이고,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며, 작은 것은 시계의 지름이 24.3이며 18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 앙부일구는 해그림자를 받는 시반(時盤)과 해그림자를 나타내는 영침(影針)이라는 바늘로 이루어졌다. 시반의 왼편에는 동지부터 하지, 오른편에는 하지부터 동지까지의 24절기가 13줄의 가로선으로 새겨져있다. 동지에는 영침의 그림자가 가장 바깥쪽 계절선에, 하지에는 가장 안쪽 계절선에 위치한다. 시각선은 해가 뜨는 묘시(卯時, 5~7시)부터 해가 지는 유시(酉時, 17~19시)까지 7개가 있으며, 각 시각선 사이에는 1각(刻, 약 15분)을 뜻하는 8등분된 선이 그려져 있다. 특히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또한 이것을 대궐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종로 혜정교(惠政橋)와 종묘(宗廟) 앞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시계였다는 점에도 의의가 크다.
●영조어진(英祖御眞)-보물 제932호
영조는 21세 되던 해부터 매 10년마다 자신의 초상화인 어진을 그려 그 수가 소본(小本)과 초본(草本)을 합하여 12본에 이르렀으며, 이들 어진은 영희전(永禧殿) 조선시대의 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의 어진을 모셨던 전각이다. 서울의 남부에 있었으며 남별전(南別殿)의 이름을 고쳐서 불렀다. 그 규모는 정전으로 수용전(容殿) 3칸이 중앙에 동남향으로 있고, 앞쪽에 대문 3칸이 있다. 신좌와 수용(容 : 영정)은 모두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봉안되었으며, 재전(齋殿) 3칸은 좌측에 있고 동궁재실(東宮齋室) 3칸이 아래쪽에 있다. 제사의 규모는 속제(俗祭)에 준하며 정월초하루·한식·단오·추석·동지·납일에 정기적으로 지낸다.
, 선원전(璿源殿) 보물 제817호.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하던 정면 7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역대 임금을 제향(祭享)하는 건물로 궁궐 밖에 종묘(宗廟)가 있고 궁 안에 선원전을 지었으며, 선원전은 경복궁에도 있었고 창덕궁에도 마련되었다. 왕은 삭망(朔望)에 선원전에 나와서 친히 분향·배례를 하며 탄신일에는 차례(茶禮)를 드렸다. 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의 어진(御眞)이 봉안되었었다. 그러나 1921년에 창덕궁 후원 서북쪽에 선원전을 새로 지어 어진을 이곳으로 옮긴 뒤로는 구선원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궁내에 소장된 주요 유물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고 있다. 선원전은 구조적으로 간결하고 불필요한 장식이 가미되지 않은 건물로서,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용 건물의 유례로 중요하다. 이곳에 봉안되었다가 새로 지은 선원전에 옮겨졌던 어진은 1950년 6·25동란 중 불타 없어졌다.
, 강화의 만녕전(萬寧殿) 및 생모의 사당인 육상궁(毓祥宮) 등에 봉안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영조어진은 이 유물과 21세 때 연잉군(延君) 시절의 모습을 그린 〈연잉군 초상〉 두 점이 전부이다. 이 어진은 1900년 창덕궁 선원전에 모셨던 영조어진이 화재로 소실되자 육상궁 냉천정(冷泉亭)에 있는 51세 상(1744년 작)을 본떠 그린 것으로, 당시 주관화사는 채용신(蔡龍臣, 1850~1941)과 조석진(趙錫晉, 1853~1920) 등이 맡았으며 크기는 110.5×61.8cm이다. 화면(面)의 오른쪽 상단에 “영조대왕의 어진이다. 광무 4년 경자년(1900년)에 다시 베껴 그렸다.” 英祖大王御眞 光武四年 庚子移摹
란 표제가 붙어 있어 제작시기를 알 수 있다. 어진의 모습은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곤룡포(袞龍袍)를 입고서 두 손을 마주잡은 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이다. 익선관의 형태가 높고 곤룡포의 깃이 많이 패였으며 소매 폭이 넓고 옥대(玉帶)가 흉배 위로 올라와 있는 등 조선후기 변화된 의복의 모습을 반영해준다. 〈영조어진〉은 전신(傳神) 초상화에서, 그려진 사람의 얼과 마음을 느끼도록 그리는 일
배채(背彩) 색을 곱게 보이기 위해 비단 뒤에서 채색을 가하여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
참고문헌
※참고문헌
◎서적
박정혜 외 4인, 『조선시대 궁중회화 3 왕의 화가들』, 돌베개, 2012
◎인터넷 자료
국립고궁박물관, http://www.gogung.go.kr/index.do., 2014년 5월 12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2014년 5월 12일
문화재청,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201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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