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독교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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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세 13세기는 “스콜라 신학”의 절정을 이루었다. 스콜라 신학은 특유한 방법론들을 가지고 있었던 신학으로서 “학교”(school)속에서 발전한 신학에 붙여진 이름이다. 스콜라티시즘(scholasticism)은 분명 중세철학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또 어떤 특정 인물이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학설의 체계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앙과 이성에 관한 특정 관점도 아니며, 신학에서의 이성의 체계적 사용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13세기경 중세 서방 라틴 세계에서 널리 취해진, 학문하는 데서의 태도나 신념을 가리키며, 한마디로 탐구의 방법이자 교육의 방법이다. 중세인들은 원래의 발견을 재현하는 것이 최선의 교육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교육의 순서가 발견의 순서를 따르도록 했던 것이다. 박우석,「중세철학의 유혹」, (철학과 현실사, 1997), 37쪽
스콜라신학의 기원은 수도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12세기경 신학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성당 부속 학당들은 13세기에 들어서서 대학교들로 대체되었다. 이는 도시들의 발전이 가져온 결과의 하나로 신학은 인구 중심지로부터 떨어진 곳에 소재한 수도사들로부터 교회와 주교들과 연관된 성당 부속 학당들로 옮겨졌고 후에는 중요한 대도시에 모인 학자들의 집결지인 대학교가 그 무대가 되었다.
스콜라 신학은 교부인 안셀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1-12세기는 초기시대, 13세기 중기는 전성기였고, 그 후 종교개혁에이르러 일단 끝을 맺었다. 밴A.하비, 「신학용어핸드북」, 박양조 역, (기독교문사, 2002), 122쪽
■ 스콜라 신학의 선구자들 - 캔터베리의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 피터 아벨라드 (Peter Abelard), 피터 롬바르드(Peter Lombard)등
1. 캔터베리의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
이탈리아 출생으로 1060년에 노르망디의 베크(Bec) 수도원에 수도원장인 랑프랑(Lanfranc)의 명성에 이끌려 들어갔다. 1093년에 안셀름이 랑프랑의 뒤를 이어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안셀름은 윌리엄과 그의 아들 헨리 아래 대부분의 여생을 캔터베리로부터 유배당한 채 보냈다. 안셀름은 이러한 유배 기간을 베크 수도원 시절과 마찬가지로 신학적 문제들에 관한 명상 및 집필로 보냈다.
스콜라 신학의 발전에 있어서 안셀름의 중요성은 특히 이미 신앙을 통해 알려진 진리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이성(reason)을 적용한 그의 욕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성을 통해 적용할 수 없는 신앙 문제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신앙을 통해 믿고 있던 문제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
안셀름은 그의 저서『서언』(Proslogion)에서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위한 본체론적 이론”이라 불리워진 학설을 주장하였다. 이는 누군가 하나님에 관하여 생각할 때에 “그는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존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그는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존재하는 사물이 그것보다 더 위대할 것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의 자체에 의해 “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는 그 존재 자체를 포함하고 있다.
저서『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Why God Human)에서 성육신의 근본 이유에 관한 문제를 탐구했는데 이 논문에서 객관적 속죄론에 근거한 이론을 전개한다. 곧,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의 타락과 범죄로 섭섭하셨는데, 그 섭섭한 마음을 만족케 하여 빼앗긴 명예를 하나님께 다시 회복시켜 드려야 할 인간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악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오직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만 하셨다. 인간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지신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만족설을 강조한 것이다.(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이러한 견해는 대부분의 서방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가장 성경적 해석으로 수용되고 그의 주장이 서방 신학에 있어서 표준적 위치를 차지하게 됨)
또한, 그는 믿음과 이성의 관계에서 그의 활동의 목적이 이성을 통해서 신앙을 획득하려는 데 있지 않고 믿음이 신학의 출발점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알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고 주장하였다. 김홍기, 「세계기독교의 역사이야기」, (예루살렘, 2001),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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