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1950년 문학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6.07.15 / 2016.07.15
  • 33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3,1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현대문학의 흐름>
1945-1950년 문학
Ⅰ.1945년-1950년 시
1. 서론
1) 1945-1950시대개관과 시단경향
해방기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에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까지 5년간의 시간으로서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들끓는 기간이었다. 우리는 8.15광복과 더불어 새로운 조국을 건설해야 할 역사적 책임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제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국을 다시 건설하는 것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많은 난관을 헤쳐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재정비해야 하고, 국민들에게 올바른 앞길과 희망 그리고 이상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냉정한 이성과 치밀한 지성, 깊은 인내와 남다른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던 시기가 바로 해방 정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시대에 이념의 대립이 나타나게 되어 시대를 더 복잡한 형국으로 내몰았다. 더구나 이념의 바람은 미. 소 양대 진영에 의한 외세의 힘까지 합세되어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고조시켜 민족의 분단을 야기케 하였다.
이렇게 해방기 이념의 바람은 사회전반을 혼란 속으로 내몰았으나, 그러한 가운데 문학인들은 앞으로의 자세와 진로 모색을 탐구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과거 친일문학의 잔재를 버리고 민족문학을 수립하여 새로운 문학사를 정립하는 일, 우리말과 우리글을 되찾는 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극복하는 일등이 그러하다. 또 이러한 상황아래서 우리의 문학에서 정치적 이념을 몰아내고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것이 크나큰 과제였다. 그러나 해방 직후의 문단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매우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과제를 해결하는 일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립의 양상은 문학단체의 결성에서부터 드러난다. 가장먼저 단체를 조직한 것은 좌익계열의 임화인데, 그는 해방 소식이 들리자 마자 ‘문학 건설 총본부’라는 간판을 내걸고 문학인들을 집결시켰다. 그는 이어서 음악 건설 총본부, 미술 건설 총본부, 영화 건설 총본부를 결성 및 조정한 수 이를 통합한 ‘문화 건설 중앙 협의회’를 만들고 서기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여기서 민족 문학의 기치를 높이 내세우고 한국 예술계의 지배권을 장악해 나아가고자 했다. 임화 중심의 이런 움직임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카프 계열의 문인들은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 동맹’ 이라는 또 다른 문학 단체를 발족시켰다. 한효, 송영, 박세영 등 1930년대 초 카프가 해체될 당시 이에 반대했던 카프계열의 문인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문학전선>이라는 기관지를 통해 임화의 ‘민족문학론’을 배격하며 계급 우위의 문학론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이 두 단체의 대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공산주의 정당이었던 남로당의 통합 지령에 의해 하나로 합쳐서 ‘조선 문학가 동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탄생시켰다. 이 조직은 <문학>, <우리문학>, <문화전선> 등의 기관지를 거느리며 광복 직후의 문단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조선 문학가 동맹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3.1기념시집’을 발간함으로써 해방 직후의 우리 문학사에 ‘기념시’ 라는 영역을 마련하는 데 또 다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좌익 계열의 움직임에 맞서 변영로, 오상순, 박종화, 김영랑, 이하윤, 김광섭, 오종식, 김진섭, 이헌구 등은 ‘중앙 문화 협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기관지 <중앙순보>를 발간하면서 좌익계열의 문학에서 맞서 나간 이들은 1945년 12월 해방을 기념하는 사화시집인 <해방기념시집>을 발간하였다. 이 는 조선문학가 동명의 ‘3.1기념시집’보다 앞서 발간된 것으로 해방 문단의 ‘기념시’ 창작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될 수 있다. 한편 ‘중앙 문화 협회’가 발전적으로 해체되면서 ‘전조선 문필가 협회’라는 새로운 조직체가 결성되었다. 정인보를 회장으로 한 이 단체에는 양주동, 박종화, 이헌구, 김광섭 등이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그 하위 조직으로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를 발족시켰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문인이 있는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는 당시 ‘조선 문학가 동맹’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김동리가 위원장을 맡고 유치환과 김달진이 부위원장을 맡은 이 단체의 시 부문에는 박두진, 조지훈, 서정주, 박목월, 유치환, 이한직 등의 현대시사의 커다란 줄기를 이어간 쟁쟁한 시인들로 당시 문학 연구와 시 낭송, 출판 기념회 등 대외적인 문학 활동을 활발히 전재시키고 ‘조선 문학가 동맹’에 맞서 순수 문학으로서의 문학의 본질을 강력히 펼쳐 나감으로써 해방 직후 이념과 정치에 휩쓸리던 우리 문단에서 문학의 중심을 지켜 나가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정국의 문학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인 시의 형식은 바로 ‘행사시’와 ‘기념시’였다. 해방의 순간이란 그 어느 것에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념비적인 일인 데다, 이념과 정치가 문학을 압도하던 시기여서 수많은 ‘행사시’와 ‘기념시’가 쓰이게 되었다. 때문에 이 시기의 ‘행사시’와 ‘기념시’는 이념과 정치의 홍수 속에 쓰여진 것이라 작품성을 지닌 시들은 많지 않았으며 격문의 성격을 지닌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해방직후의 들끓는 정서와 폭발적인 에너지는 정치영역에서는 경직된 이념의 과인으로 소모적으로 흐른 반면, 출판의 영역에서는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말과 글을 마음껏 구사하며 출판의 자유가 크게 열린 해방 직후에 우리 문학사는 일제 말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출판의 르네상스를 맞게 되었다. 즉 출판물(시집과 잡지 등)의 폭발적 증가는 창작 활동 또한 이 시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2 . 본문
1) 좌파 계열의 시
해방기 시 중에서 가장 현실지향적 성격이 강했던 조선문학가동맹시인들의 작품은 대부분 투쟁적 구호와 현실 참여에 따른 강한 정치선동으로 인해 생겨난 ‘행사시’내지‘기념시’ 평가된다.
