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교회사] 전후 일본기독교의 변화와 현재(전쟁책임고백을 중심으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5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est1est2est3est4est5 1(구매금액의 3%지급)
  • 9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전후 일본기독교의 변화와 현재
- 전쟁책임고백을 중심으로 -
1. 들어가는 말
1967년 3월 26일 부활절에 ‘일본기독교단’은 ‘제2차 세계대전 하에 있어 일본기독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을 의장 스즈키 명의로 공포했다. 이는 전쟁 후 일본에 있어 종교, 사상, 학술, 언론 분야 전체를 통 털어 최초의 전쟁책임 고백이었다. ‘일본기독교단’의 고백 이후, 이외의 몇몇 교회, 불교 종단 등도 같은 모양과 취지의 고백, 혹은 선언을 행한 바 있다. 하라 마코토, 『전시 하 일본기독교사』서정민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9), 7.
이 고백은 일본기독교계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의 모습을 인정을 의미하며, 예언성을 회복하고, 화해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이글에서 이러한 전책고백을 통해, 전후 일본기독교의 변화와 현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전쟁 직후의 일본기독교
패전 이후, 전쟁책임의 문제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본의 권력 핵심부는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다. 오직 승전국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천황제 국체를 유지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천황의 지위는 포기하였으나, ‘상징천황제’라고 불리우는 천황제 국가의 골격은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책임의 최고책임자로서의 천황을 그 책임을 묻는 논의에서 비켜가도록 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새 헌법을 통해 국민의 자유, 평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에서 전후 민주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서정민, 『한일 기독교 관계사 연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158.
일본기독교 또한 전쟁책임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일본기독교가 전시 하에서 소극적이었던지, 적극적이었던지 간에 전쟁동원에 깊이 참여하고, 파시즘에 협력한 이상 그 존재양식에 대한 점검을 기한다는 일은 필수적인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전후 초기 일본기독교의 반응은 변명의 논리가 주된 것이었다. 나아가, ‘천황제’에 대한 일본기독교계의 의식도 초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이 무렵의 일본기독교계 주장 중에는 군부에 의해 천황도, 일본국민들도, 그리고 기독교인들도 모두 희생을 입은 피해당사자라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즉 모든 책임을 군부로 돌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서정민, 『한일 기독교 관계사 연구』, 159.
전후 5, 6년간은 일본에서 기독교 붐이 일어났다. 미점령군은 기독교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했으며, 일본 지배층도 미국의 뜻에 맞추어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민중은 패전으로 인해 허탈감과 해방감이 엇갈리는 가운데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으며, 어느 정도 기독교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되어 교회를 찾아나섰다. 이러한 정세에 대응하여 일본기독교단은 제3회 임시총회(1946. 6)에서 “신일본건설 기독교운동”을 결의하였다. 여기에서 “전일본을 그리스도에게”란 표어를 내걸고 3백만명 구령을 목표로 정하고, 1946년부터 3년간 이 운동을 진행하였다.. 도히 아키오, 『일본기독교사』김수진 역, (서울: 기독교문사, 1991), 403.
이 총회에서, 최초로 전시하의 일에 대한 반성의 의도가 나타났다. 이른바 “신일본건설을 위한 기독교 운동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 중에는 “우리 일본국민은 이번 전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평화의 복음을 신봉하는 기독교인으로서는 더욱 심각한 반성과 회개를 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정민, 『일본기독교의 한국인식』, 299-300.
이 성명은 표어에 지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영국과 미국 격멸, 본토 결전 사수를 부르짖던 교단이 실은 평화의 복음을 신봉해 왔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신용받기 어려운 표어였다. 교단은 비판과 변혁 대신에, 점령군에 의해 말하여진 비군사화, 민주화 정책에 재빨리 편승하였다. 도히 아키오, 『일본기독교의 사론적 이해』, 서정민 역(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 311.
이 ‘선언’의 문제점은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를 위한 구체적인 책임문제나 신학적 갱신, 사회적 책임의 실현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정민, 『한일 기독교 관계사 연구』, 160.
자료평가
  • 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자료평가0
  • 잘 정리되었습니다.
  • 6883***
    (2021.06.22 23:26:25)
회원 추천자료
  • 한국의 종교의 종류와 특징
  • 현재 종교라는 말은 불교 , 기독교, 유교 등의 개별 종교들을 총칭하는 유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에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 된것이다 . 그러나 원래 종교는 부처의 근본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다. 북송의 영명선사 연수가 쓴 종경록 100권. 대승불교의 경론 60부와 중국인도의 성현 300인의 저서를 비롯해 선승(禪僧)의 어록계율서속서 등을 널리 인용 방증했다. 그 내용상의

  • [기독교와이슬람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비교 분석
  • 전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등 양적으로도 신약성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질적으로도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바울의 신학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 교회에 거대한 영향을 주어 왔다.1. 고대의 기독교바울과 신도들의 선교로 기독교는 지리적으로 국한된 팔레스틴의 테두리와 유대교적인 전통의 제약을 벗어나 당시 서구를 통치하던 로마제국으로 진출하였다. 따라서 새 터에 싹트는 교회는 어느덧 그 제국을 형성한 성시 중심인 제

  • [기독교] 한국 개신교
  • 기독교 박해로 규정하고 그 허위성과 부당성을 알리는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였고, 105인 사건은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3. 기독교 내부의 몇몇 변화들이를 계기로 기독교계 내부에서 기독교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미국의 힘에 기대어 독립을 이루려는 외교독립론이 이승만과 함께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고, 더불어 비록 일제 무단통치 하에서 제대로 실천에 옮기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안창호 중심의 점진적 문화계몽론 역시 새롭게 모색되고 있

  • [종교학]기독교 사관에 대하여
  • 기독교 사관에 대한 개념에 대하여, 여러 사관이 있고 그 중에 기독교 사관과 가장 많이 상치되는 유물사관에 대하여, 중세 기독교 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라 말할 수 있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으로서의 의견과 그렇지 않은 의견의 비교, 한국 교회사에 대한 비교 등으로 그 본문의 내용을 잡기로 하였다. 이런 모임이 계속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들은 정말 편파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기독교 사관을

  • [기독교][그리스도교]기독교(그리스도교)철학,접촉점,십계명, 기독교(그리스도교)역사이해,종교개혁,소설,유적 분석
  • 기독교의 산물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예수의 영향력이 지리적으로 확장됨에 따라서 기독교가 주장하는 변화의 능력이 실제로 발휘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많은 결과가 발생했다.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기독교 조직이 점점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영속화시키며, 기독교 복음의 본질인 자기 희생과 교제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사건이 집합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