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감상 - 신의 아그네스, 영화감상 -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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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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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그네스
20여년전 최고 인기를 모았던 존 필미어의 작품 신의 아그네스는 원년 맴버 그대로인 윤석화 윤소정 이정희라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다시한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거기에 이번엔 윤석화가 연출을 맡아 더더욱 흥미를 끌었던 작품이다. 이번 신의 아그네스에는 특별한 무대장치는 없었다. 간단한 소품 몇 개가 전부. 막과 막사이는 모두 조명으로 처리하였다. 대부분의 신의 아그네스 무대가 현란한 조명도 화려한 무대도 없었다. 단지 무대 위에는 빛과 어둠, 그리고 배우만이 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연기를 더더욱 빛나게 했다. 조금은 창피한 이야기 이지만 난 이번 수업을 통해 이 연극을 처음 접해 보았다. 그리고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윤석화의 뛰어난 연기와 목소리 윤소정의 노련미 그리고 이정희의 깊이 있는 연기에 많은 여운을 남기게 해주었다. 인터넷에는 언제부터 자료가 올라와 있었는지 많은 자료들이 즐비했고, 여러사람들의 감상평을 엿볼 수도 있었다. 연극의 복잡한요소들을 토론하는 사람들, 그리고 연극속의 핵심을 찾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도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의 이 연극속에 핵심을 찾지 못했다. 그저 강박관념이라고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다. 직접 연극속에서도 강박관념이라는 말을 했지만, 세명 모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에 발목을 잡혀있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그들 모두 희생자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사회속에 그리고 사람들속에 어둡게 찌들어버린 그들을 보면서 내 머릿속은 혼잡해졌다. 조금은 어둡고 지루하게 이어져가는 연극인 것 같았지만 단 1초의 여유도 가질 수 없이 연극은 전개되어 갔고, 결국은 가슴 후련한 뒤끝맛을 보지 못했다. 연극을 보는 중간중간마다 난 왜? 과연? 이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없었고, 아그네스의 잘못을 시인하고 인정하기에는 아그네스가 너무 깨끗했다. 그녀의 마음은 세상의 더러움을 뭍혀도 곧 씻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의 세상은 몸의 더러움을 보고 그것을 판단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것이고 진실인지는 다시금 생각을 해봐야겠다.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스스로 끊은 자들...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한 여자들...
이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다.]
“아름다운 사인”의 시놉시스 중에 저런 글이 쓰여져 있다.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자살이 아니고 타살인 것인가? 그렇다. 사인 6인은 모두 남성이란 존재에 의해 죽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여섯 시체들의 사연을 털어놓는 에피소드식 구성을 지니고 있다. 그 중간에는 검시관과 시체들의 이야기가 오고가고 한사람씩 죽게 된 이유를 그리고 있다. 처음의 무대구성은 여자시체 여섯 구와 싸늘한 음악, 조명으로 시작된다. 객석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관객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한 장치였다. 그러나 1/3쯤이 흘렀을까? 조금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연극의 홍보물인 판플렛에는 시체를 일곱 구라고 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리고 난 결정적으로 학교 스쿨버스의 막차시간 때문에 연극의 마지막 부분을 보지 못했다. 그 부분은 아쉽게 생각한다.
이 연극은 죽음이라는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풍자와 위트로 그린 작품으로 자살한 여자들의 유쾌하고 솔직한 수다를 통해 삶의 문제를 해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우선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역으로 표현을 해낸 것이 좋았다. 그리고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이 연극도 ‘신의 아그네스’와 비슷한 무대구성으로 한 장면에서만 극이 이루워 졌고, 중간의 남자연기자들 부분에만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남자의 연기를 그림자로만 표현을 한 것이 신선했고, 짧지만 충분한 전달 효과가 있었다. 특히 양아버지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된 극중 인물은 제일 큰 충격을 주었다. 난 연극을 보면서도 시종일관 그 인물을 주시했고 가장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남성들의 잣대에 맞춰가며 살다 자살한 여자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요즘 사회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작고 힘없는 여성들과 남성들과의 차별, 가부장적 중심 사회. 패니미즘과 여성권위 중심 운동이 펼쳐지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기존의 생활방식을 깨뜨릴 수 있는건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가 아닌 우리들부터 시작해야 하고 적극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 어느 날 그의 약혼녀 주연이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한 미안함과 분노로 복수를 다짐하고 주연의 아버지를 통해서 살인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알아낸다. 그들을 한 명씩 찾아가 확인을 해보던 중 장경철(최민식)의 집에 가서 주연의 반지를 발견하고 그가 범인임을 알게 된다. 둘은 마주치고 수현은 그를 바로 죽이지 않고 고통을 준 뒤 동료에게서 얻은 GPS칩이 담긴 캡슐을 그에게 먹인다. 그때부터 수현의 복수는 시작되고 계속 해서 장경철을 주변에서 감시하기 시작한다. 연쇄살인마 장경철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가고 그곳에서 또 간호사를 겁탈하려한다. 수현은 바로 나타나 그를 응징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런 일은 몇 번 반복되고 거의 성한 곳이 없어진 장경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차라리 죽여달라 하지만 끄덕 없는 수현.