이들 시들은 문학적인 형상화 보다는 정보전달을 더 강조하였고, 그러기에 이념 및 작자의 전달 욕구가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기에 그들이 노리는 바는 확실하게 챙길 수가 있다. 특히 과격하고 투쟁적인 선전 선동의 시를 썼던 시인은 권한 박세영, 유진호 등이 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 태학사, 2001
한국현대연극 100년, 한국연극협회, 연극과인간, 2008
해방기 희곡의 현실인식, 김정수 , 신아출판사, 1997
해방공간 희곡 연구, 김동권, 월인, 2000
해방기 연극 연구, 이석만, 태학사, 1996
참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www.kcaf.or.kr
Ⅳ. 1945~1950년 해방문단의 비평
인문학부 200700079 김자영
1.개관
해방직후 문학이론가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토대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논의를 펼쳤다. 그 가운데 민족문학론은 이 시기 문학이론 논의의 중추를 이룬다. 이 시기 문학이론의 전개는, 가까이는 해방 직전에 일었던 문학의 순수성 및 휴머니즘론과 연장선상에 있으며, 멀리는 1920년대부터 전개되어 오던 프로문학이론과 연관이 있다.
해방직후의 문학이론을 정리하기 위하여는 먼저 이 시기 문학운동 단체의 결성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시기 문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특정한 문학단체와 관련을 맺고, 자신들이 속한 단체의 노선설에 따라 문학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방직후 좌·우파 문학운동 단체의 결성과정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2. 좌파 문학운동 단체의 결성 과정
해방과 함께 한국문단에는 여러 가지 기구가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결성된 단체가 좌파의 <조선문학건설본부>이다. 이 단체는 임화의 주도아래 1945년 8월 16일 결성되었다. 임화는 이 단체를 토대로 1945년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출범시키면서, <조선문학건설본부>를 그 산하기구로 편입시킨다. <조선문학건설중앙협의회>의 활동방책은 새로운 조선 문화 건설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프로계급 등 특정한 계급적 기반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임무는 전조선 문화 종사자 내지 예술가의 일치단결된 토대 위에서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조선의 모든 해방된 문화 종사자와 예술가의 통일된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탈계급적 입장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단체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1945년 9월 17일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창립대회에서부터 우리 민족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 농민의 완전한 해방을 목표로 한 과감한 투쟁을 선언한다. 아울러 이 단체는 스스로가 과거 일제하 탄압 받으며 존재하던 <카프>의 맥을 잇고 있음을 천명한다. 이들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건설을 기함
둘째, 우리는 파시즘 문학, 부르조아 문학의 사회개량주의 문학 등 일체의 반동적 문학을 배격함
셋째, 우리는 국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촉진을 기함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1945년 9월 30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이 창설되면서 그 산하 기구 가운데 하나로 편입된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의 창립선언문은 우리들 앞에는 의연히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위한 처열한 투쟁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하며,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확립과 일체 반동적 예술의 철저한 배격을 위해 용감히 투쟁할 임무를 가졌음을 강조한다. 아울러 1935년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적 탄압으로 유린 해체된 <카프> 즉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재건 결성한 것임을 주장한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은 예술적 행동을 곧 계급적 진리의 인식과 실천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계급적이다. 그 점이 바로 앞서 등장한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탈계급적 내지 범계급 연대라는 입장과 분명히 대조되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운동의 계급적 기반에 대한 인식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던 양 단체는 각각의 단체를 해소하고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게 된다. 1946년 2월 <조선문학가동맹>의 전국대회인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제국주의 잔재의 소탕
둘째, 봉건주의 잔재의 소탕
셋째, 국수주의의 배격
넷째, 민족문학의 건설
다섯째, 조선문학의 국제문학과의 제휴
이 강령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제창한 계급성의 강조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볼때, <조선문학가동맹>은 두 단체의 성격을 절충했다기보다는, <조선문학건설본부>의 강령과 규약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은 1946년 2월 24일 결성된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의 산하기구로 들어간다.
