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 아홉은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17장11-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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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홉은 어디 있느냐?>
혹시 우리 가운데 난치병, 도무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분이 계십니까? 그런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난치병 환자, 불치병 환자, 전혀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해요. 위로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어떤 회복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고 하는 희망의 줄이 그에게 잡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그런 사람에게는 절망밖에 올 것이 없어요. 고대 사회에서 아니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소위 한센슨씨병 혹은 나병이라고도 불리는 우리가 쉽게 문둥병자라고 하는 병은 이것은 난치병이에요. 이것은 불치병에 속했었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집에서도 쫓겨나고 마을에서도 살 수 없고 격리되어져야 해요. 도무지 위로가 없습니다. 소망이 없어요. 다시 회복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그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는데 이분이 죽은 자도 살리시고 오천 명도 떡 다섯 덩이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먹이시고, 앉은뱅이도 일으키시고, 38년된 병자도 고치시는 분이다! 라는 소식이 이 열 문둥병자에게 들려진 것입니다. 이들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동네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 열 사람이 목소리를 다해서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고 소리를 높였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른 말씀은 안하십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 그 말을 보이라. 그 말이 뭡니까? 다 낳았다 이말이에요. 제사장은 확인만 해주면 되요. 다 낳았으니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는 말씀을 하신거에요. 이 열 사람이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그 말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는 거에요. 가는 도중에 아 자기 몸이 그렇게 부스럼이 많고 다 떨어졌던 자기 몸이 깨끗함을 받게 되는 거에요. 너무 놀라운 그 순간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때에 열 사람 중에 사마리아인 혼자서 돌아옵니다. 예수님을 찾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서 감사의 말을 하고 영광을 돌릴 때에 예수님께서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이렇게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그 아홉을 어디서 찾겠느냐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지 않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사람은 있어요. 그런데 받은 은혜가 열 가지인데 열을 받았는데 하나밖에 감사를 안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감사가 충분하지 못하다. 여러분 금년도에 발표된 것을 들어보셨죠? 우리나라 쌀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서 10퍼센트 증산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같은 한반도에 있는 북한에서는 지금 굶주려서 죽어가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 될 것이라고 유엔이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이 백성이 무엇을 잘해서 무엇이 훌륭해서 이렇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까? 농민들은 지금 쌀이 너무 많아서 쌀 가격이 내려간다고 해서 오히려 데모를 할 판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풍성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감사는 열 개를 받고 하나밖에 감사를 못하고 있어요. 아니 그나마 하나라도 감사를 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지 많은 사람들이 감사를 제대로 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길을 가시다가 맹인을 만났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그 맹인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맹인 안 되어 눈 뜨고 다니는 것 감사하신 적 있어요? 정말 눈 없이 몇 발자국을 걸어갈 수 있고 행동에 자유가 있습니까? 병원에 가보셨습니까? 자기 입에 숟가락을 넣고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옆구리에 호스줄로 혹은 목구멍을 따고 어떻게 이렇게 해서 겨우 연명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아요? 그거 감사해 보셨어요? 내가 받은 은혜가 열인데 나는 감사한다고 하면서 겨우 하나밖에 감사하지를 못했어요. 모든 것이 감사해요. 시력과 청각과 가족과 친구와 그리고 아홉은 잊어버리고 감사를 못했지만 그 적절하게 균형 있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내가 감사하지 못한 것이 어찌 아홉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매일 아침 매 순간 신선한 은혜를 한없이 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감사가 부족하다는 말은 기도한 것보다 감사가 적다는 말입니다. 열 문둥이가 어떻게 애원합니까?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불쌍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열사람이 다 감사해야 되지 않아요? 기도할 때 구할 때는 언제고 일이 이루어지니까 전혀 감사가 없어요. 그저 열명 중에 하나밖에 감사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 속된 말로 그런 말이 있죠? 화장실 갈 때와 나갈 때 생각이 달라진다. 