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성리학-유학의 부흥과 이단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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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북송 성리학
---유학의 부흥과 이단의 그림자
북송 성리학이 발생한 역사적 배경
당(唐)의 후반기의 안사(安史)의 난 이후에 절도사(節度使), 즉, 지방의 군사령관의 세력은 더욱 증대하여, 약 3백 년 간 계속된 당의 왕조도 907년에 멸망하고, 그 후 약 70년 간의 5대의 어지러운 세상의 나타난다.이것을 [5대]라고 부른 것은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晋).후한(後漢).후주(後周)의 5국 잇달아 흥망하였기 때문이다.물론 황하 유역 이외의 지방에도 남당(南唐)이나 오월(吳越/ 등의 여러 나라가 있었으므로 5개 10국이라고도 불린다.정녕 분열의 시대이며, 전국(戰國) 시대였다.
이 5대 70년 간의 세상은 시대의 커다란 전환을 준비한 점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육조(六朝) 수당(隋唐)7백 년의 문화는 문벌 귀족화한 사대부의 문화이며,본질적으로 귀족 문화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그 귀족의 세력은 중당(中唐) 이후 다소 어두운 그림자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으나, 이 5대의 전란으로 인하여 완전히 그숨통이 막히게 된다.5개의 군주는 모두 절도사, 즉 군인 출신이며, 그 국내의 정치 체제에 있어서도 군인 지배의 색채가 압도적으로 농후하였다. 실력 본위의 전국 시대에 있어서는 문벌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고, 문관 귀족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게다가 문벌 귀족의 경제적 지반이었던 장원(莊園)은 전란 중에 소멸한 것이 많았다. 이 때문에 그 7백 년의 전통을 가진 귀족도 역시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게 되었다. 그것은 문화나 사상의 세계에도 커다란 전환을 가져다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북송 성리학 발생한 사회적 배경
5대의 뒤를 이은 송(宋)은 남북 합하여 3백 년의 통일을 유지하였으나, 그 정치와 문화를 담당한 사대부는 이미 문벌 귀족의 성격을 갖지 않았으며, 한 대(代)에 그치는 관리가 되고, 원칙적으로 일반 선비 사이에서 등용되게 되었다. 수당(隋唐) 시대부터 문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하여 시행되었던 과거제도도, 송(宋)대에 들어 가서야 비로소 그실효를 발휘하게 된다.한 대(代)로 끝나는 괸리가 되면, 사대부도 천하 국가를 위하여 봉사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정치에 대한 괸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의 추세였다.
더욱이 송대(宋代) 3백 년에는 지식인의 정치적 관심을 강화시키는 갖가지 조건이 있었다. 북송(北宋)은 천하를 통일하기는 하였으나, 북동에는 요(遼), 북서에는 서하(西夏)라는 오랑캐의 2대 강국을 가까이 두고, 때로는 굴욕적 외교를 강요당하는 일도 있었다. 따라서 자연히 군비를 강화할 필요가 절박하였고, 그 때문에 행정이나 재정의 합리화를 피할 수가 없었다. 유명한 왕안석(王安石,1021-1086)의 새 법도 그결과 생겨난 하나의 산물이다.그러나 왕안석의 새 법은 너무도 이상주의적이며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같은 시대 사람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을 수령으로 하는 구법당(舊法黨)과의 대립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신법당(新法黨)에서 재상이 나라 정권을 장악하면 구법당의 인물을 중앙이나 지방의 관청에서 물리치고, 반대로 구법당이 천하를 장악하면 신법당을 일소하는 정변이 되풀이되었다.
이와 같이 북송기(北宋期)는 정당 싸움으로 시종하는 상태였으나,이것이 관리인 사대부의 정치 의식을 고양시키고, 나아가서는 치국 평천하의 학문인 유학을 진흥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송한(宋學)이라는 새 유학이 발생한 것도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로 부터 유교로
육조(六朝) 수당(隋唐)의 7백 년 간이 중국 불교의 황금 시대였던 것은 정치와 문화 담당자인 사대부가 문벌 귀족이었던 사실로 인함이 크다. 그들은 관리이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고, 반대로 문학.예술이나 철학.종교라는 보다 인간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컸었다. 이것이 불교의 전성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제 사대부는 귀족적 성격을 청산하고 한 대(代)로 끝나는 관리가 되었다. 더욱이 안팎이 모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하고, 그것이 국가의 흥망가 관계가 있는 성질의 것이었으므로, 이것이 사대부의 위기감을 조성시키게 된다. 영원 문제보다도 현실적인 문제 해결 쪽이 한층 중요했다. 이와 같은 의식이 송대의 사태부를 종교적 인간으로부터 정치적 인간으로 전환시키게 되었다.
원래 불교는 개인의 영혼 구원을 지향하는 것이지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아니다. 대승 불교(大乘佛)는 개인 의 구원만이 아니라 중생(生)의 제도(濟度)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 중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집단이며, 가족이나 민족과 같은 생활 집단과는 이질의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승려는 출가(出家), 즉, 가족으로부터 탈출하는 자라고 불리는 것인데, 그것은 동시에 국가로부터도 탈출하는 것이므로 출국(出國)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육조(六朝) 이래의 배불론자(排佛論者)는 불교를 이기주의라고 욕하는 일이 많은데, 그것은 불교가 개인의 구원만을 소원하고 천하 국가의 일에 무관심한 점을 찌른 것이다. 그것은 정말 망국의 종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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