3.우파 문학운동 단체의 결성 과정
1945년 9월 18일 결성된 <중앙문화협회>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단체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제하에서 해외문학의 소개와 번역에 치중하던 해외문학파 문인 활동과 연속선상에서 탄생한 단체이다. <중앙문화협회>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중시하지 않았지만, 그 구성원의 성향으로 미루어볼 때는 일단 우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일제하 <카프>의 지도부가 해외문학파를 광범한 소부르 중간층의 예술적분자로부터 우파로 전향한 일군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프로문학 예술전선상의 적으로 규정했다는 점 역시 <중앙문화협회>와 좌파 문학단체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해방 후 우파 문학운동 단체의 결성은 <전조선문필가협회>의 탄생을 통해 본격화된다. 1946년 3월 10일 이들은 <전조선문필가협회 준비위원회>명의로 좌익의 대표적 문화단체인 <조선문화단체총연맹>에 보내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이 성명서에는 좌파 문학·문화단체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성명의 내용은 이 단체의 결성이 단순히 문학적 목적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목적을 함께 띠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당시 채택된 강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공헌하자
둘째, 민족자결과 국제공약에 준거하여 즉시 완전 자주독립을 촉성하자.
셋째, 세계문화와 인류평화의 이념을 구명하여 이의 일환으로 조선 문화를 발전시키자.
넷째, 인류의 복지와 국제평화를 빙자하여 세계제패를 꾀하는 모든 비인도적 경향을 격쇄하자.
1946년 4월 4일에는 <전조선문필가협회>의 이념을 살리고 적극적으로 행동을 전개시키기 위한 전위대의 성격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조선청년문학가협회>가 창설되었다.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강령에 따라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자주독립성취에 전력을 기울이며, 문학의 독자적 본령을 사수하고 문학이 정치적 선전도구가 되는 것을 배격했다. 특히 김동리와 조연현 등이 순수문학 이론을 전개하면서 좌익과 이론투쟁을 벌여 나갔다.
해방직후 우파 문단의 대표적 기구였던 <전조선문필가협회>와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정부 수립 뒤인 1949년 12월 <한국문학가협회>로 통합된다. 이 협회는 이후 남한의 대표적 문학단체가 된다.
이렇게 해방직후 결성된 여러 문학단체들은 그것이 좌파의 것이건 우파의 것이건 모두가 회원들의 문학적 성향뿐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 노선에 따른 태동이라는 성격이 짙다. 문학계 자체 내의 필요에만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현안에 따라 문학과 문화기구가 탄생되던 시기가 바로 해방직후였던 것이다.
4. 김동리의 순수성과 휴머니즘 - 우파
김동리의 민족문학에 대한 관심은 1946년 4월에 발표한 「조선문학의 지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민족문학론이 구체적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순수문학의 진의」를 통해서이다. 이 글에서 김동리는 민족문학과 순수문학 그리고 휴머니즘을 연결 짓는다. 이 논의는 해방 이후부터 줄곧 우파 민족문학론의 뿌리와 큰 줄기를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동리는 우선 순수문학을 탐미주의나 상아탑류의 문학으로 보는 경향을 오류와 편견이라 비판하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순수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문학정신의 본령정계의 문학이다. 문학정신의 본령이란 물론 인간성 옹호에 있으며, 인간성 옹호가 요청되는 것은 개성 향유를 전제 한 인간성의 창조의식이 신장되는 때이니 만치 순수문학의 본질은 언제나 휴머니즘이 기조되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현하 조선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특수성과 이에 대한 부자연한 관련에서 지금 바야흐로 과학주의적 기계관이 성행하는 후진사회 특유의 병상을 정출하고 있는 바, 과거의 경향파 계열의 문학인을 중심으로 한 <문학동맹> 산하의 다수 문학인들에 의하여 ‘과학적 세계관’, ‘진보적 리얼리즘’, ‘혁명적 로맨티즘’, ‘과학적 창작방법’ 등등 하는 일련의 공식론이 유물사관체계에서 연속적으로 추출되고 있는 현상이 그것이다.
