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신학대학원생들의 전도 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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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감리교 신학대학원생들의
전 도 계 획 서
0. 문안인사
주님의 평화가 언제나 넘치길 기도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먼저 저희 소개를 하려 합니다. 저희는 감리교신학대학원에서 전도학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며, 부족하지만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각자의 교회에서 파트 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예비 목회자들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필수 과목인 ‘전도학’수업과 관련하여 이렇게 협조의 글을 보냅니다. 전도학 수업은 현장에서 전도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 조별로 현대에 알려져 있는 전도방법을 알아보며 그것을 직접 시도해 보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많은 조들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였지만, 저희는 개교회가 중심이 되지 않는 전도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벤트성 전도임을 감안하여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협조의 글을 보냅니다. 아직 부족하기만한 저희가 모여 주님의 선한 계획을 겸손히 이뤄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또한 저희의 부족한 손이 개포교회 청년부에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들어가며
70년대만 하더라도 교회 다니면 믿을 만 하다는 사회적 이미지는 우리의 선교사명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순기능만이 있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서 기독교는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는 데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 한국사회에는 반기련, 안티기독교를 비롯하여 유독 기독교만을 싫어하는 집단이 많아졌습니다다. 이는 사회적으로 교회가 해 놓은 일들의 결과일 것이며 현대에 사는 기독교인인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사회풍토는 교회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의 긍정적인 효과마저도 감소시키고 있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선교사명’에도 큰 장해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사회적으로 교회의 이미지를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할 수 있는 교회’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우리의 선교사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선택하게 된 것이 문화 전도와 이미지 전도 방법입니다. 문화전도는 창천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들이 시행하고 있는 방법으로, 교회 안에서 문화활동을 함으로써 사회환원을 통한 교회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높은 장벽이 되었던 교회의 문을 내림으로써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하는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지 전도 역시도 교회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지 않아도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끔 만드는 방법을 말합니다.
문화전도의 방법으로는서 저희는 직접 거리로 나아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직은 일회적이기에 많은 한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수업의 일환이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절대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저희 나름대로의 효과를 거두기를 소망하였고, 지속적인 전도를 위하여 지역교회와의 협력을 시도하였습니다. 문화전도 방법과 이미지전도방법은 장기적이며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희가 협력하고자 하는 교회와 장기적인 계획을 짜는 것과 그 시작을 돕는 것까지로 우리의 역할범위를 제한하였습니다.
또한 이미지 전도의 방법과 더불어 제기 되었던 것은 NGO와 함께하는 문화전도였습니다. 현재 사회복지단체의 많은 부분들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져 있고, 월드비전, 기아대책기구, 굿네이버스 등의 국제단체들 또한 기독교의 이념과 자금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각 NGO들은 기독교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고, 교회는 매우 편협하고 금전적인 단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만 합니다. 두 기관의 협력을 통하여 기독교 NGO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교회는 사회구제의 이미지를 다시 복구하여 상생의 길을 찾아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NGO의 협력을 구하기에는 우리의 모임이 일회성이며 많은 한계가 있기에, 협력교회에서 기도하고 고민하여 방법을 모색해 보기를 기도해 봅니다.
2. 근거가 되는 이론
1) 문화전도 문화선교의 근거에 관한 연구. 목원대 신학대학원. 지효성. 200802.
비기독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모두 이 땅위의 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 그것인데, 이렇게 창조된 특별한 존재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명령을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문화명령’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도록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화가 시작됩니다. 위의 ‘문화명령’은 두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가정의 규례이고, 두 번째는 노동규례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에게 특권과 책임을 부여 받은 이 세상의 대리인으로서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문화가 선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기에 타락한 상태의 세상 문화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깨어진 세상 문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심으로서 회복의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통하여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는 제 2의 지상명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마태복음 28장 18절 이하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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