화장실 갈 때는 앞에 사람 안 나온다고 소리 지르면서 새치기 해가면서 어떻게든 들어가 놓고 나와서는 왜 질서가 없냐고 떠들잖아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받기를 원해서 간구할 때 그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해야 되는데 그 감사가 너무나도 적은 거에요. 풍랑을 만난 사람이 바람이 잔잔케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풍랑이 잔잔해졌을 때 감사의 무릎을 꿇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내게 병이 오고 고난이 올 때에 하나님 앞에 애원의 기도를 수없이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이 된 다음에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감사를 했던가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말씀을 내가 정말 뼈저리게 체험하고 이렇게 감사생활을 하고 있는가 기도마저 하지 않는 사람은 감사도 물론 없지요. 그래도 구한 것이 있으니까 감사라는 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는 감사처럼 날마다 하는 것 아니에요. 왜냐하면 천국가면 더 이상 기도 없어요. 그러나 천국 가서 감사는 계속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 감사를 날마다 최우선으로 하고 가장 높은 덕성 중에 하나로 세우고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감사보다 의식을 중요시 합니다. 이 열 문둥이가 제사장에게 보이라 그랬더니 제사장한테 제사지내러 가는거에요. 그런데 그 중에 한명이 자기 병이 나은 것을 알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 생활도 하고 예배도 잘 참여하고 종교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를 합니다. 그러나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감사 했나 감사보다 원망이 더 커졌잖아요. 이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노예근성 입니다. 노예로 끌려 다니는 사람은 원망해요. 시비해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딸이 된 사람은 원망하지 않아요. 왜? 내 일인데 내 집 일인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남에게 월급 받고 하는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감사가 결여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감사, 찬양보다 때로는 믿음을 강조하는 때가 있어요. 이거 보세요. 열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 했더니 그 사람들은 갔어요. 나은 줄 이미 믿은 거에요. 대단한 믿음이에요. 이 열 문둥이의 믿음은 아주 큰 믿음이에요.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 했더니 예하고 가는 거에요. 큰 믿음을 가졌어요. 믿음이 중요합니다. 순종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음과 순종만 가지고는 절대적인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몸의 병은 나았는지 모르나 구원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열 사람 중에 한사람 돌아온 그 사람에게는 오늘 읽은 본문 마지막을 보세요. 구원을 얻게 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얻게 되는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가운데 엘리야가 가진 믿음과 같은 큰 믿음 가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같이 나사렛 동네의 마리아와 같이 감사하는 사람이 있을까? 주의 이름을 높이는 감사가 있을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있어요. 그러나 십자가를 지신 그 그리스도께 감사가 없다면 그 신앙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사가 모든 믿음의, 모든 순종의 결론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그 믿음이 빛이 나는 것이고 그 순종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거에요. 감사하는 것보다 우리는 은혜를 더 많이 받았어요. 우리 감사가 부족합니다. 더 많이 감사해야 되요. 이제 남을 헐뜯고 할 시간 없어요. 우리는 감사로 꽉 차야 됩니다. 감사하기보다 구하는 일을 더 많이 했잖습니까? 너무 많이 기도했어요. 이제는 좀 감사로 바꿔야 됩니다. 우리가 구하기보다는 받은 은혜를 감사해야 해요. 감사보다 의식에 너무 순종을 했어요. 의식보다 감사를 더 해야 될 것입니다. 크게 믿었지마는 감사가 없다면 그건 죽은 믿음이에요. 우리는 감사의 삶을 더욱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감사의 특성, 감사는 무슨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이 손으로 만든 조화가 있잖아요. 그 조화는 똑같습니다. 어디를 갖다놓아도 똑같은 조화입니다. 그러나 생화는 여기 핀 것과 저쪽에 핀 것이 같은 색깔은 가졌는지 모르나 다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개인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환자 열 명 중에 한 사람만 돌아와서 열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을 대표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안 받으신 거에요. 그 아홉까지 찾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개별적인 감사이지 우리가 집단적으로 대표성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는 거에요.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에요. 아비가 포도를 먹는데 자식의 이가 시겠느냐? 아닙니다. 아비가 포도를 먹으면 아버지의 입만 시지 자식의 입까지 시지 않는다. 그 말은 구원은 개별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 아버지가 장로님이고 내 아내가 목사님 딸이고 그것 가지고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내게 구원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이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개인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감사를 해야 되요. 어머니가 대신 감사 할 수 없고 내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감사할 수가 없어요. 개별적인 것이 감사의 특징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신속하게 해야 되요. 감사를 미루는 분들이 있습니다. 감사를 미루면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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