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_아름다운 영웅 김영옥_저자 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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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저자 한우성
자기를 불태워 어둠을 밝힌 촛불
“......이번에 저에게 한국의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심을 무한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훈장은 당시 한국의 최전선에서 함께 피 흘려 싸웠던 모든 한국군 및 미군 장병의 이름으로, 특히 당시 한국을 지키기 위해 귀한 생명을 바친 전몰장병들을 생각하며 받겠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에 미국으로 와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며 살았던 부모 덕분에 평생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군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도 한국에 전쟁이 났을 때 자입대를 자원해 부모의 나라를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제 1장
1943년 연합군은 독일군이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지중해에서 아드리아해까지 설치한 ‘구스타프 라인’을 돌파하는데 실패한 채 새해를 맞이했다. 연합군은 로마를 공략하기 위해 안지오 상륙작전을 강행했다. 작전은 성공이었으나 이후 독일군과 연합군은 장기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연합군의 관심은 독일군이 불러들인 전차사단의 위치였다. 당시 독일 전차는 미국 전차에 비해 월등히 성능이 좋았다. 그런데 연합군은 적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아군의 계속된 작전실패를 보던 영옥은 포로생포작전에 자원했고, 군사령부까지 그 작전을 자살행위로 보며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옥은 구체적인 작전을 수립했고, 극소수의 병력으로 적진에 침투해서 독일군 하사와 일병을 생포했고, 그 덕분에 인종차별로 얻지 못했던 대위진급과 함께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영옥의 작전은 이후 이어진 버팔로 작전으로 이어졌다. 그 버팔로 작전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노르망디 작전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김영옥에게서 두 가지 놀라운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용기와 성실함이다. 미군 중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독일군 포로 생포 작전에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슴에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용기는 동료들의 무고한 희생을 막고자 한 따스한 전우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용기의 근원은 사랑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김영옥에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성실함이다. 성실함과 꼼꼼함이 결여된 용기는 만용일 뿐이다. 그는 작전에 성공하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모으는데 힘썼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작전을 수립해서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었다.
제 2장
영옥은 앞서 말한 태극무공훈장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이, 일제 강점 하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썼던 가난한 한국 이민자의 자녀였다. 아버지는 하와이에 도착해서 사탕수수 밭에서 일했고, 거기서 번 돈으로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했다.
로스앤젤레스 편의점을 인수한 영옥의 부모는 미국에서 영옥을 낳았다. 영옥은 부모의 야채가게와 편의점에서 일을 도우면 살았다. 항상 부지런히 일했지만 그의 가정은 돈에 쪼들렸다. 그 이유는 영옥의 아버지가 돈을 벌어서 독립운동자금으로 동지회에 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장사를 하면서도 야학을 다니며 정확한 영어를 배우는데도 힘썼고, 세계정세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이 해방될 가능성이 없어보이자 영옥의 아버지는 영옥 형제들을 미국시민으로 살도록 교육했다. 이민 생활은 돈 버는 일과 독립운동, 교회 가는 일이 전부였다. 당시 한인사회는 안창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승만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영옥은 미국사회에서 뿌리깊은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옥은 한국인이라는 정체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제의 한인 미국 이민 금지로 한인들은 미국에서 양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영옥은 군입대조차도 아시아계는 받지 않는 미군의 정책 때문에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어렵게 입대한 군대에서 영옥은 유일한 유색인종으로 임관했다. 하지만 일본계 2세로 구성된 100대대로 배치되었다.
나는 김영옥이 미군의 신화가 된 뒤에는 훌륭한 부모님들이 있다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라를 잃고 이민 온 가정의 입장에서 내 가정만 생각하기에 급급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옥의 부모님과 김영옥은 조국을 생각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절제할 줄 안 애국자의 집안이었다.
두 번째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직면하고 도전하면서 이겨낸 일이다. 한국에서도 대령을 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대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대령까지 진급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아니 기적이다. 하지만 그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이었다. 영옥은 유색인종에게 투명지붕을 강조하던 시대에 미국에서 당당히 미국의 전쟁영웅이 된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동안 상황에 대해 불평하면서 거의 모든 것을 외부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보니,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어떤 환경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있음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제 3장 타고난 장교
유럽전선으로 파병된 영옥은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실제 전쟁터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첫 전투에서 평생 후회할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을 몇 번이고 맹세했다. 영옥이 속한 100대대는 자원해서 위험한 임무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런 용기 있는 행동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100대대는 결국 곧 이탈리아에 상륙할 133대대에 소속되었다. 100대대는 치우사노를 향해 출발했고, 영옥의 B중대는 선봉에 섰다. 독일군 전차를 처음으로 대면한 김영옥 소위는 대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을 살리면서 적을 공격할 비책을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계곡을 가로질러 적을 공격하는 일이었다. 중대장인 스즈키 대위는 영옥의 판단을 무시하고 자기가 지시하는 경로로 공격할 것을 명령했지만, 그 명령에 따른 결과 많은 부하들을 잃어야 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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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한우성(2020).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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