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선교의 역사 제6장 로마 카톨릭의 선교 1600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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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6장 로마 카톨릭의 선교 (1600-1787)
1. 개략적인 선교 상황의 이해
17세기의 경우 16세기와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에 있어서 세계선교의 모험의 일대기였으나, 본질적으로 개척적이었고 모험적이었던 16세기와 비교해서 대등할 수가 없을 것이다. 두 세기의 큰 차이점은 선교부의 조직과 또 일선 선교부와 유럽의 본부와의 관계에 나타난 급격한 변화에 있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16세기의 선교의 주도권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왕들과 대 종단들이-예수회가 주도적이었으나, 그 뒤를 프란체스코회, 도미니쿠스회가 뒤따름-장악을 하고 있었다. 이것의 이점은 1)선교사들이 왕권의 보호를 받았고, 2)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박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었다. 3)어느 정도 경제적인 후원이 있어서 대체로 풍족했고, 4)종단들의 경쟁심은 활동적이고 독립적인 활동을 진작시켰다.
반면에, 단점은 1)정치적인 연관성으로 인해 선교사들의 세속적인 관심과 무역관계에 까지 깊숙이 관여를 하게 되었고, 2)종단 상호간의 경쟁이 너무 경건하지 못한 경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본문 p.220 , 일본의 프란체스코회와 예수회의 수도사들의 상호 비방의 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교적인 제휴는 실제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세계의 적은 부분만이 선교적인 지원에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또, 북유럽의 선교사들이 전혀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라틴족 출신이었다. 선교사업이 성장함에 따라 그들의 부담은 무거워져 갔고, 당시에 포르투갈은 그 국력이 기울어지고 있었고, 파이로아도의 계획(Padroado scheme) 15세기 교황에 의하여 세력권을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양분하면서 사용된 편의상의 용어.
에 의한 의무는 간단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감독교구들이 몇 개가 창설이 되었으나, 고아(Goa)같은 튼 대감독 교구도 감독이 상주한 시간보다 부재한 시간이 많았다.
로마는 자신들이 개입할 때라고 느꼈고, 선교 사업에 있어서 중앙권력의 직접적인 지시와 지도를 받아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1622년, 교황그레고리우스 15세가 포교(Propaganda, 선전)로 불리는 “포교성성(布敎聖省, Sacred Congregation for the Propogation of the Faith)”결성을 조치로 내세웠다. 본문 p.221 참고 , “주후 1622년 1월 6일 하나님의 섭리로 교황이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거룩한 아버지가 되시는 그레고리우스 15세는 목자로서의 그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를 숭배토록 하는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13명의 추기경과 한명의 서기를 포함한 두 명의 수도원장으로 ‘성성(聖省, Congregation)을 구성하고 포교에 대한 제반 임무를 위임하였다.”
초기 포교성성의 여러 가지 정신이 있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을 해 봐야할 점은 예언자적 성질, 곧 선교에 있어서 그들의 관습이나 전통이 나쁘고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할지라도 서서히 하도록 하고, 어떤 직접적인 정죄나 공격보다는 오직 믿음만을 소개함으로 그들 스스로가 그 습관 속에 악한 요소를 발견하도록 도우는 편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 p.222-223 참고,
또, 세계 모든 지역에서는 가급적 토착 성직자를 양성을 하여야 하고, 기독교 신앙이 외국의 종교로 식민지적인 연상으로 부터의 빠져나와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로마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663년 파리에 외국선교협회(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의 신학교를 개학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몰락에 이어 프랑스가 첨차 대 로마 카톨릭의 선교국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을 한다. 예수회가 억압을 받자 선교에 있어서 교구사제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그 의도는 일차적으로 이방 선교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일이고, 성직에 대한 개념을 나라마다 수립해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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