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방법론] 한국교회사 서술에 있어서의 친일의 문제(친일 문제에 대한 역사서술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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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교회사 서술에 있어서의 친일의 문제
- 친일 문제에 대한 역사서술 사례를 중심으로 -
여는 글
한국교회사의 서술에 있어서 ‘사관’(史觀)의 문제는 유독 기독교 선교와 전개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 혹은 그 선교의 전개 방식에 대한 관심에 집중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사의 굴레 속에서 전개된 ‘한국교회사’ 혹은 ‘한국기독교사’를 바라 볼 때, 우리는 지난 일제 식민시기의 청산과 해방공간에서의 좌·우 갈등, 6.25 전쟁의 비극과 반공주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의 갈등과 통합의 역사를, 교회사 서술 안에서 좋든 싫든 녹여내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과 의무 앞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서술의 예민한 이슈들은 아직까지도 좌우 이념 갈등의 양상 아래 놓여 있다. 역사가도 시대의 산물인 이념적 편 가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좌’든 ‘우’든 ‘중간’이든 - 물론 중간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 자기 나름의 입장 속에서 역사를 조망하고 서술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념의 문제가 그동안 교회사 서술 속에서는 어떻게 회피, 혹은 표현되었는지를 ‘친일(親日)문제’라는 예민한 주제어로 탐색해 보고자 한다.
1. 左右 개념의 혼동과 재설정
흔히 左右의 이념을 논할 때, 그 기준점과 개념설정에는 많은 혼란이 따른다. 구라파의 그것과 아시아의 그것이 상이할진데, 우리가 지금 좌우를 논하는 모든 논쟁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기준점을 설정하고 출발한다면 결코 유익한 토론과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의 역사 청산의 문제는 늘 한국의 과거사 청산문제의 참고서, 혹은 모델로 제시되어 왔다. 그리고 유럽에서와 같은 전후 역사 청산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한국의 상황은 아직까지도 한국사회(한국교회)내에서의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할 개념이 있다. 서구 유럽에서의 역사 청산의 주역은 우파의 몫 물론 ‘나치즘’도 이러한 우파적 입장에서 ‘민족주의’를 활용한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었다. 우파의 역사청산의 명분은 물론 ‘민족주의’에서 창출되었다. 물론 서구사회에서 좌파는 ‘민족’의 개념보다는 ‘계급과 분배’와 ‘인권’의 문제에 천착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도 구라파라는 지정학적 한계 안에서만 주로 인정,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피식민 지배를 경험했던 제 3세계에서의 ‘민족’ 개념은 좌파적 경향성과 결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민족주의’는 2차대전 이전과 전쟁기간, 또 이후에 타올랐던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과정을 통해 좌파와 결합했다.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우던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다르지 않은 개념으로 수용되었다. 피식민지민들에 ‘민족’이란 제국주의의 침략과 착취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대다수 농민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도시상공인, 빈민, 학생, 여성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이들에게 ‘민족’은 어떤 ‘고난받는 민중상’으로 포착되고, 따라서 이들의 전략은 식민지 현실의 지양과 해방의 쟁취가 되었다. 바로 그러한 ‘민족해방운동’의 과정에서 ‘민족’의 개념은 형성되었다.
이러한 이중구조 속에 놓인 한국의 경우, 결국 해방 직후의 역사청산이라는 과제는 서구에서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놓여 있었다. 미군정의 수립과 함께 그 실체가 용인된 친일세력은 숙청과 처벌을 피할 수 있었고, 기존에 누리던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6.25 전쟁’의 경험은 이들에게 ‘반공주의’라는 새로운 ‘정치논리’와 ‘면죄부’의 창출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그 반공‘의 기치는 최근의 현대사에까지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아갔다.
결국 역사청산이라는 마침표와 새로운 출발선을 상실한 한국현대사는, 이전에 구라파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두 유형의 ‘민족주의’의 공존을 가능케 했다. 바로 ‘우파적 민족주의’ “최근에 이르러 남·북 문제에서 세계 생존 보다는 민족 생존이란 변수에 훨씬 더 가깝게 견인되어 가는 인상을 주는 것은 북한의 전략적 ’우리 민족끼리‘라는 감상적 슬로건 때문이다. ’민족‘의 문제가 우리 대한민국 생존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까지 동요시키는 듯한 인상은 짙다. 이런 정황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있어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관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세계 공동체와 하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세계의 기대를 저 뒤에 두고 ’우리 민족끼리‘의 명분으로 북핵사태의 위협 속에서 남북의 접근과 화해 그리고 마침내 그 통일을 지향할 것인가. 이런 것이 우리 사회의 운명적인 결단의 문제로 떠올라 억누르고 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지만, 이런 민족문제가 사실은 민중문제 만큼 우리 사회를 양분시키고 있다는 현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른바 보수·진보의 문제이다. 보수는 민주주의 쪽이고 진보는 민족주의 쪽이다. 보수는 세계주의 쪽이고, 진보는 내향(內向)주의 쪽이다.” 민경배,『교회와 민족』,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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