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역사와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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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와 역사의식
1. 역사는 현대 사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 줄수 있나
먼저 역사의 정의를 내려보자. 역사란 인간이 거쳐 온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이나 그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는 관념상으로는 있을 수 있어도, 실제로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역사와 관계를 갖는 것은 역사의 연구·서술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역사의 연구·서술의 역사에 대하여 기술(記述)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역사’ http://100.naver.com/100.nhn?docid=112170
역사는 일종의 경험이다. 인간은 경험에 의존하여 배운다.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 사이의 관계 속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 연속선상에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교하고 미래를 보려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험의 기억 은행이자 집단적인 과거의 기억을 수집하고 만들어 내는 역사가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가들이 과거에서 정확히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를 통해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18세기까지는 유럽에서조차 역사는 사회, 즉 모든 사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모델이다. 현재가 어떤 의미에서 불만족스럽다면, 과거는 만족스러운 형태로 현재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모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대는 좋았던 시대로 규정되었고 사회가 되돌아가야 할 곳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100% 재현 한다거나 과거로의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론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투박한 역사적 경험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역사적 경험과 역사적 관점의 결합에 기초한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 경험을 무시하고 비(非)역사적, 반(反)역사적인 모델을 추구하는 현대엔 더욱 적절하다.
현재 우리는 비역사적인 것, 기계공학, 기계적 모델과 기계적 방안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과 비합리적 목적을 위해 역사를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세계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문제에 직면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어느 누구도 역사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역사적 경험으로 알 수 있다. 허나, 역사가들은 계속 시도하여야 한다. 사람들에게 씌여진 눈가리개를 없애려 시도 하는 것, 혹은 적어도 눈가리개를 조금이라도 들어 올리는 것이 역사가의 직무이고, 설령 현재와 같이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을지라도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현대 사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사고와 표현Ⅰ』, 조선대학교출판부, 2010, P45~49, 재인용
2. 기대승(奇大升) - 새로운 정치를 위하여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서 한 신하가 주도하여 개혁정치를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선시대 선조의 즉위와 기대승이 주도한 사림정치의 개화정치가 그런 사례 중 한가지가 될 수 있다. 기대승의 개화정치로는 임금과 신하의 정의(情義)가 소통하는 것, 과거청산을 통한 새로운 정치와 학풍의 쇄신, 그를 위한 원로중신들과의 충돌로 볼수 있다.
조선시대에 관직에 나간사람들이라면 모두 읽어보았을 사서삼경(四書三經)중 하나인 『논어』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定公問 :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이는 정공이 묻기를, “군주가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공자께서 답하기를 “군주는 신하를 예로써 부리고 신하는 군주를 충으로써 섬겨야 한다”라는 뜻이다. 유교정치를 표방했던 조선에서 이는 통치의 근간이 될만한 말이다. 기대승이 표방한 임금과 신하는 정의가 소통하여야 한다는 말과 일치하는 말이다. 임금은 신하를 임금의 겸양과 신중, 평온과 인내, 관용이라는 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임금에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직언을 고하고 임금의 어려운 일을 맡는 충이라는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대승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이러한 정의가 소통될 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기대승은 또한 과거청산과 원로사림의 초빙을 새로운 정치의 급선무로 생각했다. 특히 이황을 선진사림과 후진사림 모두의 사표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여 이황의 진출에 힘을 실어줬다. 신진사림세력은 이황이 우의정에 올라 새로운 정치의 중심이 되어 학풍의 쇄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황은 원로중신 중 한명인 홍섬(洪暹)이 우의정에 오르면서 『성학십도聖學十道』를 올리고 낙향하고 만다. 이에 신진사림은 배반감까지 느끼게 된다. 이를 본 기대승이 먼저 외척 권신이 주도한 폐습을 청산하지 못하여 새로운 개혁정치가 순조롭지 못하다고 임금께 먼저 주청을 했다. 새로운 정치를 위한 과거청산을 시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윤근수와 선조의 우리나라 사람의 중국 사람에 비한 품성의 열등함 논란까지 일게 된다. 기대승은 우리나라 사람 본성이 열등한 것은 아니라며 반박하고 선조도 이를 인정하며 물의를 수습하지만 과거 외척들의 전횡에 저항하지 못했으니 열등하다고 취급된 원로중신들은 격앙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원로중신 중 한명인 이조판서 김개가 신진사림이 급격하게 개혁정치를 하는 것은 중종시절 조광조를 연상케 하여 기묘사화와 같은 참화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발언을 한다. 기대승은 이 발언에 신진사림 전체를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같은 무리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있음을 눈치챈다. 그리고 이 발언은 형체가 없는 중상모략임을 밝히고 과거의 시비를 가리고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자는 주장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모두 일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소인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조정에서 추방할 사람의 기준을 제시하여 대대적인 숙정(肅正)을 발의하게 된다. 이를 통해 김개를 비롯한 원로중신들은 차례로 조정을 떠나고 기대승이 앞장선 신진사림의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게 된다. 「기대승(奇大升) - 새로운 정치를 위하여」, 『사고와 표현Ⅰ』, 조선대학교출판부, 2010, P51~55 재인용
3. ‘인공낙원’ 백화점, 사람을 사로잡다
해방을 전후해 오늘은 부민관, 내일은 화신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부민관에서 영화 한편보고 화신백화점으로 가서 신상품을 구경만이라도 하는 것이 서민들의 소박한 꿈이었던 시대상을 함축하는 말이다. 지금은 모습을 볼 수 없는 화신백화점은 해방전후 국내 최대의 백화점이었다.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jjh4858?Redirect=Log&logNo=150028131102
식민지 시대 한양은 ‘경성’이라는 이름과 함께 복합도시화 되면서 총독부, 대학, 백화점 등의 근대식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근대식 건물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근대의 메이크업’이라고 불리우는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백화점은 르네상스식 건축방식으로 지어져 겉모습부터 다른 건물들과 크게 달랐다. 백화점 안도 전통적인 재래시장과 크게 다른 물품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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