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Go 가네시로 가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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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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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작품 : 『Go』
작가 :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
세상에는 숭고한 가치들이 정말 많다. 흔히들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그러한 가치들 중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 소설이 그리웠다. 그래서 한 선배로부터 사랑을 테마로 다루면서도 통속적이지 않은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선배는 어렵지 않게 이 소설 『Go』를 건네주셨다. 사랑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단지 성적이자 자기 본위적 사랑인 에로스적 사랑 말고도 타인 본위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아가페적 사랑도 있으며, 인간 자체를 사랑하는 필리아적 사랑도 있다. 이 세 가지의 사랑이 적절하게 배합된 것을 보고 싶었고, 이에 지금 생각하니 적절한 추천을 받은 듯싶다.
사랑이라는 것의 대상은 참 다양하다. 나라에 대한 사랑은 민족주의(애국심)로 표현이 되고, 이성에 대한 사랑은 연애로 표현이 되고, 친구에 대한 사랑은 우정으로 표현이 되며, 부모에 대한 사랑은 효로 표현이 된다. 또 사랑이라는 것의 방식도 참 다양하다. 차별이라는 테두리를 통해서 뒤틀린 관심을 보내기도 하고,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서 감정을 나누기도 하며, 때로는 대화로써, 때로는 침묵으로써 전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랑의 다양한 대상과 방식이란 면면들이 이 작품에는 잘 나타나있다. 구태여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는 데에는 작품에서 처음에 이 소설이 사랑에 관한, 더 정확히는 연애에 관한 것임을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나 암시하는 바는 비단 연애에 걸친 것만이 아닌 듯하다. 확대해서 말하자면, 사랑에 관한, 그야말로 그 폭과 너비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이 책은 전반적으로 숭고한 가치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시작하고 싶었다.
『Go』는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책은 총 27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며, 2000년도에 출간되었다. 또한 대중성 면에서나 예술성 면에서나 성공한 작품으로 분류되곤 한다. 저자인 가네시로 가즈키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언급하겠지만, 실제로 재일한국인이다. 여기에서 그의 인생이 스기와라라는 주인공에 투영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열성 지지자였으며, 조총련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재일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나오키 문학상>을 거머쥔 인물로서 일본에 한때 성장소설 바람을 몰고 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Go』는 제목만큼 무척 명쾌한 결론을 내고 있는 작품이고, 또 그 시사하는 바도 크다. 감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270쪽 남짓의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여운이 느껴지고,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볼 거리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소설이 독후감에 쓰이기엔 적합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문학작품을 감상할 때, 그 중에서도 소설을 감상할 때 유의해야 할 것들에 관해 지금껏 공부를 해왔다. 인물과 줄거리, 플롯 등 작품의 뼈대를 이해하는데 필히 중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이러한 부분들과 독후감에서의 접점을 찾아서 필요한 부분들만 여과시켜 드러내보았고, 감상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이입이 다소 들어간 동화 파트와 어줍은 수준이지만 장문의 글을 쓰기 위해 단순히 느낌을 전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가지 방향에서 감상(感想), 즉 생각을 하다 보니까 비평과 비슷한 것이 나왔다. 그것을 이성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아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그리하여 거리두기라는 파트가 나왔다. 끝으로 필자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마다 늘상 중시 여기는 것이 주제인데, 그만큼 이 주제를 가지고 본 감상문의 피날레를 장식해보기로 했다.
작품에서 주인공인 스기하라는 재일한국인으로, 고등학교 1학년생일 뿐이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용된’ 군인이었다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초졸 학력에도 불구, 마르크스나 니체를 독학으로 마스터하고 일본에서도 조총련, 즉 사회주의 이념을 따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늘그막에 아버지는 북조선 국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옮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북한 사람이 탈북하기가 그리 쉬운가? 국경선을 넘어야 하고 그러기까지에는 목숨을 건 사투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스기하라의 가족들은 단지 돈을 내기만 하고, 2~3주의 짧은 기간을 기다린 뒤에 국적이 변경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스기하라에게 농담조로 건넨, 하지만 의미심장한 메시지 하나를 건네는데, “국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거야. 네 녀석은 어느 나라 국적을 사고 싶으냐?”라는 것이었다. 국적이라는 것의 무의미성, 인위적 가치에 대한 불신. 이러한 것들이 작품 전체적으로 흐르는 기조를 보인다. 그런데 아버지는 북조선 국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왜 옮겼을까? 아버지에게는 북에 있는 동생도 있고, 조총련 측에는 많은 친구들 또한 있다. 그럼에도 국적을 바꾸는 고생을 사서 한 이유는 아버지에겐 ‘하와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는 하와이라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또 1부 끝날 때 서술자인 스기하라가 내뱉는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난 이 두 가지의 독립적인 언사에 묘한 공통점을 느꼈다. 스기하라에게는 일본이 고향이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어를 다룰 줄 알고 일본 문화에 더 익숙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스기하라가 일본인이라는 점, 다시 말해서 한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일본인이라는 점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하와이란 기실 그런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동양의 하와이를 자처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후에 국적을 거부하게 되지만, 하와이란 어쩌면 그에겐 어떤 국적과도 관련 없는 이상적인 장소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에겐 제주도라는 고향과도 같은, 그에게 있어 본연의 장소일지도 모르는 이중적인 의미를 띤 곳이다, 이처럼 재일한국인이란 민족적 정체성과 실질적 국적간의 괴리를 느껴야 하는 이중적 내셔널리즘의 피해자들이다.