항상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히 알아서 오는 수현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장경철은 우연히 자신의 몸 속에 있는 캡슐때문임을 알고 약을 먹고 그것을 빼내고 다른 사람에게 먹인 뒤 경찰에 연락해 자수를 하겠다고 한다. 경찰서에 가기 전 그는 수현의 정체를 알고 주연의 집에 들러 주연의 동생과 그의 아버지를 살해 한다. 수현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급히 집에 가보지만 이미 늦었고 자수하러 간 장경철을 뒤쫓는다. 경찰서 앞에 서있는 장경철을 수현은 데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창고 안, 수현은 그를 묶어 놓고 잠시 대화를 나눈다. 여전히 뉘우침은 없고 자신이 이겼다고 말하는 장경철. 수현은 문과 칼날을 연결 해 놓은 끈을 그의 입에 물려주고 창고를 떠난다. 그가 떠나고 창고에 장경철의 부모님과 아들이 오고 가족들은 그의 소리에 문을 열지만, 순간 운명의 장난처럼 칼날이 떨어지고 그의 가족 앞에 끔직한 장면만이 보이고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아무런 이유나 동기 없이 연쇄살인마는 그동안 영화 속에서 많이 존재해왔다. 영화 스토리 또한 다른 영화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여기서 연쇄살인마 장경철이 어느 시골 마을 운전수라는 설정 자체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흔히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전혀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지 않는 사람일테니 말이다. 영화도 그런 사람을 연쇄살인마로 설정하면서 그 점을 부각시키고 공포감을 주려 했던 것 같다. 평범해 보여 우리가 경계를 풀고 있는, 또한 경계를 갖고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악마에게 당하는 처참하게 당하게 되는 상황을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영화에 나타났던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살인행각들을 굳이 표현하고 나타냈어야 하는 것이다. 감독의 의도가 공포를 주고 경각심을 깨워주기 위함 일수도 있고 또 다른 의도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어쩌면 살인자에게 또 다른 살인방법을 제공해 주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수현은 그 복수를 위해 또 다른 악마가 되었다.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악마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범죄자는 전혀 뉘우침없이 살아가고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른다. 경찰에 잡혀 들어가면 그들에게는 죽음이 아닌 그냥 감옥행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들에 비해선 너무나 약하기만 한 벌이리라. 그것을 알기 때문에 수현은 그를 자신이 복수하려 한 것일 것이다. 장경철은 그래서 자수를 한 것이고 말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수많은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피해자는 자신의 목숨을 잃고 그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하지만 여전히 살인마는 뉘우침없이 숨을 쉬며 살아가고있다. 법의 심판을 받지만 여전히 잘 살아간다. 그런점에서 사형제도는 찬성하는 바이다.
아무튼 그래서 수현은 자신이 악마가 되어서라도 복수를 한다. 하지만 잃을 것이 없는 악마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수현은 마지막 남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또 한 번 잃게 된다. 그리고 그도 그에게 남은 가족을 이용해 그를 죽인다. 가족들의 손에 죽음을 맞게 하게 한 것. 나는 영화를 보면서 사실 이 장면이 가장 맘에 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의 가족들을 이용했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그 또한 정말 악마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에게 가족의 손에 죽임 당하고 그 아찔한 순간의 고통을 주는데는 성공했지만 자식의 죽음을, 그리고 아빠의 죽음을 보게 된 그의 가족들. 여전히 마지막 고통을 받는 것은 그가 아닌 그의 가족들만이 된 것이다. 진정한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악마일 뿐이었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깨워주고 싶었던 것 같다. 흔히 살인사건을 보게 되면 그 순간은 놀라고 안타까워 하지만 우리들 모두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금방 잊어 버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주위에 대한 경계없이 말이다. 영화는 우리가 조금 더 신경쓰고 자신을 방어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사회적 악인 범죄자들을 단편적으로 장경철이라는 악마를 통해서 그들에 대한 진저한 처벌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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