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학구 도자중심의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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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독교회 내에서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대안으로 구도자 중심의 집회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전도나 교회 성장의 일환으로 또는 교회 변화의 일환으로 구도자 중심의 집회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 집회를 통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찾았고 그 본질을 추구하여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질의 예배가 아닌 형식화된 예배가 되어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며 세상의 불나방처럼 살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로인해 많은 교회에서는 젊은 세대들을 교회에 머물게 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게 예배를 드리고자, 구도자 중심 집회를 수용하였지만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며, 또한 교회 성장의 한 방편으로 구도자 중심의 집회의 형식을 기존 성도들의 예배에 여과 없이 받아들이므로 예배의 본질을 상실하게 되었다.
A. 구도자 중심의 집회의 정의와 기원
1. 정의
‘열린 집회’는 미국에서 1975년 Bill Hybles 목사가 개척한 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에서 처음으로 구상된 예배형태이다. Hybels는 영적인 갈급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구도자’(求道者 구할 :구, 길 : 도, 놈 :자
, Seeker)라고 부른다. ‘열린 집회’는 구도자에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예배(Seeker Sensitivity Service)를 말하는 것으로서 한국에 이것이 도입되면서 그 어감의 문제로 인해 한국 상황에 맞게 ‘열린 예배’, ‘구도자 중심의 예배’, ‘탈 의식적 예배’,‘창의적 예배’, ‘현대 예배’라고 명칭을 바꾼 것이다.
2. 기원
Hybles가 1973년 South Park Church에서 청소년을 위한 수요 공부를 인도하고 있을 때, 그 그룹이 계속 자라기는 하는데 아주 적은 수의 학생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보면서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면서 시작되었다.
구도자 중심의 집회의 기원은 ‘프론티어 예배’이다. 이 예배는 독특한 예배의 의미와 목적이 있고, 그들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그대로 미국의 방송 복음 전도자들, 윌로우크릭의 구도자 중심의 집회, 우리나라의 열린 집회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론티어 예배는 개인의 구원과 전도를 위해 생긴 전도 야영 집회였으며, 이것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예배의 형태였다. 이 예배는 미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예배 형태였으며, 지금가지도 미국의 개신교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전통이다. 열린 집회나 윌로우크릭의 구도자 중심의 집회가 모두 이 전통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현재 미국 개신교나 세계 여러 지역에서 프론티어 전통의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그것은 미국역사에서 미국 땅의 개척 시기에 교회들이 근본적으로 전개한 것으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 형태였다. 프론티어 예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프론티어 예배는 야영 집회나 부흥회였으며, 개척지의 상황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문화와 심성에 호소하여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는 새로운 형식의 예배였다. 즉 신앙 부흥 운동, 회심, 결신, 전도, 교육과 같은 개념과 어휘들이 강조되었고, 결신의 표시로서 세례를 받게 하는 예배였다.
둘째, 프론티어 예배에서 예배를 집례하는 사람은 성직자가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이 많았다. 초대교회 이후로 기독교회 예배를 집례하는 삶은 안수 받은 성직자 중심이었다. 그러나 미국 개척지에서는 안수받은 성직자가 절대 부족했고, 개척의 과정에서 인간의 독립성과 자립성, 평등성이라는 지표 때문이었다.
참고문헌
Ⅳ. 참고문헌
민장배, 「예배학」. 대전: 세화출판사, 2009.
조영엽, 「열린 예배란 무엇인가?」. 서울: 큰샘출판사, 2005.
조영엽, 「왜 열린 예배는 잘못되었는가?」. 서울: 미스바,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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