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정체성, 그 환상에 관해서 - 민족 정체성 견해 - 민족 정체성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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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정체성, 그 환상에 관해서
2002년 월드컵.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국가대표팀의 활약으로 우리 모두는 태극기를 들고 연신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거리를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이제껏 쌓여왔었던 수많은 반목과 갈등이 “대한민국” 이라는 함성에 묻혀 버렸었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함과 뿌듯함이 느껴졌었다. 이와같이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 라는 강한 민족 정체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2007.4.17 MBC PD수첩에서는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던 한국학생들의 무분별한 탈선과 현지 여성과의 성관계를 통해 낳은 혼혈아 문제를 심층 보도했다. 필리핀에 남겨진 혼혈아들을 보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지만 그 아이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우리는 필리핀 혼혈아들 에게는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두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에게는 ‘민족 정체성’을 인지할 수 있는 어떠한 판단 기준이 내제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판단 기준이 우리에게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민족 정체성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자.
민족 정체성은 우리가 단일 민족이며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고대 국가의 성립과정에서 선진 외래 집단이 소수의 토착 집단을 흡수, 통합하였고 또 중국의 성씨가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걸로 봐서는 우리 민족이 순수 혈통으로만 이루어 졌다고 정의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체 순수혈통만을 중요시 하는 것인가? 아마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를 철저히 배제하고 다수 중심으로 세상을 좀 더 수월하게 지배하겠다는 지배층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현재 우리가 느끼는 민족 정체성은 매우 이중적이다. 중국 연변에 거주하는 조선족과 일본 조총련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같은 핏줄이다. 하지만 그토록 순수 혈통만을 고집하던 우리는 그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차별한다. 반면에 한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어느 유명한 미국 미식축구 선수가 대회 MVP 상을 수상 하였고 그가 한국 혼혈아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우리 모두는 그를 성공한 한인으로 추켜세우며 자랑스러워 했다. 이렇게만 본다면 생물학적으로는 다소 애매하더라도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한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아무 손색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매우 세속적인 이기심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다.
한편, 과거 외세가 침략했을 때 우리 선조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고 우리는 항상 본받아야 한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철저한 계급중심의 사회에서 기득권층의 수탈 대상이었던 대다수의 농민들이 어떠한 이유로 민족과 국가를 위해 총, 칼을 들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과 수대를 이어온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어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의병운동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선조들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 하였으니 마치 너희들도 마땅히 본받고 따라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후세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억지일 뿐이다.
위와같은 근거들을 종합해보면 민족 정체성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거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가 국난에 닥쳤을 때 민족주의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였고 국난을 극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대다수의 민(民)에 의한 자발적 인식이라기 보다는 지배층에 의해 주입된 인식이라는 점이다. 즉 지배층은 국난으로 인해 그들의 기득권 존립 자체에 위협을 느꼈고 기득권 유지를 위한 사회통합 방법으로 강압적 수단 대신 감정에 호소하는 민족주의라는 훌륭한 도구를 이용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엄청난 효과를 맛보았다. 최근의 반공 이데올로기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민족 정체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 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해외로 피신하겠다고 응답을 하였다고 한다. 이는 이제까지 개인과 집단의 행동을 통제해 왔던 조작된 민족 정체성이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고 인터넷, 미디어 등의 매체를 통해 개인주의의 이념이 확산되어 ‘우리’ 혹은 ‘민족’ 이라는 환상이 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국경과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초국가적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국가 간 상호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민족에 기댄 애국심은 오히려 국가 경쟁력 약화와 고립을 자초할 것이다. 앞으로는 모든 세계인을 아우르는 -인류애, 반전, 사랑, 인권 등- 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널리 확산 될 것이다. 여기에 맞추어 우리도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민족 정체성을 좁은 한반도에서 벗어나 모든 세계인이 우리 민족이라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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