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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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등장인물이나 1920년의 시대상에 중점을 두고 리포트를 작성해 보았지만, 이는 전부 그럴싸한 거짓말의 나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억지스런 리포트를 작성해보고자 합니다.
1.
이번에 국문과에 복학해 한국 문학을 자세히 배우면서 제 자신의 소설적 성향에 대해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문학이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데 사용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어둠과도 같은 막막한 가난에 시달리는 인물들을 내세워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비난하고, 폭력의 극단을 결말로 차용하는, ‘가난한 이들이여, 궐기하여 사회를 뒤엎자’는 식의 사회주의 성향을 띠는 1920년대 소설들은 저와 코드가 그다지 맞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따져보자면 여러 이유가 나오겠지만, 그저 가볍게 생각해본다면 제가 당시 일재시대의 가난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이 그 이유 같습니다. 또 제가 같은 1920년의 다니자키 준이치로나 나쓰메 소세키 같은 일본 작가들이 보여준 탐미적, 예술지상주의적인 작품을 즐겨 읽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솔직히 공부라는 전제를 깔고 소설을 읽으려니 반감이 생겨서가 가장 큰 이유 같습니다.)
음식이 넘쳐나 음식물 쓰레기라는 개념이 생겨날 정도로 풍족한 시대에 태어나 굶주림이란 것을 겪어보지 못해서 하는 소린지는 몰라도, 저는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선전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인생이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아는 바이지만 어느 것을 목적으로 삼고 어느 것을 수단으로 삼느냐, 라는 문제에선 당연히 예술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쪽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을 굳히면 흔들림 없이 확고한 외골수 스타일은 아니기에, 이번 과제 작성을 위하여 <민촌>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당시의 시대상을 다룬 작품을 통해 그 작가들이 다루고자 했던 가난에 대한 인식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였고, 등장인물 중 하나인 사회주의자인 서울 댁 창순의 입장에서 바라본 당시 농촌의 상황과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현 시대상의 사회적 모순 또한 생각해보았습니다.
2.
개인적으로 김기진이 박영희의 작품에 대해 비난할 때 ‘기둥도 서까래도 없이(문학적 구조를 갖추지 않고) 지붕만 빨갛게 칠한다(이데올로기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집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한 말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해방이나 자본주의 문명 비판에 목적을 두더라도, 소설적 구성이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이기영의 <민촌>은 이러한 제 관점을 통해 보아도 교재 [붉은 쥐]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에 비해 소설적 구성이나 묘사, 완성도가 뛰어나 보였습니다. 농민적 활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실감나게 그려진 노동의 재현장면이나, 혹은 소박하나마 자유스럽고 공평한 농촌 공동체적 이상이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탓에 1920년대의 경향소설에 다소 부정적인 저도 별 다른 거부감 없이 <민촌>을 읽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 소설에 결말부에선 벼 두 섬에 박 주사 아들에게 팔려가는 점순이에 대해 약간의 분노감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 점순이의 가족들이나 서울 댁은 앞서 우리가 배워온 다른 경향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폭력의 극단을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점순은 가마를 오르기 전 서울 댁과 마주쳤던 밤, 자신의 순결을 왜 그에게 바치지 않았던가? (물론 이것은 ‘그는 가늘게 부르짖는데 사내는 아무 말 없이 그를 껴안은 채 다만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라고만 서술되어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왜 서울 댁은 단지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아 보내는 대신에 박 주사 아들을 목에 낫을 들이민 뒤, 점순의 손을 붙잡고 먼 곳으로 도망가지 않았을까?’
책을 덮고 나서 잠시 이런 유아적인 생각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는 금방 식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독자에게 의도한 바인지는 몰라도, 부모의 지극한 사랑도,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도, 서울 댁의 순결한 사랑의 힘도 벼 두 섬 앞에 꼼짝 못하게 만드는 당시 시대 구조상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근대라는 시대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문제점인 부의 독점화 현상과 자본 분배의 불평등에 대해서까지 넓혀져 갔습니다.
‘왜 어떤 시대마다 가난한 자가 있고, 그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대상이 있을까? 이들의 욕심어린 횡포에 가난한 자들은 어째서 이렇게 뒤흔들려야만 하나? <민촌>에서처럼 가족 구성원을 팔아넘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은 현대이고 그때는 근대이다. 백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면 충분히 이런 구조적 모순이나 오류를 메울 만한 방안이 생겨날만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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