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락논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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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호락논쟁의 사상적 기반
1. 김창협
2. 권상하

Ⅲ.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1. 인물성동론
2. 인물성이론

Ⅳ. 외암과 남당의 미발심론(未發心論)
1. 미발심체순선론
2. 미발기질유선악론

Ⅴ. 성범심동이론(聖凡心同異論)
1. 성범심동론
2. 성범심이론

Ⅵ. 결론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1. 호락논쟁의 배경
호락논쟁(湖洛論爭)은 18세기 중, 후반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사학(史學)계의 의견을 참고하면 호락논쟁의 맹아(萌芽)가 이미 양란 이후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락논쟁이 기호학파(畿湖學派), 정치적으로는 노론(老論) 내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율곡(栗谷) 이이(李珥)로부터 이어진 김장생-송시열-권상하 계통을 이어받는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 간 사상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단순히 당대의 상황만 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그 시발점을 알아보기 위해 기호학파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호학파는 다양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공통의 목적을 지녔을 때와 달리 정권을 잡고 난 이후 그 지역적, 정치적 색채의 차이로 인한 분화는 필연적이었다. 따라서 인조 반정 이후 안정적인 서인-남인 연립 정권이 형성된 이후 서울, 경기 지역의 서인과 호서 지역의 서인은 그 행보를 달리 하기 시작한다. 중앙 정치에 민감하였던 서울, 경기 지역과 달리 호서 지역은 점차 산림적(山林的) 성격을 갖추게 되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수도와 거리가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되어진다.

이러한 정치적 분화는 시간은 흐름에 따라 사상적 분화로 이어진다. 서울, 경기 지역은 정국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국가 운영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경세치학의 비중을 키웠다. 이 와중에 남인, 몰락한 북인, 잔존한 훈구파 등 다양한 정치세력의 합류로 학문의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는데, 화담학파가 연구하던 소옹(邵雍) 상수학(象數學)이나 역학, 잡학 등 국정 운영에 필요한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다. 더불어 서인-남인 연립정권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했기 때문에 퇴계 이황의 학문과 율곡의 학문이 활발한 교류를 통해 융합되는 면모를 보였다. 이는 후에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의 이론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던 김창협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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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상(2008). “人物性 同論의 근대적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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