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의 문화정책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1.01.19 / 2019.12.24
  • 9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2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목 차







Ⅰ머리말

Ⅱ 박정희 정권의 문화정책

1. 언론


1) 군사정권에 의한 매스미디어 체제의 형성과 성장(매스미디어 보급)

2)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통제
① 개입

② 통제

2. 금지곡과 청년문화

1) 금지곡

2) 청년문화

3. 전통문화정책

1) 문화유산정책

▶ 문제점과 의도

2) 주체적 한국 사관의 정립

3) 역사적 위인의 신격화(이순신)

▶ 의도

3) 태권도 진흥정책

▶ 의도

Ⅲ 맺는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② 통제
61년 5월23일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기관 정화’를 앞세워 언론사를 통폐합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군사정변을 정당화(미화)하기위한 방편으로써 언론을 장악하였고 이와 더불어 경제성장을 과제로 내세우며 미국의 지지를 위해서 철저한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 쿠데타 직후 통일과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언론활동을 하던 민족일보를 강제폐간 하였고, 이 신문사 사장인 조용수씨를 "조총련계의 자금을 끌어들여 창간해 이북괴뢰집단의 주장에 동조하는 논조를 폈다"라는 이유로 사형시켰다.
또한 군사정부는 언론인의 취재원 접근을 봉쇄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제한하였고 「반공법」, 「신문・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1963. 12. 12 제정)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였으며 정부가 언론의 등록, 취소 또는 발행정지처분을 할 수 있게 했다. 정부는 인간화・민주화・진리화・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체계는 뒤로 했다. 군사 정부는 언론에게 최소한의 자유만을 허용했다. 결국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지만, 정부의 권력은 엄청나게 팽창한 것으로 보였다.
1964년에는 여당 단독으로 가결시킨「언론윤리위원회법」을 만들어 공포하였다. 이것은 언론의 책임을 자유 앞에 내세워 언론을 탄압하였다. 기자들은 불법적으로 가결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철폐시키고 언론의 자유를 외치기 위해 단합하여 박정희 정권에 맞섰으나 박정희정권은 이를 갖은 방법으로 회유하였다. 이로서 박정희의 회유에 넘어간 언론들은 박정희 정권을 옹호하는 언론활동만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어떤 신문은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1970년 5월 초경에는 국가이익, 통신사 간의 과다경쟁 해소, 뉴스 공급 창구의 단일화 등의 원칙으로 동양, 합동, 동화 등 통신 3사의 통합을 추진하여 또 다시 언론사 정비에 나섰다. 또한 지방지의 통폐합, ‘사이비기자 일소’・‘과다경쟁’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1971년 11월 18일 지방지의 통폐합을 시도했다. 또한 1975년 5월 13일 긴급조치 제9호를 발동하여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10・26까지 긴급조치 통치를 계속하였다.


2. 금지곡과 청년문화

참고문헌
Ⅳ 참고문헌
『한국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1』,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2
『한국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2』,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2
『한국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3』,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2
「박정희 정부와 언론기관들」,『박정희 시대와 한국현대사 : 연구자와 체험자의 대화』, 정성화・강규형, 선인, 2007
『실록 군인 박정희』, 정운현, 개마고원, 2004
『박정희의 사상과 행동』, 최영, 현음사, 1995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조희연, 역사비평사, 2007
『우리는 지난 100년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비평사, 1998
「동원된 민족주의와 전통문화정책」, 『박정희를 넘어서』, 한국정치연구회 편, 푸른숲, 1998
박정희 알려면 그를 벗겨라, 김현미기자, 주간동아, 2001년 05월 24일(285호), 94~95쪽
[문화정책] 권위의 벨트, 문화를 조이다, 김수병기자, 한겨레21, 2005년 02월 02일 제546호
박정희 대통령 인터넷 기념관
URL: http://www.516.co.kr/client/news/nw_viw.asp?idx=5367&b_cate=1&m_cate=5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jsessionid=1DF8E54D9C39C4B1CDFB53C40DE06BB9?id=005646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모더니즘과 한국적 디자인 1960 1970
  • 박정희 문화정책의 핵심과 관련된다.한국적 디자인 한국적 건축 한국적 모더니즘 한국적 추상 등과 같은 일련의 문화예술계의 움직임은 정부 주도로 진행된 민족주의 미화 과정의 일환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프로파간다의 속성을 띤 것이었다.당시의 디자인 양상을 파악하는 데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는 김교만이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냈던 디자이너로 96년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 1백인 중에서 1위로 선정

  • [정치학] 인권의 철학적 시각과 중국의 인권상황
  • 문화적 차이란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정권이 조장하는 것이므로 인권운동단체와 정부간의 쟁점이 아니라 정부와 그 국민간의 쟁점이다. 문명의 충돌론여러 문명간에 존재하는 차이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양자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차별화하는 태도를 문제 삼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 근래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이 지닌 한계의 일면은 인권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설명에

  •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TV 음악프로그램의 역사
  • 박정희 정권의 권위적 문화정책 가요 프로그램 크게 위축. 건전가요 활성기 강력한 정부주도의 경제드라이브가 필요했던 시점. 국가의 규제가 음악방송프로그램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침. 1970년대음악프로그램의 시작기음악프로그램3컬러TV의 도입 프로그램 영역의 확대와 다양화.음악프로그램의 시작에서 발전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 화려하고 세련된 구성여러 가지 쇼 형식과 결합된 음악프로그램이 유행댄스음악이 본격화. 립싱

  • [1960년대]1960년대의 미술, 1960년대의 한국화, 1960년대의 역사, 1960년대의 문학, 1960년대의 시인, 1960년대 국립극장
  • 문화정책은 국가가 문화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담론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만들어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는 수단이었으며 이러한 일관성 있는 예술 정책의 하나로 국난극복의 역사와 경제 개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의식을 재고시킨다는 미명하에 민족기록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군사적인 행동이라는 물리적인 힘을 빌려 탈취한 정권의 비정통성과 구국이나 호국의 대의 때문에 군사적인

  • [민속극][민속][공연방식][공연][나희][신악][교육론][교육][마당극]민속극의 정의, 민속극의 특징, 민속극의 공연방식, 민속극의 나희, 민속극의 신악, 민속극의 교육론, 민속극과 마당극, 민속극의 연구 분석
  • 문화를 장식하는 민속예술의 하나로서 취급되었다. 이 점은 전통에 대한 60년대의 관심이 ‘민족 연극의 수립’이라는 50년대적 과제를 이어받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 ‘국가의 정통성 확립’과 ‘민족의 단일한 구심점 마련’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전략을 은폐하고 있었던 것과 관련된다. 즉, 고유한 우리 문화를 복원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민속학자, 연극 정체성 확립을 과제로 삼던 연극계, 국민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필요로 한 박정희 정권의 정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