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로제타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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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의 부모 대로부터 시작되는 의료 선교사 4명의 봉사로 점철된 삶에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탄압, 남편과 딸을 연이어 여읜 인간적 고통 속에서도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낯선 땅의 불우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닥터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즉 셔우드 홀의 어머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의사로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한 채 43년간 이국 땅에서 온전한 봉사의 삶을 살다가 68세 노인이 되어서야 모국으로 돌아갔던 로제타 또한 가족과 함께 한강 기슭 야트막한 언덕 양화진에 묻혀 있다.
이곳에 묻혀 있는 홀 집안 사람들은 모두 5명에 이른다.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 중 최초로 순직한 닥터 윌리엄 제임스 홀(Willam James Hall), 그의 아내인 닥터 로제타 셔우드 홀, 아들인 닥터 셔우드 홀(Sher wood Hall)과 며느리 닥터 메리안 홀(Marian Hall), 마지막으로 셔우드 홀의 여동생인 에디스 마거리트 홀(Edith Margar et Hall) 등이다. 어린 시절 사망한 에디스를 뺀 나머지 4명이 이 땅에서 봉사한 기간을 합치면 무려 73년이 된다.
<로제타 홀>
로제타는 처음 조선에 올 때부터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을 여성의 힘으로!(Medical work for woman by woman!)”라는 구호로 사업을 펼쳤다. 이러한 시각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로제타가 재정적 어려움과 일제의 감시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여자의학강습소를 계속한 것은 그만큼 여성의 지위 향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지막 숙원 사업 또한 조선 최초의 여자의과대학(고려대 의대의 전신)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사재를 털어가며 헌신했으나 대학 설립 직전인 1933년, 68세의 나이로 정년을 맞게 되자 같은 해 10월2일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갔다.
로제타와 만날 당시 윌리엄은 중국 파견을 앞둔 예비 선교사였다. 약혼 후 로제타는 예비 남편과 같은 임명을 받기 위해 뉴욕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협회에 등록을 했다. 이들은 감리교 선교부의 방침에 따라 인도나 중국으로 나누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바라던 대로 1년이란 시간차를 두고 조선에서 극적인 해후를 하게 되었다.
먼저 파견된 이는 로제타였다. 1890년 10월14일 로제타는 조선에 파견된 최초의 여의사 메타 하워드(Meta How ard)의 후임으로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1개월 후 로제타는 감리교에서 운영하던 조선 최초의 여성병원 보구여관의 책임자로 임명됐다. 로제타는 1893년 8월23일 평양에 갈 때까지 그곳에 근무하며 병원을 크게 발전시켰다. 1897년에도 6개월간 병원을 맡아 운영했다. 후에 이곳은 동대문 부인병원으로 발전했고, 지금은 이화여대 부속병원이 되었다.
로제타는 선교사 생활 초기의 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첫날 진료소에서 4명의 환자를 보았습니다. 다음날은 9명이었고, 이후 석 달 동안 통틀어 549명을 진료하였습니다. 진료 기록에 있는 진단 명을 보니 피부병, 안질, 귓병 등 50가지 이상의 다양한 질병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입원환자는 9명입니다. 왕진은 21번을 했습니다.(로제타는 그 후 3년간 1만4천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신혼 시절이었으나 남편 윌리엄이 감리교 감독 지시로 평양에 파견되는 바람에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외과 환자중 한 명은 수탉 한 마리와 암탉 3마리를 보내주었습니다! 16세인 그 젊은 여성환자는 수년전 화상으로 세 손가락이 붙어 손바닥 쪽으로 굽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마취를 하고 손가락을 분리해 각각 붕대로 감았습니다. 그리고 똑바로 펴서 부목을 대주었습니다.
나는 절개한 피부로 최대한 이식하려 노력했지만 아직 피부가 없는 부위가 남아 있었고 말이 잘 안 통했기 때문에 피부이식의 필요성을 환자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몇 조각의 피부 이식 편을 내 몸에서 떼어냈습니다. 다음으로는 환자로부터도 몇 조각을 떼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환부를 드레싱하면서 통역을 맡은 로드웨이터(Rothweiter) 양이 사태를 제대로 납득시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리스마스날까지 상처는 거의 다 아물었고 다음날 나는 그녀를 집에 보냈습니다.
며칠 뒤에는 한 남자가 전날 내가 난산을 도와주었던 부인에게 줄 약을 타러 왔습니다. 나는 차라리 내가 가서 환자를 보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비가 왔기 때문에 그 남자는 내가 비를 뚫고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간호사가 그에게, 내가 한국 여자에게 피부까지 떼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일하던 봉선 어머니도 나처럼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성경을 좀 더 읽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내가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것이 그들에게 큰 인생의 교훈이 되었던 듯했습니다.”
맹아·농아 교육의 개척자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이곳 지상에 계셨을 때에 우리에게 아픈 이들뿐만 아니라 눈먼 이들과 말 못하는 이들을 동정하고 도우라고 가르쳐주셨음을 기억합시다. 그는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는 귀먹은 자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자가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불쌍한 자를 위하여 복음을 전도하라. 그리고 나를 거스르지 않는 모든 자에게 축복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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