2부에서는 스기하라의 과거와 그로부터 말미암은 그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술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한때 잘나가는 권투선수였던 아버지로부터 권투를 배운 스기하라는 실제로 싸움 면에서는 어디를 가든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그의 그러한 싸움 실력 못지않게 성격 또한 컬컬하여 어디서든 당당하고 떳떳한 풍모를 보여준다. 또 그 성격과 잘 어울리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사쿠라이로 또한 성격이 스기하라처럼 쿨하다. 그 둘은 머지않아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사쿠라이는 사귀면서도 그의 성씨인 사쿠라이만을 밝힐 뿐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름 따윈 어떠냐는 식이다. 작품의 가장 맨 처음에는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의 한 구절이 나온다. 이름이라는 것은 고작 인위적인 개념일 뿐이다. 이것이 작품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국적이라는 인위적인 개념과 선연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마치 내키지 않으면 임의로 바꿀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의 속성처럼 국적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징적 의미를 표출시킨다.
조총련계인 스기하라의 초, 중학교 친구인 정일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공부도 열심히 하여 여간한 일본 아이들보다 더 잘할뿐더러 조선인이라는 국적만 배제한다면 미래에 잠재력을 얼마든지 확보하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정일은 작품 중에서 “우리에게는 국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일본내 조선인 차별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실제로 짧은 나이에 조총련계 여학생이 지하철에서 한 일본인에게 희롱을 당하는 것을 길거리에서 심상하게 지나치지 않고 나서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그가 피가 흐르자 그 여학생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다들 무관심하다. 현대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본 것만 같아 이내 불편한 감정만 머물렀었다.
그토록 친했던 정일이 죽자, 쿨한 성격의 스기하라조차도 몹시 슬퍼한다. 그는 마음껏 울어내 카타르시스적 전율을 가질 수도 없게 교육을 받아온 탓에 우-우-우-우-하며 낮은 신음소리를 낼 뿐이다. 이것이 스기하라의 조의에 대한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스기하라는 여자친구인 사쿠라이와의 관계가 절정에 치닫고, 결국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게 가장 급하고 흥분되던 순간, 그는 그간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고백하게 된다.
“나 실은 일본인 아니야.” 스기하라의 이 발언에 사쿠라이는 자못 당황한다. 사쿠라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한국인과 중국인의 피는 더럽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스기하라는 국적의 초월성에 대해 역설을 하는데, 말하는 것이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요컨대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건 뿌리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뿌리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만약 증조 할아버지가 중국사람의 피가 섞여 있다면 일본 사람이 아니다. ‘사쿠라이’라는 성 또한 그렇다. 원래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에게 붙여진 성이다. 그 사실은 헤이안 시대에 편찬된 『신찬성씨록』에 분명하게 기록돼있다. 술을 못 마시는 유전자는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쿠라이 너의 성씨도 순수한 일본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그런 개념 따위 없었다.” 이 긴 말들에 사쿠라이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정말 힘들다”고 한다. 외국인의 피를 더럽게 생각하는 황국일본의 순혈주의자였던 것이다. 이러면서 사쿠라이는 그간 말하질 못했던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츠바키’. 동백꽃이라는 뜻이다. 사쿠라이는 벚꽃을 의미하므로, 성씨와 이름은 벚꽃과 동백꽃을 의미한다. 사쿠라이는 지나치게 일본적인 색깔이 담긴 자기의 이름이 부담스러워 그동안 말하지 않아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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