김동리는 이렇듯 순수문학이 문학정신의 본령을 이루고, 문학정신의 본령은 인간성 옹호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현재 조선에서는 과학주의적 기계관이 성행하는 후진사회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과학주의적 현대 우상 숭배는 세계사적 문화 창조 의욕에 저해될 뿐 아니라 민족문화 수립에도 방해가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민족문학이란 원칙적으로 민족정신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민족정신이란 본질적으로 민족단위의 휴머니즘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동리는 ‘민족정신을 민족단위의 휴머니즘으로 볼 때, 휴머니즘을 그 기본 내용으로 하는 순수문학과 민족정신이 기본이 되는 민족문학과의 관계란 본질적으로 별개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우리가 목적하는 민족문학이 세계문학의 일환으로서의 민족문학인 것처럼, 우리의 민족정신이란 것도 세계사적 휴머니즘의 일환인 민족단위의 휴머니즘으로서 규정될 것이며, 이러한 민족단위의 휴머니즘을 ‘세계사적인 각도’에서 내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순수문학의 문학정신인 것이다. (중략) 이제 역사적으로 신장하려는 민족정신에 입각하여 동양적 대예지의 문학을 수립하고 제3기 휴머니즘의 세계사적 성격을 천명함으로써 민족문학이면서 곧 세계문학의 지위를 확립하는 데 이 땅의 순수문학의 전면적 지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김동리는 순수문학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휴머니즘과 만나는 순수문학, 휴머니즘과 만나는 민족문학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 여기서 김동리가 말하는 제 3기 휴머니즘이란 ‘개성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김동리의 순수문학론에 대해 김병규는 「순수문제와 휴머니즘」이라는 글을 써서 비판한다. 김병규는 먼저 순수문학을 상아탑류의 문학으로 보는 것이 오류나 편견이 아님을 주장한다. 그는 현실에 대한 분석이나 현실에 대한 인간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문학과 여행] 조정래 그의 삶과 문학속으로..
  • < 문학과 여행 >조정래그의 삶과 문학속으로.< 목 차 >1. 인물 조정래2. 소설 태백산맥1) 작품소개 2) 여순사건과 빨치산 투쟁3) 태백산맥의 줄거리 4) 태백산맥의 이적성 논란 3. 소설 아리랑과 한강4. 조정래의 문학세계5. 10조의 태백산맥 답사기6. 발표를 마치며.1. 인물 조정래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 출생1948년 여순반란사건을 순천에서 겪음1949년 순천 남국민학교 입학1950년 충남 논산에서 6.25를 맞음1953년 작은아버지들이 사는 벌교

  • [현대문학] 김혜순시인에 관한 연구
  • 한국의 현대문학김a김혜순 시인-‘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를 중심으로목 차Ⅰ.작 가 분 석-작가 약력-작가 특징Ⅱ.작 품 분 석1. 김혜순 시에 나타나는 몸 이미지-몸이라는 감옥-몸이라는 한계의 극복-모성으로 승화되는 몸2.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퇴폐한 현실에 대한 비판 -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여성주의 맥락에서 본 「또 하나의 타이나틱 호」 작 가 분 석김혜순 시인은 1955년 10월 26일 울진

  • [현대문학] 김혜순시인에 관한 연구
  •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김혜순목 차작 가 분 석작 품 분 석1. 김혜순 시에 나타나는 몸 이미지2.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작 가 분 석시인 김혜순  1955년 10월 26일 울진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 했으며 현재는 서울예술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상하여 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계간 《문학과

  • 인문과학 신경림의 농무
  • 「농무」 신 경 림1. 서론1970년대 이후 수백 권의 시집을 내면서 한국 시문학사의 중요한 광맥으로 자리 잡은 창작과비평사 ‘창비시선’은 문학사적으로 깊은 의미영역을 거느리고 있다. 그 ‘창비시선’의 역사적인 첫 번째 시집인 『농무』(1975)의 시인 신경림은 1956년 등단 이후 20권에 가까운 시집을 비롯한 수맣은 저서를 남기고 있는 중요한 시인이다. 민중시인으로 평가받는 신경림은 1935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영문과 졸

  • 용아 박용철의 시세계 - 생애, 시의 특징
  • 용아 박용철의 시세계생애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아오야마 학원과 연희 전문에서 수학하였다.일본 유학중 시인 김영란과 교류하며 1930년‘시문학’을 함께 창간해 문학에 입문하였다.1931년‘월간문학’,1934년‘문학’을 창간하여 순수문학 계열에서 활동했다.“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 거냐/나 두 야 간다/나의 이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 거냐/나 두 야 가련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