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역사인식과 역사학 -주체사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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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북한 역사학의 시기별 동향
1-1 시기별 동향
1-2 조선민족제일주의
2. 주체사관
2-1 유물사관
2-2 주체사관
2-3 변증법적 유물론과 주체사관의 비교
3. 역사교과서 속의 주체사관
3-1 기본적 관점의 차이
3-2 등장인물의 차이
3-3 지도자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
3-4 민족 문화유산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1. 기초숙성기 1945년 해방 ~ 한국전쟁

해방 직후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역량 연구시설 기초자료 등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해방이 되자 북한은 역사 연구와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
변증법적 유물론을 지도사관으로 받아들임
‘조선력사편찬위원회’를 중심으로 북한 역사학의 기초를 다진 시기
1949년 초 내각수상 김일성이 지시한 ‘6대 기본과업’
1. 조선역사를 편찬하는 이론적 근거는 과학적 세계관에 근거할 것
2. 식민사학 및 부르주아사학의 잔재를 청산할 것
3. 사회적 생산력의 생성 발전 및 전변관계를 구명할 것
4. 1949년 3월 말 까지 최근 세사, 12월 말 까지 개괄적인 간이 통사를 공간할 것
5. 국내외 자료를 수집할 것
6. 역사학계의 기관지로 력사제문제를 출간할 것


2. 체계적 정립기 한국전쟁~1960년대 후반

정치 사상적으로 격동의 시기.
3 시기로 구분 가능 – 한국전쟁( 1950~53) , 전후 복구 및 사회주의 기초 건설기(53~61),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기 (61이후)
1950년대 후반 종파문제와 사상투쟁, 대논쟁 (8월 종파사건, 반종파투쟁)
학계의 중요한 논점 정리, 세대교체를 가져옴 : 최창익, 이청원 등 숙청, 북한정권 수립 후 성장한 신세대의 등장
종파 문제로 인한 조선노동당 및 역사학계의 사상투쟁과 숙청사업은 1958년 11월 당대표자대회로 중간 정리됨. 1961년 조선노동당 4차 대회에서 해결
김일성 계열로 확고해지고 당의 지도이념도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원리에 덧붙여 북한 사회의 주체적 기준으로 ‘항일무장투쟁의 혁명 전통’이 결합함


이 시기 북한 역사학계의 목표 : 과학발전 10개년 전망 계획 (1959년 완성)
역사학계가 화력을 집중해야 할 4대 연구 분야
1.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사회주의 건설
2. 조선인민의 혁명 전통 및 애국 전통
3. 우리나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
4. 민족문화
-> 이 시기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활동은 상당히 활발하였고 대부분의 연구성과과 위의 4대 연구분야에 집중됨. 특히 주체확립과 관련된 혁명전통 연구가 가장 활동적.
1961년 『조선근대혁명운동사』 : 반종파투쟁 결산
1962년 『조선통사』 개정, 우리나라 역사를 전반적으로 다시 체계화
지도사관 : 맑스 레닌주의
조선력사연구소, 당력사 연구실로 연구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함
조선력사연구소는 력사연구소로 편입, 이후 1964년 조선사회과학원이 조직


지도사관 : 맑스 레닌주의
조선력사연구소, 당력사 연구실로 연구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함
조선력사연구소는 력사연구소로 편입, 이후 1964년 조선사회과학원이 조직
-> 총 9개의 연구소 (력사연구소, 고전연구소,고고학민속학연구소, 경제연구소,법학연구소,언어학연구소,문학연구소,주체사상연구소 등)
력사연구소 : 조선역사연구소,고대사,중세사,근대사,현대사,김일성혁명력사실 등 6개 연구실로 확대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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