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영화의 관점에서 본 매치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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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영화의 관점에서 본 매치포인트
「매치 포인트(Match Point, 2005)」를 내가 처음 시도해보는 영화 장르 분석의 대상으로 망설임 없이 선택한 것은 단순한 흥미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우디 알렌이 감독했다는 이유만으로 흥미를 가지고 영화관에 가서 매치 포인트를 보고 나오면서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도대체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멜로영화 같기도 하고, 범죄영화 같기도 했다. 물론 영화 장르에 관해서 구체적인 지식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남들도 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단편적인 장르 구분으로 적용시켜 본다고 하더라도 딱히 어떤 장르라고 정의내리기 참 힘든 영화였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 영화의 장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곳에는 매치포인트의 장르에 대해서 드라마, 스릴러, 범죄, 멜로, 애정, 로맨스, 느와르라고 적혀있었다. 애초부터 많은 장르가 뒤섞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SF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장르가 다 들어있는 것 같은 이런 장르 소개에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매치 포인트의 장르를 분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 영화를 지금부터 중심적으로 설명하려는 그 장르 하나만으로 묶어버리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많은 다른 영화들 역시 오직 하나의 장르 문법만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하나의 장르적 관점을 가지고 영화를 바라보다 보면, 지금처럼 이것저것 뒤섞인 상태가 아니라 한결 깔끔한 상태로 영화를 머릿속에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매치 포인트를 느와르 영화의 관점에서 분석해보기로 했다.
느와르 영화라고 했을 때, 흔히들 생각하는 이미지는 피와 폭력이 난무하고 인물들이 총이나 칼을 소지하고 다루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거친 느낌의 어두운 영화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남녀의 애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이 영화에서 느와르적인 요소를 찾아본다는 것은 조금 어색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느와르 영화는 어두운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 소재에 거칠고 폭력적인 남자들의 세계, 그것을 보조해주는 팜프파탈적 여성이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모든 폭력은 대부분 어긋난 욕망에서 시작된다. 느와르 영화가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어긋난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서로 속고 속이는 거짓으로 포장될 수도 있고, 싸우고 죽이는 폭력으로 포장될 수도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바로잡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포장되든 아름답게 묘사될 수는 없다. 다만 느와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포장 되었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어긋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표현 방식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표현 방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느와르 영화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는 내 생각이다. 인물들의 어두운 심리를 보여주려고 하고, 따라서 영상이나 음악 또한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그것이 바로 느와르 영화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치 포인트에서 보여주는 남녀의 애정은 단순히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있는 보통의 순수한 애정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영화 안에서 중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그 이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들의 욕망이 보다 더 부각될 수 있도록 하나의 수단이 되고 도구가 되는 것일 뿐이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누군가 선량함보다 운이 낫다면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다. 불쾌하리만큼 인생은 대부분 운에 좌우된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면 미칠 지경이다. 시합에서 공이 네트를 건드리는 찰나, 공은 넘어갈 수도 그냥 떨어질 수도 있다. 운만 좋으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은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다.’라는 주제를 함축하는 나레이션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 영화를 애정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느와르 영화에서 보여주는 욕망이 매치 포인트 안에서는 애정관계에 얽히고 섥혀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느와르 영화는 갱스터, 스릴러를 비롯한 영화들과 함께 범죄 영화의 하나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 의하면 그 범죄 영화들 사이에서 스릴러 영화와 느와르 영화를 헷갈릴 염려가 있지만 두 영화 가장 큰 차이점을 두고 분리할 수 있다. 