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해인사 묘길상탑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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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해인사길상탑이란?
2. 탑기의 발견 경위
3. 탑기의 내용
4. 당시 당의 정세와 최치원, 승훈
5. 왜 해인사가 초적의 습격 대상이 되었을까?
6. 당시통일신라의 사회상과 붕괴의 원인
본문내용
1. 해인사길상탑이란?

종 목 보물 제1242호
명 칭 해인사길상탑(海印寺吉祥塔)
분 류 석탑
수 량 1기
지정일 1996.05.29
소재지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해인사
시 대 통일신라 진성여왕
소유자 및 관리자 해인사
⇨해인사(海印寺) 일주문(一柱門)에서 남쪽으로 약 50m 지점에 소탑(小塔) 1기(基)가 서 있다. 이 소탑(小塔)은 가람배치(伽藍配置)와는 무관하게 노변에 안치된 일종의 장엄탑 으로도 생각되며 상하이층 기단(基壇)에 우주(隅柱), 탱주(탱柱)의 양식은 물론, 옥개석 (屋蓋石)의 층급(層級)받침 또한 5단으로 전형적인 신라삼층석탑(新羅三層石塔)이며 높 이는 약 3m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전형 석탑양식을 갖춘 탑으로 2층의 기단을 지니고 있으며, 특이한 점은 상층 기단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낮고 넓어서 상당히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옥 개받침은 각각 5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 이상이 결실되었으 나 노반(露盤)에 지름 5.2㎝ 정도의 찰주(刹柱)를 꽂았던 원형구멍이 남아 있다. 이 탑 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중 소탑(小塔)이 157개가 있으나 완전한 수량이 아니다. 이는 이 탑의 건립이 탑지(塔誌) 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에 유행한 조탑경(造塔經)인 무 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에 의거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소탑(小塔)은 원래 99개, 77개가 안치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망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4매의 탑지(塔誌)는 23㎝의 정방형으로 두께 2.4㎝의 검은 전판(塼板)으로 만들어졌는 데 명문은 신라(新羅) 말기의 대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찬(撰)한 것으로서 유명하 다. 즉 건녕(乾寧) 2년(신라 진성여왕(新羅 眞聖女王) 8년 (서기 895)을 전후한 7년에 걸친 통일신라(統一新羅)말기의 혼란 속에서 창궐한 도적떼로부터 사보(寺寶)를 지키기 위해 힘쓰다 희생된 승속(僧俗)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했다는 사실과 함께 탑의 높이, 공장승(工匠僧), 탑 안에 납입한 법보(法寶)의 내용 및 탑을 건립하는데 소 용된 비용 등을 기록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탑의 높이를 일장삼척(一丈三尺)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상륜부(相輪部)가 결실되었으나 현재 탑의 높이를 3m로 볼 때 이 탑의 조성에 당척(唐尺)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도량형(度量衡)을 연 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탑지(塔誌)의 기록에 따라 석탑건립에 소요
참고문헌
다시찾는 우리역사 한영우 경세원
고대로부터의 통신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푸른역사
신라의 역사 이종욱 김영사
살아있는 한국사 이덕일 휴머니스트
한국사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해인사전권과 묘길상탑기 하일식, 1993
신라 하대의 해인사와 화엄종 최원식
한국금석전문 고대편
각종 인터넷 검색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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