스릴러 영화에서는 범인을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지지만 느와르 영화에서는 범인을 밝히는 것보다 캐릭터들에게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범인의 정체성과 심리상태 등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것은 앞에서 나름대로 느와르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인물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안에서 범죄라고 할 만한 장면은 남자 주인공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여자 주인공 노라(스칼렛 요한슨)를 죽이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크리스의 심리로, 노라를 죽이기까지의 상황과 죽이고 난 뒤의 상황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져서 가장 중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라의 살해는 크리스가 선택한 최악의 방법이라고만 단순하게 치부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분상승의 욕심을 가지고 어떻게든 그 세계에 안정되게 편입해 있으려는 크리스의 욕망이 가장 폭발적으로 집대성되어있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크리스의 말과 행동 묘사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하게 묘사되는 화면과 배경음악 아리아도 그의 비뚤어진 욕망을 드러내는데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매치포인트를 느와르 영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 ‘미국영화 미국문화’에서는 느와르 영화에 관해 장르, 시리즈, 양태 각각의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장르로서의 느와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관객과 역사가들은 관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능력에서 그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영화 관행의 한 가지 양태로 느와르를 보고 있지만 느와르 영화가 정확하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다고 말한다. 최근 많은 학자들은 느와르를 특정 이코노그라피, 고정된 캐릭터 타입, 예측 가능한 서사 패턴의 관점에서 그것을 논의하면서 하나의 장르로 취급한다. 장르로 보는 이들에게 느와르 영화는 잘 정의된 관행과 시스템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비평가들은 느와르의 독특한 스타일을 인정한다. 매치 포인트 역시 느와르적인 일련의 관행에 적용시킬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우선 영화의 화면은 대부분의 느와르 영화가 그렇듯 거의 무채색으로 이루어져있다. 배경이 되고있는 영국 런던이라는 도시의 분위기는 물론 그 안에서 등장하는 성, 정원, 미술관 모두 어두운 느낌을 준다. 종종 레스토랑이나 오페라 극장 안에서 온통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여서 클로즈업되는 크리스의 얼굴과 배경은 영화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또한 신분 상승을 꿈꾸면서 제법 의도적으로 인생을 펼쳐나가는 크리스의 모습은 우리가 충분히 기대하는 캐릭터이다. 고작 테니스 강사지만 큰 성공을 꿈꾸는 남자가 부잣집 여자를 통해 어떻게 욕망을 실현해 나갈지는 대략 예상해볼 수 있다. 오페라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강습생 탐에게 오페라 공연을 초대받고, 도스토예프스키를 논할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유한 그의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호감을 보이는 탐의 여동생과 사랑을 하는 수순을 밟는 것은 크리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캐릭터의 정체성에서 어긋나지 않는 모습이다. 그리고 노라의 매력에 끌리지만 겨우 얻어낸 사회적 지위를 놓칠 수 없기에 클로이를 절대 버릴 수 없는 크리스의 생활에 대해 서사패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역시 추측할 수 있다. 노라는 크리스에게 클로이와 이혼할 것을 요구하고 크리스는 자신의 삶을 위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노라 앞에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계속 반복되는 노라의 강한 요구와 크리스의 회피는 그들이 어떤 결말로 향해 갈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가능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크리스의 욕망은 높은 신분 상승으로 진입해서 안정적이고 멋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느와르 영화로서의 일련의 관행을 쫒아가고 있는 매치 포인트는 여기에 덧붙여 느와르만의 독특한 스타일, 그것이 어둡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관행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어두운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창출되고 있다.
둘째로 시리즈로서의 느와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느와르 영화가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시리즈 혹은 사이클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하나의 미적 운동으로 본다고 한다. 느와르 영화의 특정 캐릭터, 서사적 상황, 주제적 관심이 거듭해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관행을 거부하고 기대와 어긋나게 진행된다. 게다가 장르 비평가들은 느와르 영화가 전통 장르의 체제적 신분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르로서 느와르의 정체성에 관한 찬반 입장은 둘 다 유효성이 있다. 장르 영화처럼 모든 느와르 영화는 눈에 띄는 캐릭터 타입과 관행화된 서사 패턴에 어느 정도 의존한다. 그러나 느와르 영화에서 장르적인 요소가 바로 느와르가 아닌 요소라는 점도 분명하다. 느와르 영화의 정체성의 문제는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정신 분열증적인 특성에서 기인한다. 느와르 영화는 장르가 아니지만 모든 느와르 영화는 또한 장르 영화이다. 다시 말하자면 느와르 영화에서 발견되는 관행과 기대 체계는 이들 영화가 속한 여러 장르의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을 느와르로 만드는 것은 이들이 특정 장르에 대해 공통적으로 취하는 장르 초월적인 태도이다. 느와르 영화에 등장하는 특정 요소들이 관행을 거부하고 기대와 어긋나게 진행된다는 대목에서 특히 매치 포인트를 적용해볼 수 있다. 크리스는 노라를 죽이면서 알리바이를 위해 앞집 아주머니를 함께 죽이며 패물과 약병을 훔쳤다. 나중에 그 패물들을 강에 버리면서 마지막으로 반지를 던진다. 그런데 그 반지는 강가 울타리에 걸려서 강물로 떨어지지 못하고 도로에 떨어진다. 이것은 영화의 제목과 함께 주제를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매치 포인트는 배구·테니스·탁구·배드민턴 등의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한 포인트를 말한다. 그리고 영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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